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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l 26. 2023

글쓰기의 효능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18)

5월말 제안을 받아 시작한 단기프로젝트의 끝이 드디어 눈 앞에 보인다. 지지부진할 것 같던 이 일거리의 최종보고 날짜가 어제사 8월 중순경으로 못박아지면서다. 2개월 20여일 이라는 주어진 시간 중 1개월은 자료조사와 답사로 시간을 보냈고, 20여일은 중간보고 자료를 만들면서, 나머지 한달은 한글파일형의 최종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6월 29일 중간보고가 있었으니 7월 1일부터 썼다치면 약 26일, 일주일의 하루 정도를 제외하고 매일 책상머리에 3~5시간씩 앉아 보고서를 썼고, 오늘로 홀로 쓴 개인분량이 150여 페이지(본문 폰트크기 11포인트)에 달한다. 그러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역시 개인적 글쓰기에 소홀했던 탓이다. 거기다 책읽기를 손에 놓은지도 꽤 된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개인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나름 1달간의 계획을 잡아두고 시작한 일인데 중간중간 심적인 부담으로 결국 몰아서 보고서를 쓰게 되고 덕분에 보고서의 드래프트 작성은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되었으나 무아지경으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보니 나의 개인글쓰기 생활이 많이 무너져 있었다. 점은 지금도 내내 아쉽다.     


일의 특성상 연구용역에 참여할 일이 꽤 있으나 전체 보고서의 40%를 넘는 분량을 써본 적은 없고 더군다나 연구보고서 형식의 글쓰기에 취약한 편인 실무형 기획자로 이 연구에 대뜸 이 많은 분량을 소화해보겠다고 한 데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한 달 노동일수 24일로 쳐 하루 평균 5페이지씩 쓴다고 할 때 100페이지(그때는 그정도 일거라 예상) 그까이꺼 못쓸 것도 아니라는 단순 계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정량 계산이 가능했던 건, 매일 꾸준히 차곡차곡 써본 경험때문이었다. 상상만 하던, 머리 속에 있던 걸 밖으로 꺼내 실제화 해나가는 과정, 한문장이 단락이 되고 장이 되고 한 파트로 불어가던 시간들이 합쳐져 부지불식간에 1천장의 페이지가 쌓이고 나름의 완결성을 갖춘 편의 원고로 뜻하지 않게 마주하게 된 감각. 그건 일주일에 3~4번 홈트를 하면서도 느끼는 감각이다. 꾸준히 운동을 한 시간이 쌓이고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뛰는 몸이 가벼워져 있는 걸 느끼고 들어올리는 팔이 무겁지 않고 상체를 지탱하는 어깨의 고달픔이 줄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직전까지 계속 드는, 하기 싫다는 감정과 안의 일종의 겁부터 드는 마음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걸 40대에서야 깨달아가고 있다니..) 아, 토스에서 포인트를 모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다.   

           

그래서, 미공개 장편원고의 성취 같은 것이라 스스로 나에게 말하는 중이다.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있지 않지만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그것의 효용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성취. 그러므로, 더이상 원고라 하지 말자. 이미 그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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