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시절에는 이른 새벽부터 출근 준비를 시작으로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퇴근을 하고, 늦은 밤까지 육아와의 전쟁을 치러야하는 삶을 살아가며 ‘나만을 위한 시간’은 당연히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쪼개고 마련할 생각은 못한채 그저 직장에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럼 갑상선암 수술 후, 전업주부가 된 이후에는 달라졌을까? 아니다. 전업주부가 되고 보니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하며 오로지 아이만을 위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둘째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첫째 아이가 6살이었기에 어느정도 커 심적으로도 여유가 있었고,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생겨 책을 읽고는 했다. 하지만 얼마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는 또다시 신생아 육아를 경험하며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야 했다.
워킹맘이던 전업주부이던 ‘나를 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저 ‘엄마’라는 존재는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려 하거나 찾으면 안되는 것만 같았다. ‘나’라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누구의 엄마’라는 사명감이 주어져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나의 온 삶을 바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모두 나만의 착각이고 핑곗거리 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침 적절한 시기에 ‘미라클 모닝’이 파도처럼 온 세계를 휩쓸고 있을 즈음, 나 역시, ‘새벽 시간’의 달콤함을 맛보게 되었고, 그 달콤함이 가진 위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건, 나는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새벽 4~5시경에 마주하는 달콤함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맛본 달콤함과, 느낀 강력한 위력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마주하는 멋진, ‘미드나잇’이었던 것이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으로 무의미하게 보내는 하루하루 속에서, 엄마인 나도, ‘나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마련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마주하게 된 달콤한 ‘미드나잇’이라는 시간과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육아와 살림으로 지치고 버겁게 느껴지기만 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는, 심한 우울증 증세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남편은 물론이고, 너무나 사랑스럽기만한 우리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특별한 이유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스스로 우울증임을 인식 할 정도였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병원을 간다는 것이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방치한 채 몇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심한 우울증이 찾아온 그 시기에는 정말 남편과의 사이도 안 좋아졌고, 아이들에게도 나쁜 엄마가 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더라도, 억지로 눈을 감고 무의미하게 잠자리에 누워, 안오는 잠을 억지로 청하기 보다는, 육아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거나 BTV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도 잘 못하는 나에겐 그것만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TV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다보면 새벽 3시가 되고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