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둘러 안아 눈과 비바람을 막아주는 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마을은 춘향이가 살던 동네이자, 몇 대에 걸친 대서사시 『혼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지리산을 보거나 남원의 문학적 정취를 누리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이는 많다. 그런 관광객들이 걸어서는 모두 못 볼 남원의 곳곳을 누빌 수 있도록 하는 건 택시 기사의 임무다. 그중에서도 남원에서 70년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을 위해 일하고, 남원으로 오는 이를 안내하는 사람. 그는 관광택시 기사 안택엽이다.
#남원 토박이가 느끼는 남원
남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 기사로만 일한 게 10년이고, 그전에는 36년을 남원 시청에서 공직에 몸을 담았다. 남원 관광택시는 남원시청에서 운영하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50년 가까이 남원시에서 일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전주에서 잠깐 일했던 것을 제외하고 그는 모든 생활을 남원에서 해왔다. 남원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키웠다. 기사 일은 적성에 잘 맞느냐는 질문에 그는 “남원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남원에서 일해왔으니 이제 손님이 어디로 가자 하면 눈감고도 가는 수준이죠.”라고 답했다. 남원은 기사님이 평생을 걸어온 일터이자, 삶의 공간인 셈이다.
가장 깊이 남은 기억이 뭐냐는 질문에 기사님은 자식들이 어릴 때 지리산 천왕봉에 간 것을 꼽았다. 남원에 살면서 지리산 한 번은 가야 할 것 아니냐, 하며 힘들다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른 지리산. 투덜대던 그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이제는 본인들의 자녀가 자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손을 잡고 지리산에 오르는 날을 말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냐는 질문에 그는 “어딜 가든 다 편안하죠. 여기가 내 집이니까.”라고 답했다. 그에게 남원 곳곳은 일터이자, 가족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소박하고 살기 좋은 곳이야.” 남원이 어떤 도시냐는 물음에 기사님은 이렇게 답했다. 외부인도 따뜻하게 맞이하고 서로 도우면서 사는 동네. 북적이지는 않아도 소박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덧붙이셨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고, 남이 잘되면 기뻐하는 마음을 갖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하셨다. 기사님은 소박하다고 표현하셨지만, 그 말에는 따뜻하고 정이 많은 도시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관광택시 예약을 위해 확인했던 시청 게시판에 유독 '칭찬합니다'라는 감사의 글이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덧붙여 기사님은 때로는 직접 시에 개선 사항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덧붙이셨다. 남원에 대한 애정이 승객을 향한 정성으로, 나아가 더 나은 남원을 만드는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따뜻한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것 외에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묻자, 기사님은 주저 없이 ‘자연’을 꼽았다. 그는 지리산 덕택에 70년을 살아온 것이라고 회상했다. “비바람이 많이 불고 폭설이 쏟아져 내려도 묵묵히 남원을 에워싸서 막아주죠, 지리산이.” 강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고 남원 시민들의 삶을 유지해 준다. 가을에는 알록달록이 물들어 70년을 살아온 기사님의 눈길까지 앗아간다. 지리산을 찾는 발길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이어진다. 풍수지리적으로, 시각적으로, 나아가 남원 시민들의 생활면에서도 지리산은 남원의 중심이자, 감사한 존재이다.
#관광택시 기사로서의 삶
남원 관광택시 제도는 교통이 불편한 남원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생긴 제도다. 관광택시가 남원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기사님은 남원이 관광택시를 가장 잘 운영하는 지자체라고 말한다. 평창, 전주, 곡성 등 다양한 지자체 공무원들이 남원으로 와서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 배워간다고 하기도 하였다. 남원의 관광택시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먼저 4시간, 6시간, 8시간 코스 중 원하는 코스를 선택한다. 그 후 남원역에서 출발해 정해진 코스를 돌며 기사님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주요 관광지 간 거리가 꽤 되는 남원이기에 특히 도보로 이동하는 방문객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관광택시는 ‘해설’을 해준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사님은 혼불문학관과 서도역을 지나면서 그 역사에 대한 해설을 해주셨다. 주요 관광지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있는 다양한 공간에 대한 해설 역시 들어볼 수 있었다. 버선을 닮아 이름이 붙은 버선방, 춘향이와 몽룡이가 이별한 오리정, 그로 인해 흘린 눈물이 고여 만들어진 눈물방죽, 노적봉과 그 옆에 있는 노봉마을, 그곳에서 탄생한 혼불문학관에 대한 설명까지. 남원의 살아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디테일한 해설을 하기 위해선 정기적인 교육이 진행된다고 한다. 모든 관광택시 소속 기사들은 시청으로 모여 교육을 들어야 한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에다가 교육까지 정기적으로 들으니 남원은 그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해진 코스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는 것 이외에, 손님에게 맛집이나 숨겨진 명소를 추천하는 것 역시 자연스레 기사님의 몫이 된다. 간혹 넉살 좋은 손님은 같이 식사를 하자고 권하기도 한다. 다시 남원을 찾아 기사님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손님들의 얘기를 듣기도 하고, 기사님의 이야기도 하다 보면 코스가 끝이 난다. “손님들한테 맛집 추천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사는 얘기를 해요, 그럼 하루가 금방 끝이 나지.” 그만큼 기 사님의 관광택시는 단순히 운전을 넘어 사람과 사람 간 정을 나누는 여행이다.
#앞으로의 남원
기사님은 남원에서 평생을 살아오셨지만, 자식들은 모두 새 가정을 꾸려 남원을 떠났다. 종종 찾아오기는 하지만 남원에서 살지는 않는다. 이제 아내와 둘이 남아 남원에서 살아가는 그는 젊은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 농촌에 가장 막둥이가 65살이야. 65살한테 막둥아~ 막둥아~ 한다니까.” 최근 20년간 남원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죄다 남원을 떠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도 아닌데 왜 그럴까.
그 이유가 뭐라 생각하시는지 여쭈었다. 기사님은 남원은 청년들에게 다양한 혜택으로 지원해 줌에도 불구하고 남원을 떠나는 이유는 ‘서울 중심주의’ 때문이라고 답했다. ”젊은이한테 돈을 줘봤자 뭐해. 다들 위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남원이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서울이 좋아서 위로 가는 것이었다.
남원의 관공서에서 일한 적이 있기에 남원의 미래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남원이 언젠가 사라질까 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살기 좋고 소박한 곳인데, 뭐 젊은이들한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닌가 보지.” 씁쓸한 말을 덧붙이신 기사님은 남원을 눈에 오래도록 담으셨다.
#다시 바라본 남원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돌아본 남원은 ‘보기 좋은’ 장소를 넘어,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장소로 다가왔다. 택시에 가만히 앉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지리산의 모습을 바라봤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들려오는 기사님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푸르게만 느껴지던 지리산이 만남과 이별, 웃음과 눈물을 모두 품은 공간으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사님의 해설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 남원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외지인의 마음으로
sk 자식과 함께 손을 잡고 천왕봉에 올랐다던가, 그 자식의 자식들이 등산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기다린다거나 하는 것들. 특히 기사님은 남원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남원 시민을 응대했던 그 마음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한 번 찾았던 관광객은 받은 명함을 고이 간직해두었다가 다음에 남원을 찾으면서 기사님을 찾기도 한다. 그때 너무 좋아서 다시 왔어요, 라며. 소박한 마을, 소박한 마음이 숨 쉬는 남원은 기사님에게는 단순한 고향이 아니다. 그가 나고 자란 공간이며, 사랑을 만나고 사랑을 배운 공간이자, 나아가 그 소박함이 계속되길 기원하는 도시이다.
기사님께 받은 명함을 지갑 한 곳에 고이 간직해두었다. 소박한 마음의 도시 남원을 언젠가 다시 찾기 바라는 마음에서.
글: <local.kit> 에디터 윤지유
사진: <local.k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