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대기실. 제법 어른스럽게 주의를 주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앙칼지다. 이날을 위해 준비한 세월이 어언 두 달, 그리고 이제는 우리 반의 차례다. 미처 다 고르지 못한 숨을 내쉬며 우닥닥 무대로 뛰쳐 올라간다. 이전 무대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후덥지근한 공기 때문에 땀이 비질비질 흐른다. 이윽고 눈이 멀듯한 섬광이 번쩍-. 웃어 웃어, 하는 지휘자 선생님의 입모양을 보며 굳은 입꼬리를 당겨본다. 그 사이 시작된 반주는 이미 전주를 지나고 있고 코끝에 공연장의 먼지 냄새만 아찔하다. 재채기가 나올까 말까…
이것은 군산회관이 간직한 어느 어린 날의 이야기. 또 군산 시민 모두가 공유하는 아스라한 추억.
군산시민문화회관(이하 회관)은 1989년 개관해 군산 시민들의 문화생활과 여가를 책임져 왔다. 군산에서 크고 작은 공연이 열릴 때면 그 무대를 내주는 것이 온통 회관의 몫이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객석은 늘 붐볐고 무대는 활기를 띠었다.
짧은 전성기를 누린 회관이 문을 닫은 것은 2013년의 일이다. 불과 2km 남짓 떨어진 곳에 ‘군산 예술의 전당’ 건설 계획이 세워진 탓이다. 회관은 시민문화의 거점 역할을 넘겨줘야 했다.
그리하여 회관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가끔 찾아오는 이들이 있기는 했다. 마당에 주차를 하고는 급히 떠났지만 말이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십여 년. 회관이 도시재생 인정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며 시민들을 다시 만날 준비를 한다. 소통협력센터 군산(이하 센터)이 회관에 터를 잡은 것이다. 센터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유휴공간이나 쓰임새가 애매한 공간들을 리모델링해서 시민들에게 새로운 공간으로 돌려주는 사업을 진행한다. 센터의 거점 공간인 군산시민문화회관은 ‘군산회관’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며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센터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성령 씨는 군산회관이 단순한 건축물은 아니라 말한다.
“군산회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 고 김중업의 유작이거든요. 완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뜻이죠.”
“군산 시민들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공간이에요. 군산회관이 위치해 있는 나운동이 군산의 중심지였거든요. 학예회, 졸업식을 한다거나 공연을 보려면 회관에 와야 했어요. 어른이든 아이든, 거의 모든 군산 시민이 회관에 방문했던 셈이죠. 가족 앨범을 펼쳐보면, 꽃다발을 든 채 회관 원형 계단에서 찍은 사진이 꼭 한 장 쯤은 있을 거예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오래된 극장을 배경으로 펼쳐졌을는지. 기꺼이 그 흔적을 훑어가 보기로 했다.
군산회관의 주무대라 할 수 있는 너른홀의 문을 밀고 들어서자, 낡은 공간이 전하는 묘한 정적이 나를 감쌌다. 함께 들어선 김성령 씨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은 원래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어 있는, 흔한 공연장이었어요. 객석은 약 960석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는데, 빨간 의자가 객석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어요.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죠. 리모델링을 하면서 객석을 모두 없앴거든요. 2층 객석도 시야각 문제로 아예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했습니다. 지금은 훨씬 더 개방적인 공간이 됐어요.”
그의 설명 속에서 오래된 극장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 무대가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에요. 새로 개관하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따로 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떤 날에는 바로 이곳이 무대가 되고, 어떤 날에는 객석이 될 수도 있죠. 공연뿐 아니라 북 페어나 전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장이 될 겁니다.”
그의 말은 낡고 고요한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한때 무대와 객석으로 나눠져 있던 공간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 자료 영상을 보니 저 난간 위로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올라가기도 하던데요.
“회관이 80년대 후반에 지어진 건물이라 무대도 자동화가 전혀 안 돼 있었어요. 무대 설비를 바로 옆에서 수동으로 조작하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지금도 저 난간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그래도 난간이 낮아 조금 위험하니 꼭 헬멧을 쓰고 올라가도록 해요.”
- 저기 하얀 물체는 뭔가요?
“아, 아마 음향 반사판일 거예요. 원래 철거하려고 했는데, 오래된 느낌이 귀해서 그냥 두기로 했어요. 언젠가는 다른 용도로 쓰일지도 모르죠. 전시 기물이 된다거나요.”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회관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을지 상상하는 것이 충분히 즐거운 일이었다.
김성령 씨의 설명이 끝난 후, 다시 한 번 군산회관을 둘러보았다.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마쳐 태동의 설렘으로 충만한 곳이 아닌가. 이곳에서 새로 태어날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저는 새것보다는 옛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군산시민문화회관의 재탄생 소식을 듣고, 이 공간에서 활동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군산으로 왔어요.”
김성령 씨는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로컬 브랜딩과 지역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주도하며 지역사회에 변화를 이끌고 있다. 군산회관 운영이 센터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이러한 센터의 노력 속에서, 군산회관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지역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으려 한다.
지난 6월부터 열린 다양한 행사가 그 시작을 알렸다. 센터는 군산회관이 그저 수도권 프로그램을 이식하는 공간이 아닌, 군산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장으로 만들고자 한다. ‘군산 북페어’가 그랬다. 군산의 독립 서점들과 협업해 열린 북페어는 단순한 책 축제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녹여낸 특별한 행사였다.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군산이라는 도시의 고유함을 알리는 기회였다.
“군산의 자원과 매력을 발견하고, 이를 프로그램에 녹여내는 데 많은 고민을 합니다. 군산회관은 단순한 문화 공간을 넘어 사람들의 성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교육 플랫폼이 되길 바랍니다.”
군산회관은 더 이상 특정 공연이나 행사에만 개방되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군산회관의 무대는 객석이 허물어져 유연한 공간으로 탈바꿈해있었다.
일상의 연장선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고있다. 앞으로 카페와 공유 오피스 등의 시설도 마련될 예정이다. 누구든 원하는대로 공부하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군산회관은, 시민들이 산책하듯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수준 높은 프로그램도 제공해, 군산에서도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센터가 기획하고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과 협력 속에서 탄생했다.
"한 분과의 연결을 통해 또 다른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점과도 연결이 되어 북페어까지 진행하게 된 것이죠."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고 있냐는 물음에, 김성령 씨는 별다른 전략은 없다 말한다.
“발로 뛰며 현장을 다니고, 지역의 자원들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전부인 것 같아요. 그렇게 프로그램을 만들어갔던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구불구불 LNT(Leave No Trace) 하이킹'도 마찬가지였어요. 군산의 자연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지역 특성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구불길이라는 군산의 로컬 자원을 직접 걸어보고, 현지의 매력을 알리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기획했던 프로그램이었어요."
센터는 앞으로도 지역과 상생하며,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더할 계획이다. 군산의 고유함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지역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가기를.
군산회관, 그곳은 군산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장소이며, 이 도시의 진정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