'우리 딸은 손이 참 예쁘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우리 딸은 손이 참 예쁘네'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두 번도 아니고 꽤 여러 번. 어쩌면 엄마와 손을 잡을 때마다 거의 매번. 그래서 나는 내 손이 정말로 너무 예쁜 줄 알았다.
그러다 종종 반지를 끼기도 하는 나이가 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손을 유심히 보고, 아름다운 손들이 나오는 많은 광고들을 보기도 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 손이 미적으로 정말 예뻐서가 아니라, 그냥 당신 딸이 아직 희고 보드라운 손등, 불거진 관절 마디 없이 그냥 쭉쭉 뻗기만 한 손가락, 굳은살이라곤 배겨본 적 없는 손바닥을 가진 것에 안도하며 '우리 딸, 손이 참 예쁘다' 하고 말했다는 것을.
요즘 나는 엄마가 그렇게 예뻐했던 손을 혹사시키는 일들만 하며 지낸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 좋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으며 자랐지만 그걸 정말 '재주'로 여겼던 적도 없었는데 요즘은 정말 내 몸에서 손이 가장 많은 일을 한다. 집에서도 온갖 일들로 손을 혹사시키면서 또 다른 취미라곤 그야말로 손가락 관절을 갈아 넣어하는 느낌이 드는 운동이라 손의 피부는 날로 거칠어져 가고 관절 마디도 툭툭 불거져 나온다.
5-6년 전 어느 초여름 날, 엄마와 나는 집 앞 버스정류장 의자에 나란히 앉아 우리의 손과 발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매니큐어를 달랑 3-4가지 색깔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진한 파란색 매니큐어를 우리 둘 다 엄지발가락에 바른 지 얼마 안 되었던 때였나 보다. 필터를 씌운 사진 속에서 지금은 낡아서 버리고 없는 내 모래색 쪼리를 신은 두 발과 요즘 내가 테라스에서 신는 엄마의 핏플랍 슬리퍼를 신은 엄마의 두 발이 다정히 모여있다. 엄마의 왼쪽 중지 발가락에 있는 작은 점도. 사실 이건 거의 잊어가고 있었는데 사진을 보며 기억이 났다.
다른 한 사진 속에는 엄마의 손과 내 손이 있다. 엄마가 그렇게나 예뻐했던. 그래서 참 예쁜 줄 알았던 내 손은 다시 보니 그리 예쁘지는 않다. 그저 엄마의 손이 거칠어지고 마디가 굵어지지 않았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손이다. 조금 더 희고 가늘 뿐, 사실은 엄마를 닮은 손.
요즘 내 손은 자꾸 엄마를 닮아 간다. 거칠고 투박해져 간다는 뜻이지만 엄마 손을 닮아가는 건 싫지 않고 오히려 조금 뿌듯한 일이다. 역시 나는 엄마 딸이구나. 엄마는 안 닮고 아빠만 닮았단 소리를 들으며 자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내 모습에서 엄마를 발견하는 일이 잦아진다. 내 손에서 보이는 엄마 모습이 반갑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손을 고생시키지만 엄마는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나를 낳아 키우느라 그 여린 손을 다 썼을 거란 생각. 가끔씩 엄마의 손가락 마디가 퉁퉁 부은 걸 보고도 그게 많이 아플 거라는 생각은 안 했던 철없던 어린 나.
엄마를 닮아가는, 살짝 부어오른 중지 마디를 주무르며 또 한참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에 대해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낼걸 후회하는 하루가 또 이렇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