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결혼 전에는 '나'로 가득 차 있던 인생이, 결혼 후에는 '우리'로,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아이'로 주어가 바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 예를 들어 여행을 가는 것, 집에 필요한 걸 사는 것, 저녁 약속을 잡는 것도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정도 아이들 위주로 짜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에 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찾고. 모든 걸 아이 위주로 짜다 보니 그 속에 나는 점점 희미해진다. 물론 이건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남편은 이런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뾰족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휴식에 대해서는 남편도 간절할 것 같긴 하다.
일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앉아서 쉴 틈이 없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고. 나도 체력이 점점 바닥이 난다. 아이들 tv를 틀어주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아이가 와서 묻는다. "엄마 피곤해? 엄마는 왜 맨날 피곤해?" ('너도 나이 들어 봐라. 안 피곤하나....')
내 취미는 뭐였지, 나는 뭘 좋아하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분명 내 삶인데,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남편과도 주로 하는 얘기들은 일 얘기, 아이 양육에 대한 이야기.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할지에 대한 의견도 달라서, 남편은 아이들에게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고 싶어하고, 나는 좀 자유롭게 키우고 싶은데 아이들은 또 말을 잘 듣지 않으니 그것 때문에 늘 부딪힌다. 뭐든 중간이 잘 안 된다. 사업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풀리지 않고, 쉽지 않다 보니 그것 때문에 또 예민해지고, 부딪히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사실 좀 지친다.
아이들을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내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로 일하는 데 시간을 쓰다 보니 내 시간에 대한 욕구가 간절해진다. 어디 하루 마음 편히 혼자서 쉬다 오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뭐 떠나려면 떠날 수야 있겠지만,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고, 그럼 남편이 아이 둘을 혼자 봐야 하니 걱정이 앞선다. 왜 이렇게 뭐든 쉽지 않은지.
젊은 날의 나도 고민이 많았다. 결혼, 미래에 대한 고민, 관계에 관한 고민 등등. 그런데 내게 산처럼 느껴진 울타리를 넘고 나면 또 다른 문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을 하면 장밋빛 미래가 있는 줄 알았는데, 또 가시밭길 투성이다. 문제가 없는 삶을 기다리기보단, 그 문제를 당당히 헤쳐나갈 수 있는 담력과 지혜가 나에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나는 좀 더 단단해졌을까.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한없이 찌그러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한참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런 내 모습을 내가 좀 보듬어주고, 칭찬해주고, 쓰다듬어주고 싶은 요즘이다. 세상도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데, 나까지 나에게 친절하지 않으면 사실 쉴 곳이 없을 것 같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