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남원의 풍경을 빌려, 남원의 언어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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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빌린다는 뜻, 차경.


남원 혼불문학관의 전정희 해설사는 이곳을 설명하며 차경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해설사가 꺼낸 이 단어는 낯설었지만, 문학관 지붕 너머로 이어지는 능선과 아래에 자리한 오래된 마을을 바라본 순간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풍경을 붙잡아 두려 하지 않는다. 창 너머로 계절이 오고 가고, 나무가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색을 달리하는 동안 혼불문학관은 그저 자리에 앉아 그 움직임을 잠시 빌려 쓴다. 그 단순한 방식이 오히려 이곳 혼불문학관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불문학관을 오랫동안 지켜온 전정희 해설사는 1995년 결혼을 계기로 남원에 정착했다. 규모는 작지만 필요한 것들이 단단히 자리한 도시, 남원은 어느새 그의 삶의 무대이자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다. 이제 그는 그 삶의 자리에서, 혼불문학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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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혼불문학관과 해설사님은 어떤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나요?

저는 2002년부터 해설사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남원 혼불문학관을 맡게 된 것은 조금 특별한 이유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가을이었어요. 친정집 누마루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평범한 오후에 사과나무 쪽에서 불꽃 같은 붉은 빛이 갑자기 번지는 걸 봤어요. 순간 너무 놀라서 “저기 불 났다!” 하고 외쳤죠. 그러자 어머니께서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그 집에서 혼불이 나가. 연대장님 사모님 집에 불이 나간거야.” 하고 말씀하셨어요. 그 기억이 아직도 제 안에 아주 깊게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 2000년 무렵 『혼불』이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고, 열 권을 일주일 만에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어릴 적 장면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함께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인지 혼불문학관에 오면 제 기억 속 어머니가 말씀해주신 혼불과, 작가 최명희가 작품에 담아낸 혼불이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저에게는 유난히 유정한 장소죠. 그런 장소에서, 제가 사랑하는 작품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간에 잠시 쉰 시기를 제외하면 약 15년 동안 해설사 일을 해오고 있어요. 농담으로는 “해설사계의 시조새, 암모나이트”라고 할 만큼 오래 활동하고 있답니다.


Q. 『혼불』은 방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중에서 해설사님이 특히 애정을 가지고 소개하고 싶은 장면이나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혼불에는 정말 많은 장면과 이야기가 있지만, 저는 그중에서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인 ‘방패연’ 이야기를 가장 자주 소개합니다. 작가가 그 장면에서 자신의 작품관을 아주 자연스럽게 풀어내거든요. 방패연을 만들면 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이 나잖아요. 작가는 그 부분을 한 사람의 심장부가 도려진 것처럼 묘사합니다. 누군가의 상처일 수도 있고, 상심일 수도 있는 그 빈자리 말이에요. 그런데 연이 하늘로 올라가면 오히려 그 뚫린 곳으로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다시 동그랗게 오려 붙인 부분은 연에서 가장 강한 구조가 되어 더 멀리, 더 높게 활주하도록 도와줍니다.

작가는 이런 세시풍속의 장면을 통해 시종일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삶에는 아픔과 고통, 인고의 세월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더 단단하게, 더 높이 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이 된다는 거죠. 꽃길만 있는 인생은 없지만, 그 모든 고난과 과정은 지향해야 할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시간이라는 메시지예요. 저는 그 부분이 이 작품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 스며 있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삶의 태도가 아주 깊고 단단하게 독자에게 전달되는 장면이니까요. 그래서 이 ‘방패연’ 이야기는 해설할 때마다 저에게도 늘 울림을 줍니다.


Q. 혼불문학관에서 해설을 하시면서 특히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작품의 모든 서사 속에서 작가가 시종일관 말하는 것이 있어요.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 ”인고의 세월은 빛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저는 작품의 줄거리보다도 그 깊은 흐름, 인내와 희망의 메시지를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혼불문학상 수상작들을 보면 작품도, 이야기 방식도 다르지만 결국 그 맥이 흘러요. 어둠을 뚫고 나가는 힘, 눈물 속에서 피어나는 빛. 저는 그걸 사람들 마음에 가만히 건네고 싶어요. 여기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쉬어갈 수 있게, 조금이라도 따뜻해져서 돌아갈 수 있게. 그게 제가 가장 전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Q. 방금 말씀해주신 그 깊은 메시지가, 작가님만의 언어와 표현에서 특히 살아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설사님은 『혼불』의 언어에서 어떤 점에 주목하고 계신가요?

작가님은 『혼불』을 쓰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셨던 분이에요. 1만 2천 매에 달하는 원고를 쓰며 모든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보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비평가들이 “최명희 소설에는 리듬이 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읽어보면 운율이 있어요. 전라도 사투리 특유의 구성지고 토속적인 소리, 흥얼거리면 민요나 판소리로 이어지는 그 언어의 힘이 작품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점은 단어 하나를 위해 그렇게나 고심하셨다는 거예요. 저도 외국인 방문객을 포함해 다양한 분들을 만나며, 내 마음속 뉘앙스를 정확히 표현할 단어를 찾기 위해 책 한 권을 통째로 뒤져본 적이 많거든요. 작가님도 그랬던 거죠. 최명희 작가가 직접 만들어낸 표현도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혼불’이에요. 이 소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국어사전에 없던 단어였는데, 작품이 나온 뒤에 사전에 등재됐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를 가장 정확하게 담기 위해, 단어 하나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 마음과 진심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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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학관을 둘러보니 공간 자체가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구성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공간과 동선을 통해 방문객들이 남원의 혼불문학관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길 바라시나요?

여기는 단순히 건물 안에서 전시를 보는 공간이 아니라, 이 땅 전체가 하나의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풍수적으로도 뒤에 산이 있고 사람들이 머물며 살 수 있는 자리예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그것을 잘 활용해 온 곳이죠. 그래서 방문객들이 오시면 문학관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분지 형태의 경관과 사계절의 변화, 산천초목까지 함께 느끼셨으면 해요. 이곳에 실제로 살아온 남원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작품 속에 담겨 있거든요.

『혼불』의 문장은 박제된 활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남원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곳에서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요. 작가 최명희가 바라본 넓은 시선처럼, 이 공간과 이 마을 전체를 작품 속 한 페이지로 느끼며 걸어가셨으면 합니다.


Q. 다른 지역의 문학관과 비교했을 때, 남원 혼불문학관만의 자랑할 만한 특징은 무엇일까요?

혼불문학관은 자연 속에 스스로 놓이는 공간입니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더한 것이 아니라, 이 땅 남원의 풍경을 빌려 존재하고 있어요. 우리 전통 정원의 핵심인 ‘차경’이 그대로 실현된 장소죠. 좋은 경치 앞에 누마루 하나 놓고 앉아 바라보는 것, 바로 그 방식으로 문학관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이 주변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곳의 산과 들과 마을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어요.

작품 속에서도 나오잖아요. 좋은 정자에 걸맞은 이름이 붙으면 그 정자가 더욱 빛난다고요. 혼불문학관이 바로 이 노봉마을 위에 제대로 된 이름표를 달고 앉은 곳, 그런 의미를 가진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혼불문학관이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혼불문학관이 계속해서 ‘열린 공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혼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세상과 교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해요. 집에 금가락지가 있어도 꺼내서 빛을 보여줘야 의미가 있듯, 이 공간도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함께 향유되어야 합니다.

『혼불의 정신과 언어를 이어갈 책임은 지금 살아 있는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최명희 작가는 이미 작품 안에 모든 것을 담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독자가 그 빛을 꺼내어 환기시키고, 세상에 계속해서 전해가야 합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주면 좋겠어요. 사람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언어는 정신의 지문입니다. 작가가 남겨 둔 이 정신을 지켜가는 일,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해나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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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문학관을 나서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작가는 작품 속에 남원의 언어와 시간을 담아두었다. 이제 그것을 펼치고 이어가야 할 책임은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남아 있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혼불은 시대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치열한 기록이다. 전정희 해설사는 문학관을 찾는 사람들이 그 기록을 삶 속에서 다시 불씨처럼 살려내길 바란다 했다. 작품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 다음 문장을 쓰는 일은 지금 우리, 독자의 몫이다.


글: <local.kit> 에디터 문규현

사진: <local.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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