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20)
최근 다시 시작한 '알쓸' 시리즈 <알쓸별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나온다는 예고편에 낚여 1편을 중간중간 스킵하며 보다가(결국 그가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아 이거 제대로 낚였구나 했다는) 그들의 첫 주제도시가 된 '뉴욕'에 대하여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다. 세계 최대의 상업도시가 되기까지 뉴욕의 역사에 관한 일관된 이야기 중 맨허튼 지역 중앙에 만들어진 인공공원인 센트럴파크가 만들어진 배경에 관한 것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지상 최대의 금싸라기 땅 뉴욕 한복판에 여의도보다 넓은 인공공원이라니, 이와 관련하여 한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역시나 이 도시를 새로 계획할 때 대규모의 공원을 만드는데 반대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날 패널로 등장한 유현준 건축가는 "이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100년 뒤 이 크기의 정신병원을 짓게 될 것"이라는 어느 도시계획 전문가의 통찰 덕으로 340여 헥타르 면적의 인공공원이 만들어졌다는 비화를 전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첫번째로 든 생각은 미래 지향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과 합의가 부재한 한국의 도시계획 씬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말에 당시 뉴욕의 시민들이 설득되었다는 것과 지금의 세대가 그걸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러고 난 뒤에는 최근 한국 주요 도심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이 꼭 100년전 그 누군가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 꽤나 마음이 서늘해진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새삼 전문가 라는 존재의 사회적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꼽씹어 보기도 했던 일화였다.
반면, 정말이지 요즘 처럼 실시간으로 날라드는 '뉴스'라는 것이 이토록 유해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저널리즘이라는 것이 그냥 날 것의 소식을 전달하는 것만은 아닐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들로 기사들을 적고 있는 것이며, 전문가란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존재는 하는 것인지, 대체 어떤 역할을 하며 전문성을 가지고 돈을 벌고 있는 것인지.. 요즘처럼 한심하기도 없었던 것 같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적대와 혐오로 변질된 사건사고 또는 사회적재난 관련 기사들을 볼 때도, 그래도 다수의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애도와 응원과 지지가 보였고 그것에 눈길을 더 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그것조차 쉽지 않아진 느낌이다. 방기된 사회적 의무에 취해야할 이해와 권리만 얄팍하게 내세우는 목소리들이 너무 전면에 대두되어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졌다. 구조적 문제는 외면해버리고 손쉽게 이해관계 안에서 갈등적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 책임있는 사람들이 온통 니탓 내탓에 결국 이편 저편으로 싸우는 꼴을 오래 보고 나니 이게 피로도를 넘어 원래 그런 것이려니 싶어지는 건가 싶고. 별안간 폭발한 듯 터져나오는 도심지 살인 예고글과 그와 관련 뉴스에 인류애라는 것이 정말 바짝 말라가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지역으로 돌아다닐 일 많은 프리랜서 부부를 걱정하며 고속터미널이나 서울역 같이 인파가 몰리는 곳에 다니지 말라는 어른들의 안부전화를 받고, 그저 적대화된 타인들과 공존하는 사회를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며, 하루종일 터럭같은 희망마저 사라지는 기분이 되었다. 이게 다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올라오는 푹푹 찌는 날씨 탓이라고 하기엔, 여러모로 마음이 퍽퍽하다. 나라걱정 하지 말고 나나 잘 살자를 모토로 삼고 있는 프리랜서의 시덥지 않은 나라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