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자연, 인간다움에 대하여
판도라의 세계에서 내게 가장 먼저 보인 건(뭐눈엔뭐만)
기술도, 전쟁도 아니라 그 세계 아바타들의 몸이었다.
불필요한 군살 없이 길고 가늘며,
목적에 맞는 구조로 가볍고 기능적이고,
걸을 때 몸통도 완벽하게 중력과 나란히 있다.
즉 움직임과 생존 효율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의 생태계에 따라 다르게 분화해 있다. 물의 환경에서는 지느러미처럼 넓은 전완과 손, 빠른 헤엄을 돕는 유연한 몸, 숲에서는 나무 사이를 빠르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매달리기 좋은 손과 길고 날씬한 팔다리를 갖춘다. 이러한 몸의 형태는 단순한 ‘외형적 장식’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환경과 요구에 맞춘 적응의 결과이다. 목적에 최적화된 몸들은 살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있다. 이처럼 자연에 적응한 몸, 그리고 그 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몸은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을 말했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살아왔고, 이런 몸이어야 한다.”
몸은 환경에 대한 답처럼 보였다.
그에 반해 현실의 우리는?
오랜 시간 눕고 앉아 눈과 손, 머리만 쓴다. 몸통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걷는 것은 작정해야만 한다.
문제는 뇌가 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움직이지 않는 몸, 그러나 쉬지 않고 돌아가는 뇌. 뇌의 입장에서 보면, 근육을 줄이고 지방을 늘리는 것이 효율적이다. 근육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니까.
그래서일까.
겉으로는 말라 보이지만 체지방률은 높고, 근육량은 매우 적은 이른바 ‘마른비만’이 놀랄 만큼 많아졌다. 마른비만 대항마로 ‘근육깁스’도 많다. 움직임 본연의 목적이 아닌 통증감소가 목적으로 생성된.
매일 샐러드를 먹고,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며, 주 3회 헬스나 필라테스를 가고, 하루 한 시간씩 운동을 해도 몸은 생각보다 잘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운동법들이
실제 삶의 환경 자체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시의 몸>
1. 마른비만의 몸 : 움직임이 적고, 감각과 균형 능력이 줄어든 몸
2. 덩어리 근육의 몸 : 과시적 목적. 혹은 통증을 감싸기 위한 관절에 두른 근육 구조물 같은 것들.
(마치 허리 통증이 있는 사람이 주변 근육을 과도하게 키워 몸을 ‘근육깁스’처럼 쓰는 경우)
근육이 많다고 그 몸이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통증이 없다고,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관절을 고정하듯 키운 근육은(목적이 왜곡된 결과물) 움직임을 돕기보다는 움직임을 제한한다. 유연하다고 해서 민첩한 것도 아니고, 근육량이 많고 크다고 해서 잘 걷는 것도 아니다.
아바타에서는 ‘바른 자세’를 강요하지 않는다.
‘몸을 곧게 세워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정해진 환경 속에서 그저 목적에 맞게 움직인다. 숨어야 할 땐 조용히 숨어들고, 싸워야 할 땐 빠르게 치고 빠진다. 뛸 때, 멈출 때, 방향을 바꿀 때 몸은 망설이지 않는다. 그 움직임들에는 규칙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환경과 목적에 가장 정확한 규칙이다. 그래서 그들의 몸은 가볍고, 매끈하고, 효율적이다. 과시도 없고, 덩어리도 없다.
아바타에서 사람들이 툴쿤을 잔인하게 사냥하는 이유가 고작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라는 사실에 좀 허무했다. 그 욕망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타자의 생을 소모한다. 그리고 죽음을 피하려고 싸운다. 자연의 일부인 몸을 향한 불가능하고 비자연적 욕심, 즉 노화와 죽음 거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미 몸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노화를 막겠다며, 죽음을 미루겠다며, 몸을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조작 가능한 물건처럼 다룬다.
하지만 자연에는 늙음과 죽음이 따로 없다. 그저 순환이 있을 뿐이다. 자연을 거스르려는 욕심이 몸을 더 불편하게 만든다.
아바타에서도 첨단기술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질서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기술을 이기는 진짜 해결은 키리와 초월적 어머니, 즉 “주술과 신”ㅎㅎ
몸은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육도 지방도 적당해야 한다.
스펙트럼 위에 놓는다면, 양극단이 아닌 중간쯤.
가볍고, 편안하고, 오래 쓰는 몸.
필요할 때 움직이고, 쉴 때 쉬는 몸.
환경에 맞게 반응하는 몸.
이런 몸은 특별한 운동법이 아니라
걷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걷기는
몸 전체를 고르게 쓰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며,
뇌와 몸을 동시에 깨우는 가장 효율적인 자극이다.
아바타는 묻는다.
“너의 몸은 지금 자연에 맞게 살고 있니?”
“너의 몸은 존중받고 있니?”
근육이 큰 몸은 과연 건강한가?
통증만 없다고 건강하다 말할 수 있는가?
그 몸은 정말 잘 걷고 있을까? 기능하고 있는가?
움직임과 삶이 일치하는 진짜 몸을 쓰고 있는가?
욕심이 결국 몸을 망치는 것 같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더 강한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각자 목적에 맞도록 쓰는 기능적인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