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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l 19. 2023

도시침수재해에 대한 생존자적 기억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17)

작년 이맘때쯤 강남과 관악 일대로 침수 사고가 났을 때, 한창 내 페이스북(현재는 탈퇴상태)의 피드에는 과거 침수에 대한 경험담들이 꽤 올라왔었다. 그때는 좀처럼 남일처럼 생각되지 않는 혹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사건사고를 목도하고, 꼭 옛 일을 회상하듯 경험담들을 올리는 것이 영 마뜩찮아 한동안 페이스북을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반면, 현재 나의 유일의 SNS인 인스타그램 속 세계는 언제나 맑음상태라 이런 글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뿐더러 게시물들을 보고 있자면 꼭 내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아 요며칠은 잘 보게 되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사회적재난의 시기 SNS는 다같이 나는 살아남았다는 알림 또는 안도 혹은 자랑의 공간 같기도 하다. 그래서 퍽 유해한 것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도 대체로 무감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작년의 침수 사고에는 오히려 무감해지려고 애썼던 것 같다. 나는 10세 미만 죽을 뻔한 경험을 압축적으로 한 것 같기도 한데, 그 경험이 죄다 그곳 강남 선릉역 인근 반지하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에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에는 특히 무감해지기가 어렵다.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듯 비추는 진흙 범벅의 집안들을 들여다볼 때나 누군가 맨홀에 빠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나는 세상이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겐 여름만 되면 반지하방에 살던 남자어른들이 모여 모래주머니를 나란히 줄지어진 반지하방 복도끝 현관문 앞에 쌓아올리던 기억이 있고, 꼭 기상경보음 같은 엄마의 외침에 자다 일어나 집안에 찬 물을 퍼내고, 그렇게 퍼내고 퍼도 결국 차올라 그 무거운 장롱이 둥 떠 엎어져버릴 때야 안방 창문 밖으로 가장 어린 남동생 먼저, 그리고 나, 언니, 엄마, 아빠순으로 차례로 빠져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주인집 거실에 피신해 눈치를 보던 언니가 신당역에 외할머니댁에 가겠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벼락같은 엄마의 화인지 자포자기인지 알 수 없는 허락을 득하고 깜깜하게 늦은 시간 나를 데리고 집주인집을 나서 손을 잡고 그 침수의 현장에 몸을 담궜던 찝찌름한 기억. 비현실적으로 혹은 장난치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선릉역으로 가던 길, 목까지 차올라 말 없어진 작은 두 사람이 까만물들을 헤치고 나아갔던 그 길에서 결국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멘홀 뚜껑을 열어두어 생긴 회오리에 휩쓸린 것이었다. 그때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꽤 긴시간이라 느껴지는 시간 동안 언니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고 쥐새끼 한마리 없었던 것 같이 기억되던 그 길을 지나던 어른 행인에게 구조되어 선릉역 입구에 섰을 때는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못하고 이게 다 내 잘못 같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 언니는 더 했을듯) 그리고 신당역 외할머니의 식당겸 살림집에서 천장 즈음에 붙은 TV를 보다 멘홀에 빠져 죽었다는 내 또래 아이의 소식 같은 걸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또렷하고 충격적으로 기억되는 장면은 사실 다른 것이다. 그렇게 언니와 우여곡절 끝에 선릉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한 량의 끝 문 앞에 서서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머리 끝까지 흠뻑 젖은 두 사람은 이 재난을 겪은 사람이 우리 뿐이라는 자각을 했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였을 거라는 착각. 적절하게 시원한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모두 뽀송뽀송해 보이고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는데, 자연재해라고 생각된 재난이 반지하방의 나와 우리 가족에게만 닥쳤다는 감각같은 것이었다. 나는 언니와 10정거장이 넘는 그 길을 뽀송뽀송한 사람들을 피해 통로 끝 벽에 서서 갔던 기억, 이 불평등에 대한 자각이 내가 침수로 겪은 일 중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것보다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게 1990년이 되기 전 일이니, 세상은 정말이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PS. 그리고 한참을 지나 얼마전 뉴스에서 본 장면. 어느 분쟁지역 부서진 건물에서 탈출하고자 구조를 기다리던 어떤 아이가 건물 밖에 모여든 어른들에게 창 밖으로 어린 동생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다가 3,4층 높이에서 떨어트려 동생을 살리는 장면을 본 후론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린 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내가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가를, 언니의 입장에서 처음 생각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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