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글루스 : 2인의 글쓰기]를 시작하며
지난 10여년 간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해왔던 2인의 활동가가 회복과 치유, 복구와 재건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한 사람은 시민참여 방식의 대안적 공간과 구조에 대하여 고민해왔고, 한 사람은 그것의 질적인 사회 변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하여 연구해왔습니다. 한 사람은 정치적 변화가 사회변화를 추동해낼 것이라 착각하며 좌절했고, 한 사람은 미세한 질적 변화에 주목했지만 정치적 파동에 끝내 무가치해져 버리는 연약한 것들을 자주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긴 망설임 끝에 사적인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주제는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재의 관심사에 나누고, 쓰고, 천천히 쌓아가며 관계 사이의 너른 공간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주기는 1달에 한편을 목표하며 각자의 브런치에 동시 게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글릴레이의 그 첫번째 주제를 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통의 주제로 글쓰기를 해보자 결정한 뒤로도 한참을, 이 일이 저에겐 반 보 정도의 가까운 미래조차 좀처럼 조망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게 이 글릴레이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좀처럼 예상되지 않았어요. 그 연유를 깊이 고민해보고 있지 않다가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하여 서로를 잘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과하게 조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이 글을 쓰면서 한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뭐든 각자의 생각을 드러내놓는데 서툰 편이더라고요. 업무의 특성상 누군가를 서포트만 해오던 사람이라는 이 유일의 공통점이 그래서 조금은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한동안 우리는 어느 자리에서건 침을 튀기며 <최강야구> 이야기를 했고, 저는 그때부터 로아나의 말수가 조금 더 늘어났다고 조심히 짐작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제가 좀더 수다스러웠지요.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우리의 관계는 <최강야구> 애청자임을 서로에게 고백한 그 전과 후로 나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좀처럼 격양되지 않는 편인 로아나가 흥분해 열띠게 말하는 걸 목도한 후 저는 조금더 가까워진 느낌이었거든요. 아, 그렇다면 둘 사이에 기류변화란 것은 어쩌면 저의 로아나에 대한 감정만 해당되는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 뒤 그 전보다 적극적으로 제가 혹은 로아나가, 그렇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 이제 뭐든 드러내놓고 해보자, 앞뒤 재지 말고 뜸만 들이지 말고 쓰고 보자 라는 말이 서로에게 통했고, 그렇다면 동시 애청중인 예능프로 <최강야구> 그것부터 써보자.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기억의 조작이 아니라면요^^ 그래서 그 첫번째 주제는 <최강야구> 감상기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자의 30대에 비즈니스 생태계 내에서 뚝떨어진 섬처럼 아니 우주의 별처럼 깜빡이며 격조했고 어느 행사장 어색한 분위기 속에 섬처럼 모여든 작은 테이블에 서로에게 의지해 조우한 이후 이어진, 그러나 때때로 그것의 지속가능성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느 계모임(심지어 매달 얼마씩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함께 가자는 그런 진취적인 모임이었다지요)의 구성원으로 만나왔으며, 언젠가부터는 종종 둘이 따로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한 적이 꽤 있더군요.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가까워진 그러나 어느 순간 일정 거리 너머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잃지 않으려 부단히 그 선을 지키고 선 로아나와 저는 이렇게 무언가를 도모하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저에게 뜻밖의 사건입니다. 이건 저의 편견이기도 할텐데요. 고백하자면 누구와 함께 있던 자기 식대로 사유할, 잔잔한 강물 같은 시간이 필요한 로아나는 큰 파형의 파도처럼 갑작스럽게 들이치는,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건 차라리 우뚝 도드라져 버리기 쉬운 저같은 소위 대문자 E형의 사람을 왜인지 피하고 싶은 사람유형으로 조용히 점찍어 두었을거라 지레 짐작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로아나는 여럿이 함께 만나는 사적인 만남 외에 나와는 무엇을 별도로 도모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단정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이순간 로아나와 나를 고집스럽게 ‘우리’라고 해보고 있네요. 그러고보니 글쓰기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거리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소통방식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글릴레이 기획과 관련하여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더군요. 그 시간은 뭐든 하기로 결정해놓고 난 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낸 것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한번은 우리집 부엌의 식탁을 사이에 두고 였고, 또 한번은 합정역과 홍대입구역 사이 어느 스타벅스에서, 그리고 또 한번은 합정역의 건강식을 파는 식당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글릴레이를 합시다 하고 제안한 사람은 제 기억에 로아나였습니다. 그때는 길을 걷던 중이었고 헤어진 뒤 카톡으로 몇 번의 대화를 이어갔지요. 우리가 시작을 망설인데엔 서로의 관심사를 파악하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스타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업무스타일로 보자면 로아나는 연구자에 가까웠고 저는 기획자에 가까운 편이며, 저는 무엇을 깊이 파는 걸 지루해 하는 성미이고 로아나는 무엇이든 되도록 깊게 파는 스타일로 보였으니까요. 그건 <듄>이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과 같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더 자주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직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고 로아나는 화면 그 너머의 의미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저는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편이고 로아나는 장고 끝에야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합의도 없이 이렇게 일을 지를 수 있게 된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격조하기만 하지 않으면서 또한 무례하지도 않을 거라는, 어떤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쓰기는 둘의 타협지점 그 어느 곳에서 시작하는 첫번째 프로젝트라 불릴 만 하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글릴레이를 왜 시작하게 된 것일까.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구구절절 토를 단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저는 첫번째 글쓰기를 시작할 때야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정말 이 글릴레이를 시작하게 된 저의 진짜 이유를 말해야겠어요. 당연히 앞으로 어떤 글을 쓰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영영 못하게 될 이야기지요.
로아나. 아마도 지금부터 말하는 것이 우리 둘 사이에서 가장 다른 기질 중 하나일텐데요. 저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지지받고 응원받는 것으로 자가동력을 삼는 편인 사람입니다. 내발적 에너지 생성은 잘 안되는 인간유형이죠. 우리가 함께 알고 있는 그 생태계에서 한창 태풍의 주변부에 놓여있을 때, 조건 없는 지지와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주던 동료이자 친구들 덕분에 겨우겨우 그 시간을 견디고 버텨 내었듯이 말이죠. 그러나 태풍이 지나간 후 본래의 형태를 찾을 수 없는 폐허 속에 서 있을 땐 사실 서로에 대한 위로가 마냥 버티는 힘으로도 쓰이지 못한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위로와 응원 이외 다른 방법을 체득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력하기만 했고, 한동안은 위로와 응원의 말조차 나를 소진시키는 원인 같기도 했지요. 비능동적으로라도 무력감을 벗어날 외부의 자극을 추동해내고 내 주변부터 차분히 재건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힘은 위로와 응원의 말과는 조금 다른 것 같거든요. 그러다 어떤 약간의 힌트를 얻은 때가 바로 로아나와 무아지경으로 <최강야구> 이야기를 할 때 였던 것 같아요.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할 수 있는 것부터 뭐든 함께 하자는 뭐 그런 것이요. 가만히 있지 말자. 위로만 하지 말자. 작고 의미 없지만 뭐든 움직이자. 행동하자. 쓰자. 다시 삶의 터전을 일구자. 그리고 즐거움을 잃지 말자.
그러니 이 글릴레이는 그 자체로 지지와 응원의 그 다음 버전 같은 것일 겁니다. 로아나와 글쓰기를 하면서 배워보려고요. 무해하지만 무력하지만은 않은 방법이요.
저는 이 글릴레이의 제목에 대하여 사실 가장 많이 고민했는데요. 각자가 자기식대로 부르기로 한 이 글릴레이 저의 이 기획물의 제목말이지요. ‘우리’ 라는 말을 어색하지만 계속 내뱉다보니 제가 애정하는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드라마 제목을 떠올리고 조금 더 고민했는데, 그건 우리들의 뒤에 붙은 ‘블루스’ 라는 음악 장르 때문이었어요. 왜인지 한의 정서가 담긴, 약간은 우울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한편 정서적 치유를 위한 음악이라는 어떤 설명을 보고 어쩌면 이 글릴레이에 딱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단 생각 끝에, 저는 이 글릴레이의 제목으로 <우리들의 글루스>를 써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글릴레이 라는 무대 위에서 서로에게 없는 면이, 그 각자의 강점이 서로의 성장을 돕는 실질의 힘으로 작동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함께 한 이 글쓰기 시간이 로아나의 다음 장으로 가는 길에 미력하나마 ‘도움닫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이제, 서로를 믿고, 힘차게, 점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