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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l 28. 2023

샤이하지만 최강야구 애청자입니다만

[우리들의 글루스:2인의 글쓰기] (1) 

나는 왜, 샤이애청가 인가


나는 여러 세대의 남성들로 구성된 멤버들이 미션에 따라 유사 합숙하며 종국에는 막연한 호형호제 관계로 발전해나가는 식의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지 않는 편이었다. 안타깝게도 대게 그런 것들은 세대를 아울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다섯손가락의 하나 두 개쯤으로 꼽히는 것들이고 대표적으로는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들이 그에 속한다. 그 시절엔 면밀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지만 최근 과거 영상으로 구성된 짤이나 밈으로 퍼지고 있는 역주행 감성과 트렌드에 공감하지 못할 때면 내가 그 당시 주류문화에서 제법 소외되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곤 한다. 물론 나의 소외와 배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이 말을 꺼내든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내가 그런 류의 프로그램을 즐겨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를 유머와 감동코드가 맞지 않아서이다. 웃음이란 것이 기본적으로는 공감을 바탕으로 전파되는 것일테니 남성 간 오가는 대화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 공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일테다. 물론 그때만 해도 대체로 그런 류의 예능프로그램들이 대세를 이루었으니 공중파에서 내가 볼 만한 예능프로가 없기도 했다는 점에서 다소 차별적이었다 생각하고, 그건 여전히 소외와 배제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라는데 더 마음을 두는 편이라 내가 그런 프로그램들을 부러 보지 않은 이유가 나의 낮은 수준의 여성주의 의식이 발동해서 라고 말하는 건 다소 오버스럽다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사회정치적 해석을 제외하자면 그건 그저 유머코드가 맞지 않아서였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것이다. 동시에 최근 <뿅뿅지구오락실> 같은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동영상으로 회자가 되고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이 공중파 예능에도 등장을 하는 것을 두고도 역시, 사회정치적 변화를 담는다기 보다 점차 세밀화되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편인데, 이렇듯 방송프로그램에 어떤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건 좋은 문화콘텐츠가 때때로 사회변화를 촉발하긴 하지만 문화콘텐츠가 그 자체로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주요한 사회적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촌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며 요즘은 그것이 그저 세상을 그대로 담는 그릇 같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는 중이다. 추악한 면은 추악한대로 극악한 것은 극악한대로.              


내가 또한 즐겨보지 않는 예능이라면, 스포츠예능을 꼽을 수 있다. 웃음과 더불어 감동까지 고려해야 하는 최근 방송콘텐츠의 경향상 각본 없는 드라마 라는 ‘스포츠’는 꽤 매력있는 테마일테다. 특정된 스포츠 분야의 비전문가들에게 임파서블에 가까운 미션을 주고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가며 또한 협동심을 발휘해 승부와 무관하지만 여타의 다른 성장을 경험해 나가는 이야기. 나는 그것이 말하려는 환상에 다소 무감한 편이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 승리와 패배란 결과를 맞닥들여야 하는 그 생존경쟁에서 과정의 치열함과 개별의 성장의 가치란 결국 또다시 승자독식의 승리자에게만 주어지는 서사라는 점에서 이는 현실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다소 교훈적이라는 문제의식도 한켠 자리하고 있었다. 내 주변인들의 애청작인 <골 때리는 그녀들>을 나는 잘 보게 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인데, 그 프로그램 소개와도 같이 “축구 우리도 할 수 있어! 진정성 200% 축구의 진심인 그녀들의 건강한 소모임”이라는 그 나이브함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것은 치열한 승부의 세계, 왜 그녀들의 진심 어린 승부가 아니라 그저 진심에 더 응원해야 하는지 공감하고 싶지 않아서다. 심지어 건강한 소모임이라니. 나는 차라리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스트릿댄서들처럼 스트리트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선을 지키며 링 위의 승부를 즐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독하게 싸우는, 프로의식으로 똘똘 뭉친 멋진 여성들끼리 가능한 그런 승부의 세계를 훨씬 짜릿하고 통쾌하게 보는 편이다. 다큐가 아니라 예능이라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것이 승부의 세계을 발을 딛고 선 예능이라면. 적어도 현실의 치열함과 냉혹함을 우회하지 않아야 실제 보여주고자 했던 승부 이면의 세계, 개별의 과정적 서사에 더욱 주목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런 면에서 <최강야구>는 내가 즐겨 보지 않는 두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은퇴한 스포츠스타들의 야구예능.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관성을 깨고, 지난 4월 10일 시작된 시즌2까지 합쳐 총 50회차(7월 현재 기준)에 접어들고 있는 이 예능프로를 한 두 회분을 제외하고 대게 본방사수 중(경기가 안 풀려 긴장이 될 때 한번씩 다른 곳을 돌려보기도 했지만)이다. 심지어는 그 언젠가 직관(직접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보는)을 보겠다고 티켓 오픈 타임을 알람해두고 티케팅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니 예능과 드라마를 통틀어 최애 TV시리즈물 중 하나로 꼽는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열혈 애청자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이애청자라 자칭하는 건 그 사실을 주변인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되도록 본방을 사수하며 보는 편인 프로그램으로는 <뿅뿅지구오락실 시즌2>나 부동의 <나혼자산다>가 있으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게 될 때면 보통 이 두 편이 대화의 소재가 되곤 하는 편이다. 나의 주변인들이 <뿅뿅지구오락실>이나 <골 때리는 그녀들>을 대게 시청하는 편이므로, 내가 ‘샤이’가 된 데는 <최강야구>를 시청하는 인물이 주변에 적어서도 있지만 진짜 샤이한 열혈 애청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과거엔 즐겨 찾지 않는 것을 즐겨보게 된 내 사정, 그건 나의 조건 변화에 있다. 이제 미디어가 심어주려는 환상에도,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서사에도 크게 심적 동요되지 않은 세대가 된 것. 승부의 세계에서 대게 선수들의 치얼업이나 그 외 뒷수발의 역할을 하게 되는 여성들을 보고도 그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실 뿐,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넘길 수 있는 기성세대. 모든 정보와 재미를 유튜브에서 찾는다는 나의 조카 세대에 의하여 낙후될 세계의 소비자. 소극적 소비자로 불편함을 거부해 미력하나마 변화를 이끌어내는 변화의 추동자가 더이상 아니라는 것. 나는 이 고백이 없이 <최강야구>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청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최강야구를 애청하는 이유는, 그들이 극복될 수 없는 핸디캡을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세월과 맞바꾼 노련함과 프로의식과 조직력과 팀플레이로 목표 승율에 도달해나가는 그 서사에 있다. 평균나이 40세의 프로야구 은퇴 선수들로 구성된 몬스터즈야구단의 그 서사는 마냥 짜릿하지만도 않고 난데없이 처절하지도 않은, 간혹 므흣한 미소를 머금고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그들의 성장은 막연하지 않고 누구나 차용가능한 디테일이 있다. 21개의 경기 중 15승을 달성해야 하는 이들의 노하우라는 것은 개별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고, 다른 가능성을 찾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역치와 여백의 시간을 마련해 자기 부정요소를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다. 팀을 위해서라도 개인의 실패를 두고 보지 않는다.  

최강야구 시즌2 50회 JTBC 유튜브 캡쳐화면

최강야구의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영상들에 대게 그런 성장담이 녹여있다. 최강야구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장면1. 14화 경남고 1차전 경기. 이홍구 선수는 2회말 0대 0의 땡땡한 승부의 순간 타석에 등장해 이 균형을 무너뜨리는 투런 홈런을 친다. 이 홈런이 특별히 기억되는 이유는 이의 3번째 전 경기였던 11화 충암고 2차전에 그 힌트가 있다. 이 경기에서 입스(압박감에 따른 불안)를 호소하는 이홍구 선수를 대신해 타자인 이택근 선수가 19년만에 포수마스크를 쓰고 대타로 뛰고, 그는 이후 포수라는 포지션 대신 타격감 회복에 매진하다 결국 그 다음 상대와의 경기에서 입스 극복을 알리는 홈런포를 쏘아올린 것이다. 이홍구 선수는 자신의 첫번째 MVP를 이날 얻어 낸다. 그리고, 두번째로 꼽는 명장면, #장면2. 경남고 2차전. 이날의 경기가 명장면으로 꼽히는데는 역시 충암고 2차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재는 부상으로 마운드에서 도통 볼 수 없는 장원삼과 송승준 선수가 가까스로 동점을 유지한 채 6회말 교체되어 등장한 이대은 선수가 폭투로 역전을 허용하고 몬스터즈팀은 결국 첫 콜드게임 패를 당하고 만다. 그리고 15화 경남고 2차전, 폭투로 마음고생하던 투수 이대은 선수가 9회말 마운드에 올라 프로 못지 않은 구속을 뽑아내고 4대 3의 아슬아슬한 1점차 승리를 지켜내며 에이스로 등극한다. 마지막으로 한일장신대 1, 2차전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이 장면에는 1, 2차전에 연달아 마운드에 오른 송승준 선수가 중심에 있다. 중간계투 셋업맨이나 마무리 투수로 나서는 투수조 주장인 송승준 선수는 경남고와의 1차전 0.3이닝 동안 3실점을 하고 강판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 2차전에서 10대 3으로 몬스터즈가 앞서는 8회말 등판하여 설욕에 성공한다. 

JTBC엔터 유튜브 캡쳐화면

그리하여 이들의 승부라는 것이, 스포츠에서 유일하다는 ‘희생플라이’, 즉 개인 희생을 담보한 팀플레이가 아니라 승부에 직결되지 않더라도 또는 때때로 패인의 주요소로 작용할지라도 그것이 최선이었다 할 수 있는 자기 몫을 충실히 다하는 데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언젠가부터 재미없어진 ‘야구경기’, 탁월한 개인을 앞세워 이기기 위한 게임을 하는 것이 스포츠인가 그건 정글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이, 그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승리가 아니라 승율을 쌓고 진짜 야구를 한다. 


내 기억에 그 말은 포수 이홍구 선수가 제일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경남고 1차전 MVP를 수상에 대한 소감으로 이홍구 선수는 “아직도 야구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구나” 라고 말하고 이대은 선수는 경남고 2차전에서 승리하고 “이제 (진짜) 야구 하는 것 같아요”라는 인터뷰를 남긴다. 천재성만은 악마라고 불리우는 정근우 선수는 야구는 해도 해도 재밌다 하고, 찬물택, 용암택 등 별명부자로 알려진 박용택 선수는 프로땐 몰랐던 재미를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은퇴 후 깨달아가는 진짜 승부에 대한 이야기. 지던 이기던 그 결과에 승복하기 위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승율을 차곡차곡 쌓듯 성장하는 이야기. 이 방송의 순기능으로 꼽히는 아마추어 리그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한국야구의 저변을 넓히는 일은 그 진짜야구의 성취처럼 따라붙는다. 


그래서 내가 꼽는 명장면은 사실 따로 있다. 그건 거의 매화 나오는 장면이기도 해서 명장면이라 보기 어려운 장면이기도 하지만 난 매번 그 장면에서 침을 꼴딱하고 삼키곤 한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상대 투수의 높은 직구를 쳐낸 후 음소거가 된 화면에 슬로우 모션이 걸리고 뛰기 시작한 타자와 공을 던진 자세를 풀기도 전에 얼굴부터 돌아간 투수와 높이를 가늠하며 뒷걸음 치는 외야수와 준비된 자세를 풀고 선 내야수와 어정쩡하게 일어선 동작으로 멈춘 벤치의 감코치진과 동료선수, 더그아웃 앞으로 모여선 상대선수와 관람객까지 모두 하늘을 멀리 올려다보는 바로 그 장면이다. 저 작은 공 하나에 모든 시선이 쏠리고 희망과 막연한 기대를 품는 그 모먼트. 서로 다른 기대를 품고 저 작은 공 하나에 모든 이목이 집중될 때, 다 이긴 것 같기도 혹은 기적이란 없는 것처럼 질 것 같은 순간에 이 승부의 결과를 알 길이 없어지게 하는 그 공 하나의 힘을 느낄 때, 나 역시 후루룩 이 프로그램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단 한순간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같은 지난한 성장의 시간, 그 찰나의 순간을 클라이막스로 만들어내는 매력, <최강야구>의 치명적 매력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JTBC봐야지 유튜브 채널 캡쳐 화면



이 글릴레이를 함께 하고 있는 로아나(@loanapark)님의 글은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01. 이래서 야구를 봅니다


이 글레이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는 다음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00.글레이에 앞서 : 수빈이 로아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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