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나무 Jan 31. 2021

관광지에 산다는 것

나는 강릉에 산다. 서울에서 15년을 살다가 강릉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넘었다. 고향이 강릉이긴 하지만 커서는 강릉에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여행으로 강릉을 올 때와 막상 강릉에 와서 살아본 느낌은 다르다. 관광지다보니 생활물가가 비싼 편이었고,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았다. 내 또래 사람들도 직장에 다니기도 하지만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명 관광지(안목해변이나 경포해변 등)는 사람이 적은 평일에 주로 가지만, 이제는 거의 가지 않는다. 유명한 곳 외에도 강릉엔 좋은 곳이 더 많기 때문이다.(안목해변에 가면 할리스커피가 바다 전망이 가장 좋다. 270도로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다. 단 커피 맛은.... 임대료가 비싸니 이해해야 한다)


이탈리아에 갔을 때 여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남부투어를 하기 위해 탄 버스에서 가이드는 이탈리아의 경기가 좋지 않고 실업률이 높다고 나이가 지긋이 들어서도 일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우리를 소렌토로 데려다주기 위해 절벽을 깎아 만든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는 버스기사는 80대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수중에 유로가 없어서 팁을 못 드리고 내린 게 마음에 걸렸다. 피렌체에서 묵은 숙소는 온 가족이 같이 숙박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관광지에 산다는 것



관광지에 산다는 건 관광업 외에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관련 경력이 있으면 어디든 이력서를 넣어볼 수 있지만, 강릉에서는 출판, 에디터 경력으로 원서 넣을 곳이 바늘 구멍 찾기다. 어떤 직종이든 월급이 200만 원이면 지원자 수가 폭증한다. 이 정도를 주는 곳이 많지 않다는 거다. 경력이 있어도 월급이 200만 원을 한참 밑돈다. 강릉은 영동권에서도 임금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5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은 연차 휴가도 없다. 여름 휴가 3박 4일이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들이 도시를 많이 떠나는데, 지역에서는 청년들을 붙잡거나 유입을 시도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지원한다. 39세 미만 청년을 고용하는 회사에 임금을 90% 지원해주는 제도도 있고, 창업 프로그램도 찾아보면 꽤 많다. 물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 부부는 강릉으로 이주할 때 한국관광공사에서 주최하는 관광 공모전에 선정이 됐는데, 후에 듣기로 이 사업을 위해 강릉으로 이주하겠다는 실행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들었다.



여행지가 거주지가 되다



여행지에서 마음에 든 곳을 거주지로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내 주위에는 강릉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 살기로 마음먹고 강릉에 살고 있는 부부가 있다. 남편이 강릉을 가자고 했을 때 많이 망설였는데, 먼저 이주한 지인의 이야기가 도움이 많이 됐다. 그때 지인이 한 말 중에 이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서울에 살면서 주말에 야외 한번 나가기가 쉽지 않았는데, 강릉에 사니 주말마다 강원도 근교로 여행 다니니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집돌이인 남편은 주말에 외출하는 것보다 집에서 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주말이면 혼자 동네 산책을 가거나 서점 탐방을 하곤 했다. 혹시 환경이 바뀌면 달라질까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쨌든 남편의 고집을 꺾기 쉽지 않았기에 우리는 강릉에 왔다.(막상 이주 후 내가 더 좋아한 건 안 비밀)


실제 강릉으로 이사온 후 주로 주말에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 근교로 자주 놀러 다녔다. 속초는 열 번 정도 다녀온 것 같고 동해, 삼척, 울진 등 마음 먹으면 당일치기 또는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울릉도도 다녀왔는데 너무 멋진 곳이었다. 제주도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그래서인지 훨씬 사람 발길이 덜 닿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다. 아이들이 크면 꼭 다 같이 한번 더 울릉도 여행을 가보고 싶다.



욜로는 아니지만



강릉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강원도로 이주한 사람들의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고 방송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주로 다큐프로그램이었는데 우리의 일상을 카메라로 찍는 게 부담스러워서 모두 거절했다. 딱 한번 지역 방송 다큐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우선 15분짜리라 부담이 덜했고, 풍경과 일상을 함께 찍는다고 해서 수락했다. 경험이 많은 PD님은 촬영하는 내내 우리를 너무 편하게 해주셨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인터뷰를 이끌어줬다. 미리 인터뷰지를 보내줘서 답변을 달달 외웠는데, 막상 카메라가 돌아가니 얼마나 긴장되고 떨리는지. 무슨 말인지 모르게 횡설수설했다. 다행히 몇 차례 반복하니 긴장이 풀려서 조금 더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나중에 방송도 너무 잘 담아주셔서 고마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연락이 왔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라이프를 즐기는 일반인의 집에서 연예인이 투숙하면서 함께 인생을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욜로는 분명 좋은 의미지만, 우리가 한가롭게 즐기면서 사는 것만은 아니었기에 거절했다. 근처에 바다가 있고 좋은 자연환경이 있지만, 이곳은 우리의 일터이자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바다가 근처에 있지만 그렇다고 매일 바다에 가진 않는다. 이곳에서 먹고 살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희소할 때 빛을 발하는 것처럼, 바다도 자주 보니 감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는 일상에 지쳐 바다를 보면 그렇게 마음이 위안되고 힐링이 됐는데 지금은 '오늘 바다색은 좀 더 푸르네, 사람 많다' 이런 정도? 그래도 언제든 볼 수 있는 바다 가까이에 사는 건 좋다.






꼭 강릉에 와서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강릉에 와서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그동안 못해본 새로운 것도 도전해본 건 사실이다.

지방에 살려면 일단 욕심을 비워야 한다. 대도시가 훨씬 기회가 많고 일을 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소도시에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기회들이 있다. 요즘 강릉에 한 달 기를 하는 사람이 늘었다. 소도시에 산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인구의 높은 비율이 대도시에 사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눈을 돌려 소도시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떨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