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브랜딩'에 몰입하는가.

by 로셜리티 LOCIALITY

[자기다움_1기]

"예스터데이 코리아, 투데이 런던"



나는 학창시절 부모의 권유로 미술을 하기 시작했다.

내성적이고 공상이 많았던 나는 미술이란 것에서 참 많은 정서적 안정을 얻었다.

그 당시 입시미술은 그저 기술적으로 똑같이 잘 그린 사람을 순위매겨 뽑는 그것이

‘좋은 그림’의 기준이었지만, 그저 끄적거리는 노트옆 낙서한줄에도 내가 뭘 그리고 싶은지,

왜 이렇게 그리고 싶은지, 내 의도와 의미를 생각하길 반복하는 그것이 자아성찰의 힘을 기르게 해준

토대가 됬음을 느낀다.

남들은 다 평범하게 공부해서 이과문과의 삶을 사는데, 넌 왜 미대를 가지?

미대입시를 시키긴했으나 예체능 영역에 전혀 문외한인 부모님 두분의 솔직한 마음은 사실

순수미술 전공하면 그림팔아서 어떻게 먹고살겠냐하는 불안과

디자인 전공하면 잡지 편집이나 로고나 만들어서 먹고살겠냐하는 불안이었고

재수를 결심한 스무살의 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미술이란 것은 그렇게. 유독 내 삶의 의미, 사명, 존재이유를 어릴 때부터 의식시켰다.


결국은 군대를 전역한 20대 중반. 부모재력 덕에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좋은 명문미대를 입학하긴 했으나 이건 도피성 유학이었다. 26살에 다시 학사 1학년을 시작했다.

“아이엠어보이 유알어걸” 수준의 영어구사력으로 1학년을 다녔는데, 요즘말로 현타.

하루는 한국의 부모님께 전화걸려고 밖에 나와 런던의 유명 상징 중에 하나인

빨간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 담배한대 꼬나물고 전화를 걸었는데,

금방 밖에서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린다. 런던경찰이었다.

너 왜 안에서 담배피우고 있냐 담배꺼라. 정도의 귀여운 한국경찰의 계도는 꿈 깨시라.

경찰서에 끌려가 마약 몸수색을 당하고, 팔둑에 아토피 때문에 두드러기 난 자국은

너 이거 마약주사자국 아니나며 피검사를 당하는 와중에,

나는 ‘예스터데이 코리아, 투데이는 런던’을 수십번 외치다 하루가 지나서야 풀려났다.


도대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암쪼록 미술로 시작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성찰은

런던에 와서는 ‘또 다른 차원의’ 나는 누구인가의 의식을 강화시켰다.

한국인으로서의 나, 인종차별 당하는 나, 국제사회에서의 나.


이후로 나이 서른에야 학부졸업을 하고 귀국을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민가방 두 개와 C등급으로 겨우 통과시켜준 런던예술대 졸업장 한 장이 고작이었다. 5년간의 유학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거기에 아직 나다움은 없었다.




[자기다움_2기]

"시골마을 벽화작가"



이후로 나는 약 12년의 사회생활중 6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내가 최근 3년전 독립하여 전략컨설팅 법인을 설립하기 전까지 6곳을 거쳤으니,

거의 1년반마다 회사를 갈아치운 셈이다.

그때마다 나는 환경에 휘둘리고, 사람에 휘둘리길 반복했는데,

한편으론 내가 당최 뭘하고 싶은지 진짜 나를 찾고 싶다고 갈망하는 허기와 공허가 가득했다.

남들은 10년, 20년을 한 회사에 다닌다는데

이제고작 1년 한바퀴 돌아본 나는 이제 떠날 궁리를 하며 1여년 전 써놨던 온갖 미사여구가 붙여졌던

그러면서 이게 나의 진정성이라고 생각했던 자소서 파일을 열어 다시 편집해나가길 시작한다.


난 왜 자꾸 이들을 회피하려하는가

난 왜 유독 관계가 힘든가.

난 왜 미치도록 하고싶은게 없는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건 뭔가.


라며 나 스스로를 성찰하기 시작한 이러한 질문들은.

10대를 시작으로 30대 후반쯤 되어 법인을 시작하며 일단락 됐다가

이후로 현재 3년차 운영중인 법인의 여러 고초를 경험하며

이젠 그 다음 레벨의 ‘자기다워짐’이 ‘현재진행’중에 있다.


뒤늦은 나이 40초반에 공부바람이 들어 감사하게도 국제경제학 박사과정을 거치는 덕분에

나를 표현하는 또하나의 수식어가 생겼지만

나의 첫 사회생활 정체성의 시작은 ‘시골마을 벽화작가’다.

한국에 귀국해서는 꼴에 런던예술대 나왔다고 꼬부랑 혀 굴려가며 어깨 뽕이 하늘을 찔렀는데

실상은 5년동안 외국에서 놀다왔으니 피비린내나는 한국경쟁사회에서 어디 번듯한 대기업은 커녕

쬐끄만 에이전시 하나에라도 들어가기 힘든 현실이었다.

사람인을 몇 달을 뒤지고 지원하던 어느날,

“우리는 ‘커뮤니티아트’ 개념으로 지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집단”이라며

채용안내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야 워낙 이 영역의 전문가들과 정책이 활발해서 대수롭지 않지만

15년전 그때의 내게는 참 동기부여되는 매력적인 한 문장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계기로 그시절 회사 대표는 이후에 지역문화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덕분에 나는 서울촌놈이 칠곡으로, 제주로, 목포로, 통영으로 다니며 골목길 담벽에 벽화를 그려주고

마을마다 컨셉을 잡아 할매할배들 이야기 들어가며

‘집에서 안쓰는 물건 하나씩 가지고 나오시소. 그거 가지고 할매 집만의 이야기가 담긴 문패 만들어 드릴께’ 하니, 그것이 관광벽화마을길의 시초요,

‘할매 마을에서만 재밌게 하던 놀이나, 노래는 없는겨’ 물어보니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마을공동빨래터에서 하루좽일 자기 서방 욕하면서 부르던 노동요가 절로 나오니

이게 마을 스토리텔링 발굴의 시작이었다.

난 그렇게 칠곡의 29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만들기사업을 함께 했고

칠곡군은 훗날 이를 ‘30개의 다양한 삶이 살아숨시는 인문학마을, 칠곡’이라는

도시브랜딩으로 칠곡다움을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


난 그저 좋아서 돌아다니면서 벽에 낙서나 하고 다녔는데

이것이 결국 지역이미지를 체험하는 관광학

많이들 와서 먹고자고 돈을 쓰니 경제학

기업과 조직들이 어떻게하면 자기상품을 더 많이 팔지 고민하니 경영학으로 연결됨을 보고

오. 세상 돌아가는게 이런거구나 그제사 순진한 깨달음이 번뜩했다.

벽에 붓질이나 하며 창작의 세계에 심취해서 ‘이 그림이 이뻐? 저 그림이 이뻐?’만 생각해봤던

무지한 이 미술학도에겐 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을꼬.

그렇게 시골마을 벽화작가로서의 자기다움은 내 안에 한켠의 자기효능감을 깊이 안착시켜줬다.

그제서야 주변에서 사람들이 “런던예술대까지 나와서 한국에서 뭘하고 있는 친구인가. 너 무슨일 하니?”

하는 대답에 주절거림이 줄었다.


‘저는 시골 돌아댕기면서 벽화그려요’




[자기다움 3기]

"그래서 전략이 뭐냐고!"



내가 하고 다니던 벽화작업이 나중에보니 ‘도시재생’ 사업이라는 언어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림을 알게됬다. 또 다른말로는 ‘로컬브랜딩’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내가 아무리 잘 꾸며줘도 결국 본질은 그렇게 겉으로만 꾸민 하드웨어가 아닌,

휴먼웨어,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단다.

휴먼에어란 그 지역만의 ‘공동체 역량’을 말하고,

소프트웨어란 그 지역만의 특별한 ‘체험요소’를 말한다.

결국 니가 하는 그런 현장작업만으로는 1차원적이란 소리다.

막말로 그냥 환경‘미화’지 그게 무슨 ‘재생’이냔거지.


갑작스럽긴 하나 이쯤에서 내 출생의 비밀 말고, 이름의 비밀을 먼저 밝힌다.

사람은 이름 지어진 대로 ‘이름값’ 한다더니, 내 이름은 ‘동혁’이다.

사학도 출신 아버지께서 7,80년대 한창 흥사단 활동에 참여하시더니 소설‘상록수’에 나온 남자주인공

‘박동혁’에게 영감을 받아 이름을 동혁으로 지으셨단다.

아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러고 있구나 현대판 농촌계몽운동, 이름하여 ‘도시재생’.


이후로 ‘아. 이 그림이 이뻐? 저그림이 이뻐? 하는 시야와 수준으로는 이 복잡한 사회를 이해할수 없구나.’

하는 고민가운데 어느날 불연듯 정신차려보니, 전략컨설팅 회사에서 전략보고서를 쓰고있었다.

벽에 붓질하던 녀석이 논리적인 글짓기라니.

직관적인 창작의 세계에 있던 녀석에게 논리가 왠말, 전략이 왠말이냐.

그렇게 난 그 이후로 도시‘전략’을 세웠다.

인프라전략, 홍보전략, 대상별 전략, 공간별 전략, 단기전략, 중장기전략, 활성화전략, 점-선-면 전략

전략전략전략전략전략전략




[자기다움 4기]

"그가 부르는 데로 이름이 되었다."



그렇게 12년간 6번의 이직은 이제사 생각해보니

공공미술작가로의 창작의 역량과

문화기획자로서의 기획의 역량과

정책연구원으로서의 전략의 역량을 고루게 갖추게 해준

아주 감사한 나만의 자산이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나다움(브랜드)’이라.

그리고 나다움을 완성해가는 이 여정이 곧 ‘브랜딩’임을 알게 됬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에 이런 부분이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아담에게 온 만물의 이름을 지으라하시니, 그가 부르는 데로 이름이 되었다.


아마도 세계최초의 브랜딩전문가는 아담이겠다.


내가 앞서 내 이름의 비밀대로. 이름값하고 있음을 밝혔듯이

우리 모두는 그분의 창조 이래 지어진 이름대로 '이름값' 하고 있을까?

하물며 이 글을 쓸 때 사용하는 펜과 종이도 그 쓰임대로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데.

'그대'는 무슨 소명을 다 하고 있는지.

대한민국 한복판 서울이란 '도시'는 무슨 소명을 다 하고있는지.

그 안에 그저 육아맘들끼리 모인 저 '소모임'은 무슨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

모이기 위해 한곳에 자리한 여기 '공간' 자체는 그대에게 무슨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봐야할 때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지역과 사람 사이. 이들이 자기다움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저 쾌락적이고, 그저 유흥적이고, 그저 사행성에 쉽게 휘둘리는 세상 안에서

좀더 분별력 있는 '우리다움'의 임팩트를 이 세상 곳곳에 심어야겠다는 소명이 생겼다.

기업명 ‘로셜리티’는.

‘로컬리티(장소성)와 소셜리티(관계성, 사회성), 그리고 오리지날리티(정체성)의 개념을

함께 조합시킨 나름의 합성어이다.

결국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곧 좋은 방향과 ’우리다움‘을 좌우한다.


기업의 미션을 ‘글로벌 임팩트브랜딩 커뮤니티’라고 설정하고

이제 막 발을 내딛는 중이다.

영광스럽게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연구의 맥락 안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을 모시고 연구를 추진하는며

국제적 역량을 고민하는 지역, 브랜드, 커뮤니티들과 만남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앞으로 각자의 자기다운 방식으로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브랜드(사람, 관계, 공간, 도시)들의 임팩트 확장을 위해 함께 연대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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