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바람 아래,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다
사계절이라는 말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진다.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어느새 여름과 겨울만 남은 듯하다. 전에는 벚꽃이 피던 봄, 매미 소리로 여름을 알던 시절이 있었고, 단풍이 들면 가을을 느끼고, 겨울에는 캐럴이 울려 퍼지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계절의 경계가 사라졌다. 그저 덥거나, 춥거나.
이렇게 빠르게 변한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무심코 버린 쓰레기, 편하게 쓴 일회용품, 과도한 소비들이 결국 지구의 시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모두가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재활용함 앞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우리의 모습 속에, 문제의 답이 이미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굿바이 스토어 (Good-Buy Store)
‘자연’이나 ‘친환경’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색은 초록색이다. 그 초록빛으로 꾸며진 가게의 외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작은 화분들과 초록색 간판, 의자, 글씨, 그리고 부드러운 빛이 스며든 유리창까지 - 가게 전체가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식물들이 놓여 있고,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채운다. 계산대 너머에서는 굿바이 스토어 대표가 밝게 인사를 건넸다. 자연스럽고 따뜻한 미소가, 이 공간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렸다.
#지역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을 위해
Q. 가게 이름을 보아하니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은데 가게 이름의 뜻과 함께 소개해 주세요.
많은 분이 ‘굿바이 스토어 (Good-Buy Store)’를 들으면 ‘bye’로만 생각하세요. 하지만 저희는 ‘buy’, 즉 ‘산다’의 의미도 함께 담았습니다. 지구에 도움이 되는 제품이나 덜 해로운 제품을 ‘사자’는 뜻이에요. 동시에, 플라스틱처럼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의미에서 ‘bye’의 뜻도 가지고 있고, 친환경 소비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하자”는 폭넓은 의미에서 굿바이 스토어라고 지었습니다.
Q. 왜 하필 남원에서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는지, 또 남원이라는 지역에서 이런 가게가 가지는 특별한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고향이 광주인데, 아버지께서 남원에서 공장을 운영하셔서 어릴 때부터 자주 오곤 했어요. 그래서 남원이 저에게는 익숙하고, 지리산과 섬진강 덕분에 자연 친화적인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또 남원은 지역 공동체가 끈끈하고 서로 돕는 문화가 있어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시보다 개인주의가 덜하고, 지역 상인들끼리 서로의 물건을 구매해 주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청년 인구도 적어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이 많겠다고 생각했고, 특히 환경 교육과 관련하여 활동할 기회가 많을 것 같아 남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보호 행동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사람들은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근데 실천이 어려운 거예요. 실천하려면 우선 직접 써보고 “이거 괜찮네”라고 느끼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점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텀블러는 얼음을 오래 유지해 주고, 스테인리스 빨대는 음료를 더시원하게 마실 수 있게 해 주죠. 또 제가 교육 현장에서 자주 하는 말은 “쓰레기라도 제대로 버리자”입니다. 버려진 쓰레기가 비나 바람에 흘러가 바다와 동물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집에 가서 버리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자는 뜻입니다.
#버려진 것의 두 번째 삶
Q.‘토마토 씨앗 연필’처럼 재미있고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는데, 이러한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이며,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토마토 씨앗 연필이란 연필을 다 사용하고 토마토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몽당연필*
제가 예전에 국립어린이박물관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어린이 박물관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어린이 박물관을 꼭 들르는 편이에요. 어린이 박물관은 성인 전시와 달리 직접 체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전시가 많아서 아이디어를 얻기에 좋아요. 이런 전시를 보면서 ‘환경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환경 교육 교재를 만들 때도 참고하고, 가게 봉투를 고양이 손잡이 모양으로 만든 것도 이 아이디어에서 나온 거예요. 실내장식 역시 박물관에서 일할 때처럼 메인 색상과 주제를 정하고 시작해서 훨씬 수월하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꿈꾸며
Q. 공간을 대여하는 곳 (예약 후 소모임, 워크숍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또 어떤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나요?
교육은 보통 제가 직접 기관에 가서 진행하지만, 인원이 적을 때는 매장 공간을 빌려서 수업해요. 환경 교육 주제는 다양하지만 저는 주로 기후변화, 탄소 중립, 친환경 소비를 중심으로 가르칩니다. 기관에서 원하면 고체 치약 만들기 같은 간단한 체험 활동도 함께 진행해요. 대상은 학생들이 가장 많고, 복지센터 요청이 있을 때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도 수업합니다. 교육이 끝난 뒤에는 “친환경 쇼핑해 보기” 같은 과제를 내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줘서 매장과 연결된 프로그램으로 이어가요. 또 환경교육사가 되는 법이나 지원 사업 참여 방법 등 진로와 관련된 내용도 함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Q. 카페 운영 시에도 비건 음료를 판매한다 들었는데 가게 운영 철학이나 친환경적인 방향성과 어떤 점에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나요?
원래는 카페를 운영했는데, 출강이 많아 손님을 혼자 맡기기 어려워서 1년 정도만 하고 그만두었어요. 지금은 공간을 대여하는 형태로 바꿔서 시민이 모임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쓰고 있습니다. 또 지원 사업을 통해 비건 교육 프로그램도 무료로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비건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비건을 너무 극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쉽다고 느꼈어요. “비건이라서 예민하다”라거나 “남에게 식습관을 강요할 것 같다”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건 카페를 운영했고, 지금도 교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완전한 비건은 아니지만, 고기를 줄이거나 하루 한 끼 정도는 채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비니루 없는 점빵
비니루 없는 점빵.’ 이름이 조금 낯설었지만, 그만큼 눈길이 갔다. 가게 앞에 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다듬지 않은 간판이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느낌이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곳의 대표와 마주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가게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보았다.
#작은 마을의 큰 질문
Q. 방언이 낯선 분들에게는 “비니루”와 “점빵”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게 이름의 뜻과 함께 소개해 주세요!
‘비니루’는 ‘비닐’의 경상도 사투리예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많이 쓰는 단어라 선택했고, ‘점빵’은 ‘작은 가게’의 옛말입니다. 아직도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은 ‘점빵’이라는 단어를 쓰세요. “점빵에 가면 뭐가 있다”라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근데 저도 ‘비니루 없는 점빵’ 2기로 들어간 거라 제가 지은 건 아니고 비니루 없는 점빵 1기 회원분들께서 지어놓으신 거죠.
# 작은 행동이 바꾸는 마을의 풍경
Q. 환경 보호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요즘, 어떤 계기로 이 가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또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처음 갖게 된 시점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귀촌한 지 7년 정도 됐어요. 서울에서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일회용품을 줄이면서 나름 환경을 잘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시골에 와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어요. 쓰레기를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도 몰랐고, 마을마다 버리는 장소나 방식이 다 달라서 혼란스러웠어요. 논밭 근처에 쓰레기가 버려진 걸 자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고, “이 쓰레기들은 결국 어디로 갈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쓰레기 수거 차를 따라가 봤어요. 끝까지 차를 쫓아가며 확인해 보니 남원시의 매립장과 재활용 선별장으로 가더라고요. 그 경험을 마을 신문에 기사로 쓰기도 했고, 이 이야기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생기면서 환경 강의도 열게 됐어요. 그렇게 활동이 이어지면서 지금의 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Q. 주민과 함께 직접 배출장 현황을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혼자서 활동한 것 외에도 동네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슷한 일을 했어요. 이후에는 남원시의 각 읍면이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공모 사업을 통해 조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관찰 요원들을 모집해 현장을 살펴봤는데, 덕분에 좋은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어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예전에 수거 시스템을 실험해 보고 싶었던 마을에 찾아가 시범 운영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주민이 실제로 이용하면서 어떤 불편함을 느꼈는지, 또 이장님이 관리하면서 겪은 어려움 같은 부분은 직접 듣지 못했거든요. 관찰 요원들이 기록한 건 배출장의 상태나 현장 모습뿐이라, 평소에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어요.
Q. SNS를 보니 가게에서는 교육 프로그램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과 행사, 그리고 여러 활동도 진행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저희 워크숍은 “제로웨이스트는 일상이다”라는 주제로,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활동을 배우는 프로그램이에요. 입지 않는 옷의 실을 풀어서 카네이션이나 목도리, 모자를 뜨거나, 구멍 난 옷을 바느질로 예쁘게 고쳐 쓰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물건의 수명을 늘리고, 자연스럽게 환경 이야기도 나누어요. 뉴스로만 듣던 환경 문제를 직접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또 가루 치약이나 샴푸를 만들어보는 체험도 하는데, 이런 제품은 물이 적게 들어가서 화학 성분이 덜 들어갑니다. 환경에도 좋고, 사람에게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전에는 어르신들이 모은 농촌 쓰레기를 가져오면 무게를 재서 생활용품으로 바꿔주는 활동도 했고, 텀블러를 입장권으로 사용하는 환경 영화제도 열었어요. 올해는 이름을 바꿔 ‘기후정의 영화제’로 진행하면서 9월 한 달 동안 네 편의 영화를 상영할 예정입니다.
#푸르메가 전하는 생태의 언어
Q. 가게가 광한루 근처에 있어 관광객도 많이 올 것 같은데 손님들은 주로 어떤 제품을 구매하나요? 또 가치 소비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특히 젊은 분들은 이미 가게를 알고 일부러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세미가 가장 인기 있고, 고체 샴푸도 많이 찾으세요. 수세미는 텀블러를 닦기 좋고 오래 쓸 수 있어서 저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목표는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조합원들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에요. 또 그 조합원 중에서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고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이죠. 현재는 제가 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런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시간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Q. 사람들이 남원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했으면 하는 모습이나 단어가 있다면, 그리고 함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많은 분이 ‘남원’ 하면 ‘춘향전’을 먼저 떠올리세요. 최근에 춘향제도 다양하게 열리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남원은 지리산을 품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지리산 근처에 사는 사람도 많고, 생태적인 가치가 큰 지역이에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남원을 떠올릴 때 ‘생태 도시’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리산이라는 큰 자산이 있음에도, 아직 생태나 환경의 이미지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쉬워요. 환경 관련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앞으로는 이 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환경 중심의 정책과 활동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원에서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운영하는 두 사장의 이야기는, 일상의 작은 선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지속 가능한 도시 남원’을 만들겠다는 소박한 의지로 시작된 이들의 실천은 이제 지역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더 큰 지역으로, 그리고 더 먼 미래로 지속 가능한 삶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 - 그것이 결국 이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 <local.kit> 에디터 강지인
사진: <local.k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