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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성 Jan 14. 2022

비혼? 미혼? 독신주의?

대학을 졸업할 무렵, 그때까지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었던 학교라는 둥지를 이제 곧 떠나야 한다는 현실이 불안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직업, 연애, 결혼 같은 나의 미래를 뜨거운 감자처럼 손에 들고 사주팔자를 보러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때 주위 친구들 사이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너는 서른 넘어서 결혼해야 한다. 서른 전에 결혼하면 헤어진다."라는 무시무시한 신탁을 듣고 몇 날 며칠 심란하고 울적했다. 그땐 서른이라는 나이가 너무나 아득했고 헤식어 보였고 색도 향기도 다 날아간 시들어 빠진 장미 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서른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할 수가 있을까’하는 참담함으로 온통 잿빛으로 변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서른이 얼마나 서둘러 찾아오는지 그리고 얼마나 예쁜 나이인지 20대였던 내가 알기는 어려웠을 거다.  모를 때 느꼈던 우울과 참담이 너무 민망해서 되돌아가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큼 건강하고 즐겁게 30대에 진입했다. 그런데 그 점쟁이의 신탁이 마음속에 남아 있긴 했던 것인지 결혼은 하지 않았다.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친척 어른들께 꽤나 들었던 상투적인 말이 있다.

"왜 결혼 안 하니?"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거나 지긋지긋하게 싫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들은 나와 가깝게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어서 물어볼 말이 그것밖에 없는 분들이었다. 나의 관심사나 일상에 대해, 가슴속에 품은 꿈과 삶의 지향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는 분들의 형식적인 안부 인사 같은 것이다. 그런 안부 인사에 화를 낼 필요는 없다. 형식적인 질문엔 형식적인 대답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게 현명하다.  

"내년쯤엔 한 번 가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서서히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가지 않게 되었다.     


나이의 앞자리가 또 한 번 바뀌었을 때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께서 자꾸 나를 찾으시고 보고 싶어 하신다는 엄마의 전언이 있었다. 참 뜬금없는 말이라 덜컥 겁이 났다. 나는 할머니와 이렇다 할 정이라는 게 없다. 어렸을 적 명절 때도 4남매 중 둘째라는 포지션을 이용해서 할머니 집에 가지 않고 집을 지키는 역할을 자처했었다. 첫째 딸과 막내아들이 우리 4남매의 대표주자들이고 둘째인 나의 존재감은 친척들 사이에 미미하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할머니는 언니도 아니고 남동생도 아닌 나를 왜 찾으시는 것일까 걱정이 되었다. 보고 싶어 하신다는 말을 듣고도 가지 않는 게 마음이 무거워 추석 전에 벌초 가는 동생 차에 얹혀서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내 손을 덥석 잡으시더니 “왔구나” 하고 유난하게 반가워해 주셨는데 이내 왜 그렇게 나를 보고 싶어 하셨던 것인지 의문이 풀렸다.

“얼른 결혼해라. 별놈 없다. 그냥 아무 놈이나 하고 결혼해라. 더 나이 먹기 전에 결혼하라고 꼭 말해야겠다 싶어서 오라고 했다. 혼자 사는 거는 너무 쓸쓸한 일이야. 빨리 결혼해라.”

그랬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시고 직접 말해주고 싶으셨던 거다. 결혼하라고. 혼자는 너무 외롭다고. 그런데 할머니의 다짜고짜 결혼예찬이 하나도 듣기 싫지 않았다. 정말 애간장 끓게 진심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라고 착하게 대답하고 돌아왔다.     


결혼을 '안 한' 거라고도 ' 못 한' 거라고도 말할 수 없다. '안 했다' , '못 했다'에는 의지나 능력이 개입되어 있다. 나는 결혼에 대해 의지를 불태웠던 적이 없다. 결혼을 나의 인생 계획표 안에 들여놓았던 적이 없었다. '하겠다 ', 혹은 '하지 않겠다'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저 관심 있는 것에 정신을 쏟으며 조용히 지냈고 시간이 나를 비껴가지 않고 성실하게 흘렀을 뿐이다. 그러니 비혼도 미혼도 독신주의도 다 내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어떤 낱말에도 소속될 수가 없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없고, 그렇다고 앞으로 결혼을 하겠다는 마음도 없으며, 혼자 살겠다는 주의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할 뿐이지 무엇도 단언할 수가 없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결혼이라는 건 좋은 사람과 연애를 하다가 함께 있는 게 좋아서 자연스럽게 결혼 생각이 들 때 그때 하겠다는 나름의 기준은 가지고 있다. 결혼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는 게 나의 결혼관이라면 결혼관이다.      


요즘도 '결혼 적령기'라는 말에 영향받는 사람이 있을까? 개별화가 두드러지는 이 시대에 결혼에 적당한 나이를 획일화하는 '적령기'라는 말은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내 삶의 모든 '적령기'는 스스로 판단해서 정하는 것이지 사회가 정한 규격화된 잣대에 기대어서 내 인생의 적절한 '때'들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인식이 자리 잡지 못했던 시대에는 서른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노처녀로 낙인찍고 가족의 골칫거리로 치부하곤 했다. 그 시대는 노처녀라는 단어에 '매력 없는 여자'라는 억울한 딱지까지 붙여서 단지 나이 먹었다는 잘못 없는 잘못으로 기죽어 지내야 했던 때였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시대에 빚이 많다. '비혼'이라는 신조어 덕에 편하고 당당하게 혼자 사는 즐거움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말의 힘은 참 대단해서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이 생기고 널리 쓰이면 그 말의 대상들이 존재의 타당성을 얻게 된다. 노처녀, 노총각으로 폄훼되던 30대 이상의 성숙한 남녀들이 그저 매력 없는 낙오자가 아니라 조금 다른 삶의 형태를 선택한 능동적인 주체로 받아들여지는 데 '비혼'이라는 낱말이 공헌한 바가 크다.   

   

내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30, 40대 미혼 혹은 비혼의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한 덕에 자칫 소수로서 겪어야 했을지 모를 특별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요즈음은 연세가 있으신 어른들조차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여자에 대해 혀를 차거나 일장 연설로 기를 죽이지 않는다. 그저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많더라', 혹은 '경제적 능력 있으면 꼭 결혼하지 않아도 되지 뭐'라고 너그럽게 봐주신다. 그야말로 진보한 시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다만 비혼이라는 단어가 편을 가르는데 쓰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말의 탄생이 나와 다른 사람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구분을 만들기도 한다. 나와 같은 부류인가 다른 부류인가를 구분하는 잣대가 아닌 다양한 삶의 형태 중 하나를 이르는 이름으로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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