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19)
극한의 호우라 불리는 장마를 지나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한복판을 이글거리는 검회색의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니 구성원의 자율도가 높은 편인 회사를 다녔던 탓인지 여름 휴가철에 휴가를 다녀본 기억이 없다. 대게 그 시간은 안팎으로 휴가를 떠나 느슨해진 업무강도를 만끽하며 에어콘 효과를 빵빵히 볼 수 있는 사무실에서 보냈다. 대신 9월이나 10월 즈음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 맞춰 연차를 몰아 휴가를 떠났다. 그러니까 나에게 혹서맞이란, 남들 다 떠날 때 사무실에 남아 간만의 한산함을 누리는 것 같은, 평일 땡땡이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쾌적한 온습도를 유지하는 사무실이 아닌, 외부의 온습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의 집 작은 서재방에 앉아서는 꽤 자주 누군가 나에게 돈버는 일의 고통을 깨닫게 하고자 일부러 벌을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식사 후 책상 머리에 앉고 점심을 먹고 산책 후 다시 책상에, 저녁 먹고 운동 후 하루의 일과를 마치며 다시 책상에 앉는 반복되는 일상이 왜 이렇게 버거운 짐처럼 느껴지는지. 나는 이 계절에 맞서고 있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나는 더위 속에 간간히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 채 혹은 그마저도 없이 긴 시간 무언가에 몰두하며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굳이 찜통 같은 사우나실에 들어가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모래알 한 알 한 알이 무겁고 더디 떨어지는 시간의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당췌 벗어날 길 없다는 듯 챗바퀴와도 같은 일상을 만번쯤 행한 것 같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도 다시 한 발 한 발. 시간의 감각이 더뎌지고, 한낮에도 눈꺼풀이 무겁게 감기며, 뭐든 고통스러움으로 기억되는 이 혹서의 시간에는, 다만 멈추고, 절실히 쉬어가야 한다는 걸, 책상머리에 앉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마감이 코 앞이지만 어제오늘은 마음을 놓고 휴식을 취했다. 친구와 어제는 아트선재에서 서용선 작가의 기획전시와 <위대한 이탈리아 비전:파르네시나 컬렉션>전을 보았고, 오늘은 영화관에 가서 홀로 <밀수>를 보려다 말고 대신 산책 후 아빠에게서 가지와 감자 등을 받아와 여름카레를 해먹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사실 나는 불과 몇 주 전만해도 이 시기를 순천에서 보낼 생각을 했다. 이런 나의 계획이 비틀어진 건, 단기간 프로젝트로 받은 일의 일감이 생각보다 많았고 지역을 오갈 일이 많았으며 더더군다나 마음의 부담을 이고 순천에 내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다음 순천행은 결국 8월 11일로 밀려나있다. 7월 9일 순천에서 올라왔으니 딱 한 달 만에 내려가는 것이다. 슬슬 전어가 나온다고 하니 이번에 순천에 가면 여름 햇전어를 맛볼 참이고 추천받은 도넛가게도 가볼 예정이다. 그리고 와온해변에도 가볼 수 있으면 가봐야지. 여름의 노을을 봐야지. 낮잠을 자야지.
이렇게, 한 여름밤, 곧 있을 휴가도 상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