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는가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고
죽음은 공포라기보다는 슬픔이었다. 떠나가는 쪽이었던 적이 없고 늘 보내기만 했으니까. 아버지가 떠나가셨을 때는 너무 어려서 철없이 장례를 치렀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릴 때는 통곡하는 할아버지의 막내딸이 너무 애처로워서 가슴 들썩이며 함께 울었다. 죽음의 공간에서는 항상 ‘남은 자들의 슬픔’이 죽음보다 더 나를 가슴 아프게 했다. 그래서였나.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외면하고 싶고 당분간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며 안도하고 싶은 마음 아니었을까.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장에서 망자의 친구들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매년 여름 폭염이 시작되면 밭일 나가셨다가 돌아가시는 노인분들 소식을 종종 듣는다. 어느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될 때 밭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셔서 물 한 컵 들이키시고 돌아가신 90대 할머니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뜬금없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90 평생을 사셨고, 늘 하던 일을 하시다가, 평생 살아온 내 집에서, 큰 고통 없이 맞이한 죽음.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웰다잉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죽음 앞에 '다행이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숨을 뱉는 것처럼 '잘 돌아가셨다'는 말이 새어 나왔다. 나도 저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도 뒤따랐다. 깨끗하고 순식간에 오랜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아마도 이반 일리치가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통증의 고통이 죽음보다 더 공포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거다. 인생을 얼마나 잘 살아내야 그런 선물 같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일까?
죽음만큼 공평한 것도 없다. 잘났건 못났건, 행복하든 불행하든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예상 밖의 때 이른 죽음 앞에서는 이반 일리치처럼 '왜 나야?', '왜 내가 고통받아야 하고 죽어야 하는 거야?' 하는 의문으로 괴로움과 분노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생로병사 중에 ‘늙음’이 생략되었다. 늙어가면서 자신 역시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고 끝을 준비해 가게 되는데 그런 시간이 없이 뜬금없는 죽음이 닥치면 얼마나 억울할까? 게다가 이반 일리치처럼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라면 때 이르게 찾아온 죽음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물었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살고자 한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살고자 하느냐’ 물었다.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자 한다고 말한다. 기쁘고 즐거웠냐 물었다. 망설여진다. 안 그랬던 것 같다. 기억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서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때서야 의심 없이 즐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후는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 만족했던 적이 없다. 예의와 품위가 중요했기에 진실했던 적이 없다. 가족은 의식주를 함께 하는 파트너 정도로 여겨왔고 주변에는 온통 자기와 똑같이 위선으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런 삶을 살아왔다는 깨달음이 그를 더 미치게 했다. 곧 죽을 텐데 다시 제대로 살아볼 기회가 없는데 내 삶이 송두리째 잘못되었다면 나는 무엇인가? 도대체 나의 삶은 무엇인가? 억울해서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다.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답은 삶이 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꼭 잘 살아야 한다가 아니더라도 눈 감는 순간 아쉬움은 남지 않는 삶.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처럼 그렇게만 살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절대 죽지 않을 사람처럼 오만하지 않게, 나를 소모해야지 얻을 수 있는 것들에 가치 두지 않고, 현재의 나로 살아감이 충분히 행복하다면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라도 소풍 다녀온 듯 즐거운 삶이었다고 말하며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은 어둠이고 소멸이다. 그 이후가 어떠한지 아무도 알지 못하므로 무지에서 비롯된 두려움이 크다. 하지만 죽음의 칠흑 같은 어둠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빛이 될 수 있다. 두려운 존재는 마주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두려움은 줄고 새싹 같은 용기가 생겨났다. 아직은 너무나 나약하고 어린 새싹이지만 가꾸고 성장시켜 자유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