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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Jan 15. 2021

나는 누구와 살고 있는 걸까?

동상이몽 1

"오빠도 변하지 않지만, 언니도 똑같아요. 이 부부는 매일 똑같은 걸로 싸워."


결혼 6년 차. 연애까지 포함하면 8년 차. 그 8년 동안 우리는 말 그대로 '지지고 볶고' 많이도 싸웠다. 연애 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서 싸우고, 결혼해서는 일주일에 3번 이상을 싸웠다. 싸움의 주제는 거의 비슷하다. 신랑은 나의 능력에 대해 지적하고, 나는 신랑의 말투에 대해 지적한다. 지인의 말마따나 싸우는 주제가 참 한결같다.


결혼 후 신랑은 나에게 쓸 수건이 없는데 왜 세탁기를 안 돌렸냐고 했다. 본인이 알았으면 돌리면 되지 그걸 지적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주말 아침에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은데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 신랑은 일어나 밥을 먹으라고 나를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았는데 어째 분위기가 싸했다. 신랑은 아침부터 음식 냄새가 났으면 일어나서 도와주든가 아는 체라도 해야지 잠만 자고 있냐고 타박을 했다. 나는 그 순간 이 결혼을 물리고 싶었다. 주말에 늦잠 잘 자유까지 타박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결혼 전부터 신랑은 혼자 살았는데 주말에 전화를 하면 빨래(그것도 이불 빨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퇴근 후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전화 통화를 하는데, 신랑은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나도 자취를 했지만 요리를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고, 빨래는 한번에 몰아서 하는 편이었는데 살림에 살뜰한 남자친구를 보니 결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할 때 좋은 점이 결혼하면 단점이 된다더니, 살림 잘하는 신랑을 만나서 몸은 편했지만 마음고생은 많이 했다. 주위에서는 요리 잘하는 신랑 만나서 좋겠다, 신랑이 다 해주니 얼마나 좋냐고 할 때마다 속으로 할 말이 많고 대략 이야기를 해줘도 '그래도 좋은 건 좋지 않냐'는 표정이다.


신랑은 어느 정도 나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혼자 하던 걸 나눠서 할 수 있고 알아서 할 거라는 기대? 근데 내가 초반부터 그 기대를 너무 열심히 깨뜨렸나보다. 매일 식탁머리에서 잔소리하는 신랑이 나는 낯설었고, 요리며 청소며 살림엔 관심이라곤 없는 이 여자가 신랑은 너무 놀라웠나 보다.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지방에 간 적이 있는데, 순천만 정원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림? 뭐가 그렇게 어려워?
이 사람이랑 헤어질 거 아니면
그까짓 살림, 한번 열심히 해봐야겠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나는 이런 거에 관심이 없다. 몰아서 하겠다 내 포지션을 내세워봤자 이득볼 게 하나도 없었다. 일단 후퇴를 하고 새로운 작전을 짰다. 벌써 5년 전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집에 돌아온 후 살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성에는 안 찼겠지만 어느 정도 노력을 하니 휴전선 정도는 그어졌다.


살림으로 인한 다툼은 의외로 서울에서 강릉으로 이사를 하면서 큰 폭으로 줄었다. 직장생활을 접고 강릉으로 이사와 자영업을 준비하면서 인테리어 공사 등으로 신랑은 너무 바빴다. 나는 강릉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시간이 넘쳐나면서 뭘 할까 고민하다 살림을 하기 시작했다.


살림도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다. 요리도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찾게 되고, 집도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게 수 있을까 고민했다. 1년 정도 살림에 재미를 붙여가던 중 임신과 출산으로 살림은 다시 신랑 몫이 됐다. 임신 기간 동안 신랑이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잔소리는 거의 안했다.






강릉으로 이사를 오면서 '살림'이라는 1라운드는 끝났지만, '사업'이라는 2라운드가 시작됐다. 같은 일을 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고 싸우고. 최근 새로운 일을 또 준비하면서 3라운드가 시작됐다. 그런데 나는 이제 좀 더 지혜로워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신랑이 이해가 잘 안됐는데, 이제는 신랑이 어떤 사람인지를 인정하고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까지도 다정한 남편에 대한 로망이 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신랑에게 다정한 말투를 기대하고, 그 기대를 져버릴 때 화가 나고 속상했다. 신랑이 나에 대해 기대를 한 것처럼, 나 또한 신랑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로 바라보기보다 서로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건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지지고 볶는 6년 동안 우리는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3라운드는 조금 다르게 싸워봐야겠다. 나는 신랑을 너무 몰랐다. 아니 보고 싶은 대로 봤다. 현실을 직시(이제서야?)하고 그에 맞게 변해야겠다.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평화롭게 살 수 있는데, 나도 참 머리 굴리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우리 올해는 그만 싸우고 서로 이해를 합시다. 일단 나부터!


올해도 싸우겠지만 우리, 화해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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