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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나 Jul 28. 2023

이래서 야구를 봅니다

야구없는 월요일에 허전함을 느낄 줄은 몰랐습니다. 

2022년 한 해 나는 무엇에 몰두했는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야구’라고 답하겠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2022년 가을야구 직관을 거쳐 그리고 2023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시간표가 야구로 재편되는, 개인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나는 왜 야구라는, 그저 공놀이라고 생각했던 스포츠에 온전히 빠지게 된 걸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야구의 매력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야구로 예능을 한다고?” 지인이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았다며 나에게 소위 영업을 시도할 때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년 전, 동료를 따라 잠실 야구장을 따라갔을 때의 강렬한 기억이 여전히 잔상으로 남아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쭐레쭐레 따라가 야구의 ‘ㅇ’자도 모르고 앉아 있는 나를 위해 친절하게 기본 규칙과 매 이닝 상황 설명을 해주던 동료의 정성스러운 해설이 귓바퀴를 거쳐 사라지는 걸 느끼며 ‘야구는 규칙이 참 많고 복잡하네. 야구를 좋아하긴 힘들겠어.’라고 생각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자신조차도 스스로의 취향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점이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는데, 나한텐 야구만큼 극적으로 취향이 전환된 경우도 없는 듯하다. 


오래전, 야구를 더 알기까지 걸리는 점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야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안다면, 스포츠 뉴스 야구 선수들의 일탈이 왜 그리도 자주 등장하는지 봐 왔다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그 이유들, 오랜 시간 야구를 향한 관심을 막았던 이유이다. 그럼에도, 야구라는 스포츠가 정말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스포츠라는 점,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매 경기를 지켜보며 야구가 지닌 매력에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다. 




규칙이라는 스무고개를 넘으면 재미가 기다리고 있다. 

장면 하나. 장소는 잠실야구장. 인생 처음으로 야구 경기를 보며, 잠실 야구장이 주는 묘한 개방감에 한편으로 가슴이 탁- 트이면서도, 야구 경기를 최소한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규칙에 머리속은 물음표로 가득 차고 있었다. 야구를 즐기기에 일단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라는 게 있었고, 처음 직관으로 야구를 만나는 나에겐 그저 알아야 할 것이 많게 느껴져 재미가 반감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규칙이 많다는 그 점 때문에 야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니, 아이러니하다.  

야구는 9명의 선수가 그라운드 내에서 공을 던지고(투수), 치는(야수) 스포츠다. 공격과 수비가 바뀌는 1회를 9번 반복하는 동안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쳐서 홈을 떠나 1, 2, 3루를 거쳐 다시 홈으로 돌아오면 득점한다. 여기까지는 간단하다. 그런데 홈과 3개의 베이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상황,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생기고, 여기에 대처하고 경기 운영이나 재미를 위해 여러 규칙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타자가 친 공이 빗맞거나 해서 내외야 라인이 아니라 파울라인으로 공이 벗어나 떨어지면 파울이 되고 파울은 스트라이크로 인정받는다. 아하, 그럼 파울이 연속 3번이 되면 아웃이 되겠구나. 이렇게 계산이 서지만,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는 아무리 파울을 하더라도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늘어나지 않는다.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스윙으로 파울을 계속하더라도 아웃되지 않는 것이다(이런 규칙이 생긴 데에는 그간의 역사가 있다). 이 과정에서 투수는 투구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어깨에 부담이 가중되는데, 이러한 점을 이용해 투수를 괴롭게하는 대표적인 타자가 이용규 선수라 이런 상황을 일컬어 ‘용규 놀이’라고도 한다. 이 밖에도, 여러 규칙과 점수를 내기 위한 작전까지 더해져 야구를 재미있게 보는데 어느 정도의 학습이 필요하기에 야구를 좋아하기까지 진입장벽이 높다 할 수 있지만, 일단 즐기다 보면 하나씩 알게 되기에 너무 겁먹지 말자. 즐기다보면 알게 되고, 그 어느 스포츠보다 재미있는 ‘경우의 수'를 많이 마주할 수 있다. 


매일,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는 야구 

시즌 동안 야구 경기가 월요일을 제외하고 6일 동안 진행된다는 사실을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모른다. (야구선수의 연봉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144경기를 전국을 돌아다니며 주 6일씩 3시간이 넘는 경기를 치른다고 생각하면 쉽지 않은 직업이긴 하다) 10개 구단이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매일 승자와 패자가 나뉘게 되니 … 야구팬들은 하루하루 일희일비하지 않기가 어렵다. 희비가 교차하는 매일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야구가 일상에 깊게 자리 잡아 경기 하나에 울고 웃는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야구에 쉽게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비단 경기가 매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 요소 가득한 서사가 넘쳐흐르는 것이 야구이다. 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시작해, 프로선수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지? 모 신문 기사에 따르면,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구단에 입단할 확률은 10.8%, 그중에서도 우리가 중계방송에서 볼 수 있는 주전 선수가 될 확률은 0.68%에 불과하단다. 1%도 안 되는 가능성을 바라보며 프로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선수 한 명 한 명의 성장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 드라마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들었을 법한 선동열, 이종범같이 레전드라 불리는 선수들의 야구 인생도 그러하지만, 좌절의 문턱에서 엄청난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선수들의 이야기는 보다 진한 페이소스를 남긴다. 현재 리그 최고의 자리에서 활약하는 채은성 선수, 김현수 선수는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해 일종의 연습생으로 볼 수 있는 신고선수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의 신화를 써 내렸다. 선수 개개인뿐만 아니라,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된 지 40년이 지났으니 각 팀의 굴곡진 역사까지 포함한다면 덕후들이 파고파도 나올만한 이야기가 잔뜩 포진해 있다. 어떤 하나의 이유로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면, 기대하길. 야구라는 거대한 이야기 덩어리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서사적인 매력을 차치하고서라도, 야구를 점점 알아갈수록 야구가 참으로 인간적인 스포츠라는 점에서 더 깊숙히 끌려들어 가게 되는 것 같다. 야구 시즌을 정주행하다 보면 매일 벌어지는 경기는 물론, 주 단위, 한 달 단위, 상하반기 단위로 선수와 팀의 좋을 때와 잘 풀리지 않는 순간이 늘 교차하는 걸 목격하게 된다. 일종의 야구 세계에서도 바이오리듬이 있다고나 할까. 좋을 때가 있으면 안 좋을 때가 있고, 늘 이런 주기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인생의 평균값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 일상처럼 말이다. 고액 연봉을 받고 리그를 씹어먹는 선수라 할지라도 슬럼프를 피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늘 좋을 수만은 없는 우리의 일상, 인생이 떠오른다. 누구나 각자만의 슬럼프를 겪지 않을 수 없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하는 회복탄력성의 차이에 있지 않을까, 요즘 야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걸까?

야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팀플레이다. 프로구단의 운영을 책임지는 프런트부터 감독, 코치진, 그리고 선수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때, 좋은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려면 당연하게도 일상을 나누고, 그라운드에서 함께 땀 흘리며 만들어 가는 신뢰와 협업의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확률과 평균값의 게임인 야구에서 당연히 이기거나 당연히 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서로의 부족함과 실수를 서로 얼마나 잘 채워가며 하나의 팀으로 좋은 팀워크를 보여주는지가 승패를 가르는 한 끗인 경우가 오히려 많다. 그렇기에 원팀(One team)인 것이 중요하고, 개인의 탁월성보다 때로 팀을 위한 양보와 희생이 빛나기도 한다. 위대한 선수도 있지만, 위대한 선수만 있어서는 좋은 팀이 될 수 없기에 야구는 다른 선수를 돕고 팀을 돕는 이타적인 플레이가 중요하다. 




프로의 세계이기에 야구팬들은 선수에게 늘 경기에서 잘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선수들의 고액 연봉은 그런 기대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기에,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자리에 매일 서야 하는 부담감과 긴장 속에 당장 내일 혹은 내년을 예상할 수 없는 프로 세계의 냉정함을 모르지 않기에, 나는 선수나 팀이 부진한 모습에 감정 이입해 마냥 비난의 말을 쏟아내기가 어렵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줌인해서 팀을 들여다보고 선수를 보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렇다. 이번 시즌을 함께 하면서 야구는 월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 늘 나를 기다려 주는 친구 같기도 하다. 응원하는 팀이 잘할 때는 함께 기뻐하고, 부진할 때는 무척 속상해하며 일종의 우정을 쌓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즐기기에는 야구는 우리네 일상을 참 많이 닮았다. 야구가 더욱 재미있어지는 이유이다. 



이 글은 수빈조(@soobincho)와 함께 쓰는 글 릴레이입니다. '야구'라는 키워드로 쓴 수빈조의 글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글 릴레이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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