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가?"라고 자문해보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사람이고자 하는가?"라고 다시 물어보면 역시나 망설임 없이 "그렇다"이다. 그다음은 "내가 얻고자 하는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지금까지의 명료했던 대답들과는 달리 안개에 둘러싸인 것 같은 모호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만난 '조르바'는 자유로운 인간의 표상이다. ‘날것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논리, 관념, 덕성, 정직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원초적인 욕구에 솔직한 사람.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돌진한다. 기분 좋고 흥이 오르면 산투르를 퉁기며 노래하고 춤을 추고, 일을 할 땐 무섭게 집중하고 놀 땐 오로지 노는 것에만 열중한다. 그 무엇도 그를 구속할 수 없다. 생각해본다. 그가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내가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자신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화자에게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언젠가는 자를 거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인간들은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어야 하고....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그렇다. 자유롭지 못함의 원인은 생각, 생각이 너무 많다는 데 있었다. 무언가에 마음이 생기면 마음 가는 대로 행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이것저것 재기 시작한다. '잘 될까? 안되면 어떡하지? 그러면 안 하는만 못하지 않을까? 그래, 안 하는 게 낫겠다.' 이런 생각들이 스스로를 구속하고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나 보다. 생각이라는 것은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데 자꾸 나를 붙들어 매 두려고 한다. 행동에 앞선 생각은 신중함의 의미로 가치 있지만 생각이 행동을 머뭇거리게 하고 끝내 주저앉게 만든다면 인생의 장애물일 뿐이다. 행하지 않으면 새로움이 일어날 기회가 없고 살맛나는 일이 생길 일도 없는 늘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원인이 있었다. 천년만년 죽지 않고 살 사람처럼 살아가는 태도. 조르바는 내일을 장담하지 않고 곧 죽을 사람처럼 산다. 하루를 살고 죽는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뜨면 마치 인생을 처음 사는 사람처럼 환희로 가득 차서 하루를 시작한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모든 사물과 생소하게 만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이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돌, 그리고 새의 신비는?""
매일 보는 것들을 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만나는 사람이다. 새로운 것은 사람을 설레게 한다. 건조한 일상에서 설레임을 느낄 때 나도 모르게 자꾸 웃게 된다. 그러니 모든 걸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 새로움을 자기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의 일상은 얼마나 충만할까. 조르바의 충만한 행복이 죽음은 당연하며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지금 연연해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나는 춤을 추고 싶어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춤 못 추는 내 모습을 볼까 봐 마음껏 춤을 추기가 부끄럽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그런 부끄러운 마음으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그냥 음악에, 음악이 없으면 공기에 몸을 맡기고 마음껏 춤추어야 하지 않을까? 내일의 삶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진실이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 잠자고 있네. /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 일하고 있네. /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춤추고 싶어지는 날이 많은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인데 정작 춤은 못 추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춤출 수 있는 자유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