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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Aug 13. 2023

햇전어와 여름방학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16) 

봄과 여름 사이 오뉴월의 어느 날에는 정어리쌈밥이었고, 입추가 막 지나 가을을 재촉하는 늦여름에는 햇전어였다. 이번 순천행을 위해 짐을 쌀 때 긴팔티도 한두장 챙겨야 할까 고민하며 간절기가 왔음을 깨달았고 실패가 예견된 간절기 옷입기와 달리, 계절과 계절 사이에 낀 이 간절기 음식들을 나는 운이 좋게도 올 한 해 모두 챙겨먹게 된 것이다. 가을전어라는 말은 익히 들어봤고, 그리하여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먹던 전어에 대한 나의 기억은 시아버님 제사가 있는 10월이나 11월에 대다수 몰려있다. 그러니까, 주요 이벤트가 끝난 다음날 어스름한 저녁 자갈이 깔린 너른 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그을릴 대로 그을려진 통돌이 세탁기 부품이던 쇠 통 안에 바짝 마른 장작을 떼워 숯불인지 연기인지로 구워먹던, 그 맵싸레한 향과 잔가시가 씹혀 더 고소했던 전어구이맛으로 기억되는 것이었다. 제사음식 외 별미와도 같았던 전어는, 강진의 재래시장에서 원없이 떼와 그야말로 회 쳐먹고 궈먹고 무쳐먹는 가성비 좋은 식재료였고, 난 꼭 그것의 최상의 맛과 분위기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3~7월 산란기 동안의 금어기가 풀린 직후에 잡아 먹는다는 햇전어라는 것은 어쩐지 낯설고 구미가 그리 땡기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방문때 갯장어샤브샤브를 먹었던 순천역 앞 역전시장의 역전횟집을 다시 찾아 회와 구이, 무침으로 나오는햇전어코스를 시켜먹었고, 결론적으로 햇전어는 뼈가 부드러워 회로 먹으면 가을에 먹는 것보다 더 고소한 맛이 나는 것 같았고, 구이는 역시 기름지는 가을에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햇전어는 사십대에 다시 맞은 여름방학과 함께 기억될 것 같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 미화된 감정과 덜덜대는 버스 안에서 졸다 꾼 꿈 같은 것들이 제멋대로 뜨문뜨문 직조된 것들 사이에 끼어있는 것이다. 

햇과실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초록빛 광택을 뽐내던 여름나무들이 눈부셨던, 

온 몸에 줄줄 땀이 나면서도 신이 났던, 

선풍기 하나에 붙어 낙안읍성의 야외테이블에서 경쟁하듯 퍼먹었던 팥빙수의 차고 달달하고 간간이 쫄깃했던 맛과 함께. 

타지에서 온 낯선 이들(잼보리에서 잔류한 몇몇 이들)과 시내로 나가는 낙안읍성 버스정류장에 앉아 쭈쭈바로 더위를 달래며 한참을 앉아있다가 서로간 빚진 마음으로 영 안되는 영어로 주절거리던 어색한 순간과 숙소로 돌아오는 과속버스 안에서 그래도 노곤하게 눈이 감기려던 아슬아슬했던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었던, 이 짧은 여름휴가 기간 한뼘더 성장했다 착각하게 하는 이 직조된 감정인지 시간 사이 햇전어의 고소한 맛도 함께 배었다. 

같으면서도 완전히 새로왔던, 햇전어와 여름방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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