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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Aug 09. 2023

나의 여름보양식품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21)

잊을 만 하면 하는 일 중 하나가 팥소를 만들어 단팥빵을 해먹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잔뜩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두고 간식이나 간단한 저녁식사 대용으로 꺼내먹으며, 다 떨어질 때쯤 혹은 잊을 만 하면 또는 여유가 있을 때 만들어 다시 냉동실에 쟁겨두곤 한다. 에어프라이어로는 적정온도 맞추고 앞뒤 골고루 빵 굽기가 시원찮아 얼마 전엔 오븐과 몇 개의 재빵도구들도 새로 개비하였다. 팥의 은은한 단 맛을 좋아하고 먹고 나면 금새 포만감이 드는 덕에 나에겐 비상식량 같은 음식이 바로 단팥빵이다. 나는 시루떡을 좋아했고(언젠가 떡국 먹고 체한 후로 떡을 잘 안 먹게 됨) 빵집에 가면 팥이 든 빵은 꼭 한 개씩 사는데, 희안하게 양갱은 또 좋아하지 않는다.

단팥빵의 주재료인 팥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3시간 이상 팥을 불리고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 끊이고 졸여야 하는 까닭에 여름 한 철 난 그 일을 쉬고 있었다. 더군다나 한창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언제나 그렇듯 점심을 먹은 후 가장 뜨거운 낮시간에 한참 걷다 들어오다 뭔가 살아야겠단 의지에 의한 듯 집 앞 슈퍼에서 빙과인 '팥빙수'를 잔뜩 사들고 들어왔고, 그날 저녁 나는 별 생각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팥을 쑤어 팥소를 만들었는데, 아마도 빙수에 팥을 추가해 먹을 심산이었던 것 같다. 그 순간 잔뜩 더위를 먹은 게 틀림 없었다. 내 딴의 처방을 스스로에게 한 것 같고, 하여간 정신을 차려보니 땀으로 샤워를 하며 팥을 쑤고 있었다.

그리고 팥을 쑨 다음날부터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뙤앙볕 산책 후 만들어놓은 팥소를 빙수에 넣어먹었고 그러고나면 금새 정신이 번쩍 하고 들었다. 팥이 찬 기운이 있는 식재료라는 걸 보니 어떻게 알고 몸이 반응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 나에게 여름식품이라면 어쩌면 팥과 단팥빵일런지도.


그리고, 이상기후에 각자도생의 시대를 뜨겁게 견뎌내고 있을 그대들, 각자의 여름보양식 잘 챙겨먹고 잘 버텨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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