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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모임 로칸디나 Dec 25. 2018

로디즈가 만난 영화 <인 디 아일>

반복되는 것과 모든 닮아있는 것들을 위하여 <인 디 아일>, 표국청

인 디 아일, 2018, 토머스 스터버     


   크리스마스 당일, 홀로 카페에 앉아 글을 쓰다가 극장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극장을 가기 위해서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해야만 했고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딱 두 가지,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이내의 극장에서 상영하는 작품, 이번 주 주말 가족들과 영화를 봐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함께 보자고 했다가 뭇매를 맞을 수 있는 작품. 오늘의 영화 선택 기준은 이 두 가지였다.     


   그렇게 만나게 된 영화가 <인 디 아일>이었다. 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이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오늘 낮 2시 30분이었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지 시놉시스에 끌려 극장으로 향하게 만든 영화 <인 디 아일>.     


   극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얻은 영화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잔잔한 영화라는 것, 대형 마트(이하 창고형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 전부였다. 5시 30분 영화를 다 보고 나와 극장 근처 카페에 자리 잡은 8시의 필자는 이 영화를 만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연말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하자면 <인 디 아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또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영화 속의 서사를 중점으로 다루기보다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주제와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영상적 노력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본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주관적 생각을 바탕으로 한 감상임을 밝힙니다.)   

영화를 구성하는 공간의 특성, 사각형의 공간들.

   반복되는 것과 모든 닮아있는 것들을 위하여 <인 디 아일>


   영화의 배경은 독일의 창고형 매장이다. 코스트코나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을 떠올리면 연상하기 쉬울 것이다. 이 창고형 매장에 입사한 신참 크리스티안과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영화의 첫 샷, 타이틀이 나오기 전까지의 짧은 시퀀스가 인상적이다. 정적인 공간들이 제시된다. 독일이라는 국가의 공간들, 그리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와 창고형 매장의 공간들. 시작부터 영화는 공간이 지니고 있는 분위기와 정서가 관객에게 스며들게 만든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필자가 가장 다루고 싶은 것 또한 이런 공간의 정서이다. 나아가 그 정서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방식, 정서를 포괄하고 있는 이미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진 것들을 나열하는 이미지에 대하여.

     

   ‘각지다’라는 언어를 접할 때 주로 날카롭거나 뾰족하다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각진 물건들은 사실 투박하다. 각지기 때문에 딱 들어맞기도 하고 각지기 때문에 운반을 하는데 용이하다.     


   <인 디 아일>의 공간은 창고형 매장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효율성과 편의성을 가진 움직임들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대표적인 이미지들이 지게차와 그 지게차로 운반하는 화물들의 이미지다. 화물들은 사각형 틀 안에 들어 있고 그 사각형 틀의 집합을 운반하기 위한 밑바닥도 사각형이다. 지게차 역시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때문에 좁고 기다란 직사각형의 복도를 이동하기 편하다.     


   크리스티안이 매장에 처음 들어와 하는 일 역시 사각형의 상자들을 차곡차곡 쌓는 일이다. 이처럼 각진 것들은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사각형의 물건들은 모두 틀이라는 점이다.     

그 틀 안에는 물건이 담겨 있다. 하나의 틀 안에는 한 종류의 물건이 담겨 있지만 그 물건들은 각자가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영화의 중간 해산물을 판매하는 구역에서 크리스티안과 브루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크리스티안은 좁은 사각형 수조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마주한다. 모두 같은 종의 상품인 물고기들 중 한 마리가 수조가 답답하다는 듯 튀어 오른다. 하지만 이내 다시 사각형의 틀 안에 갇힌다.     


   <인 디 아일> 속 각진 이미지들의 나열은 갇혀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가장 편의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크리스티안은 매장에 출근했다가 일을 하고 퇴근하는 시간이 되어 매장을 나서면 밖은 밤이고 자신이 매장을 들어오는 시간과는 정 반대의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매장은 어쨌든 직원들을 한 군데에 묶어놓는 역할을 한다.     

매장에 묶여버린 나머지 사람들은 어서 매장에 가는 시간(출근)이 다가오길 바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매장이기에 매장 안의 사람들은 돈독해진다. 물론 브루노가 이야기하듯 그 창고형 매장이 트럭 운전 회사였을 때부터 함께 했던 동료들이기에 가지는 동료애도 있겠지만 창고형 매장에서 일하는 모두는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의 모든 것을 알고 서로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티안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잘못 때문에 더 이상 어울릴 친구가 없다. 브루노는 홀로 살면서 항상 아내와 함께 산다고 이야기하고 성 정체성을 숨기고 있는(필자의 주관적 생각이다.) 인물이다. 마리온(크리스티안이 사랑에 빠지는)은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이 외의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한데 묶는, 직업과 일이라는 것으로 가두어두었지만 그 형태가 어찌 되었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순간 그 매장은 특별한 정서를 가지게 된다.     

단지 물건들이 각진 것뿐 아니라 영화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들이 매우 각지다.

반복되는 움직임에 대하여     


   영화에 있어서 인물의 감정을 움직여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는 동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크리스티안이 매장에 출근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 사건이고 또 하나는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브루노의 죽음이다.     

   영화는 이러한 큰 사건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건들을 통해 서사를 움직이지 않는다. 창고형 매장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것들을 크리스티안의 시야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반복성 안에 자그마한 일탈들로 사건들을 집어넣는다.     


   사실 반복이라는 것이 가지는 성질이 그렇지 않은가? 반복은 지루하기도 하고 안전하기도 하지만 그 반복이 있기에 아주 자그마한 사건들이 마음을 크게 동요시킨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움직임은 마치 동선이 짜여 있는 것처럼 일정하고 반복적이다. 크리스티안이 출근하여 의상을 갈아입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상이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반복적이지 못 한 사건과 그 사건에 의해 인물들이 가지게 되는 감정이 극대화된다. 크리스티안이 마리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사건이나 브루노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 속에서는 크리스티안의 반복성이 부재하지만 브루노의 죽음 이후 매장의 정직원이 된 크리스티안이 다시 반복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결국 반복되는 일상에서 특별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다시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성의 회복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그 반복성 안에 있음을 자각하게 하며 평범한 일상 속 우리 모두는 특별한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끝에서 마리온은 크리스티안에게 브루노가 가르쳐준, 매장에서 파도소리 듣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영화는 크리스티안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은 정말 파도소리였다. 왜 나는 이제껏 몰랐을까?”     


   결국 크리스티안은 매장에서 직원으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나갈 것이다. 마리온과의 연애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한 가지 어렴풋이 짐작 가능한 것은 크리스티안이 더 이상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몰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그 반복되는 일상이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감정이 특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 그것은 일상성, 반복성, 평범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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