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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Nov 24. 2023

상대가 저급하더라도 나는 품위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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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씨를 이만-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허리춤에 두었던 선생님의 손바닥이 이번에는 머리로 올라왔다. 머리쯤- 이 위에 있는 사람은 아버님과 남편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쯤-에 있는 사람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영희씨를 제외한 모든 관련자들이 이 위-에 있으니 '좋은' 상황임을, 선생님은 머리끝을 가리키는 손 끝에 힘주며 주장했다. 다른 대다수 환자들의 경우가 나와 같지 않음을, 자신의 오랜 상담 경험을 들며 역설했다. '비정상' 시모에 '비정상' 남편, '비정상' 시가 식구들은 원 플러스 투 같은 것쯤 되려나. 그렇담 나는 남편과 아버님이 '정상'임을 감사하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녀가 말한 좋은 상황이라는 것이, 나보다 더 불행한 이의 처지에 견주는 것이라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그들만큼 고단한 처지는 아니니 나는 안심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인지. 위와 아래, 허리춤과 머리끝만큼의 거리는 좁혀질 수 있을지 눈동자로 헤아려보았다. 영희씨는 왜 저리 아래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인지 원망도 해보면서. 그 사이가 먼 듯도, 가까운 듯도 했다.


선생님은 '정상', 그러니까 이 만치 위에 있는 이들과 내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외형적으로 질문의 형태를 띠었으나 실은 의사로서 환자에게 전하는 권유이자 해결책이었을 테다. '정상인'들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비정상'인 영희씨와 똑같이 비정상적인 대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내가 선택한 절연의 방식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습관처럼 고개를 연신 위아래로 끄덕거렸던 내 탓인지, 선생님은 내가 자신의 말을 완전히 흡수했다고 느꼈나 보다. 이제 그녀는 앞선 설명들을 깔때기처럼 호로록 모으는 결론을 입에 올렸다. 그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 없음을. 지금은 내 곁에 기꺼이 서주는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결국 나 또한 시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 지금 당장이야 안 보고 연락 안 하면 오케이, 만사형통일 것 같겠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 그 말들의 끝에 그녀는 예언했다. 결국엔 또 영희씨로 인해 내 삶이 뒤숭숭해질 것이라고.

 

선생님은 자신이 내다본 미래를 설명하며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진리를 들었다. 그렇다. 남편이나 아버님의 '안'은 나보다는 영희씨이지 않을까. 40여 년 가까이 이어져온 아내와 남편 사이, 어미와 자식사이야말로 팔이 굽을 '안'이지 않겠나. 나도 어렴풋이 미래를 점쳐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 하나쯤 '평생' 안 본다는 것이 말로는 쉽겠지만, 남편과 결혼생활을 계속 이어간다면 이래저래 때마다 고단하고 성가실 일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떠올랐던 것은 뜬금없게도 한 때 천조국의 영부인이었던 자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렇지만 그건 미셸 오바마쯤 되는 대인배의 말이고. 나 같은 소인배는 저급하게 구는 영희씨를 앞에 두고 '고 하이-' 할 것인지. 아님 똑같이 '고 로우-' 할 것인지 마음속 저울의 추를 이리저리 옮겨보았다. 머리로는 선생님의 말에 옳다고 긍정했으나 돌무더기에 짓눌린 기분을 떨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리 고 하-이 해도 끝없이 바닥을 찾아 고 로-오-우- 하는 영희씨를 겪었던 지난날들을 또 아득히 반복하라는 무책임한 말로 느껴졌다. 나는 품위를 지키며 영희씨를 대했다고 자부한다. 적어도 뚫린 입으로 그녀처럼 다른 사람을 해하지는 않았다. 하고픈 말 삼킬 줄도 아는 것을 인간의 품위로 여기며 8년이 넘게 그녀를 견뎌오지 않았나. 그런 영희씨에게 엄벌을 내리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알고, 가만히 있었더니 가마니 취급 한 그녀와의 역사를 내 손으로 청산하고 싶었다.


정해진 상담시간이 끝나면서 허겁지겁 얼뜬 모습으로 진료실을 나선 그날부터 수시로 모난 마음이 삐쭉 튀어나왔다. 그것은 날 것 그대로 말하자면 왜 나는 내 맘대로 하면 안 돼, 하는 생떼 쓰고픈 마음이었다. 그럴 때마다 되뇌었다. When they go low, I go LOWER.


그것은 나 같은 사람이-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옳음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내는- 평생 생각지도, 입에 담지도 않았을 말이었다. 거울 속 삐죽 대는 나를 보고 있자니, 의느님의 이번 상담은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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