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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FAC Nov 28. 2020

제주 아일랜드에서의 나흘

내 안의 평화를 되찾는 시간

무작정 제주도 비행기 왕복권을 끊었다.

발단이 된 건 친구가 먼저 제주도 일주일 여행을 계획해서

비행기 티켓을 끊었는데 왕복 3만 원이라는 말에 혹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비행기표를 검색했고 3만 원짜리 비행기 티켓이 정말 있었지만, 시간대가 너무 좋지 않아서 적당한 스케줄의 왕복 5만 원대 티켓으로 구매를 했자.


일단 비행기는 완료되었으니 그다음은 숙소랑 렌터카.

먼저 가있는 친구한테 숙소를 부탁하고 나는 렌터카 최저가를 예약했다. 생각보다 가격이 정말 착해서 10만 원에 3박 4일 빌릴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렇게 렌터카도 준비 완료. 여행이란 자고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빠르게 속전속결로 준비해서 떠나는 것이 진짜 여행의 맛이고 그래야 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회사일을 가기 전에 전부 처리하는 것.

그게 가장 큰 고비였다.

3주간의 제안서를 마무리하는 작업.

야근으로 연일 달렸다. 휴가 가기 바로 전 날까지.

정말 일이 어찌나 많던지 나중에는 사람 소리가 귀로

들어오지 않고 눈이 돌아갈 정도로 혼이 나갔다.


정말 쉬어야 할 시점이었다.

그렇게 모든 투두 리스트를 딱 맞춰서 끝내고 나서 알 수 없는 쾌감이 찾아왔다. 일 중독의 시작 단계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탈출하듯 나의 달콤한 가을의 끝에서 휴가는 시작되었다.


d-day

제주도 가는 당일.

전일에 12시까지 야근을 했더니 눈을 떠보니 10시.

아침으로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출근하시는 아빠가 용돈을 챙겨주신다.

엄마도 먹을 간식거리와 함께 용돈을 챙겨주신다.

30대이지만 용돈을 거부할 수 없는 건 왜일까.

이런 식으로 사랑과 관심을 확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거의 캐리어에 때려넣듯한 짐 싸기를 마치고

11:45분 택시를 타고 고속터미널역에 내렸다.

지하철로 갈아타서 9호선 급행을 타고 김포공항역 하차.

그렇게 순탄하게 비행기 탑승. 만석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다들 제주도에 간다는 말이 맞았다.

제주도에 내려서 야자수 나무와 welcome to jeju 사인을 보니 그제야 제주도 온 것이 실감이 났다.

벗. 어. 나. 다.

지겨웠던 일상에서.

미친 듯이 벗어나고 싶었다.


첫 행선지는 함덕해변.

이쁜 노을이 지는 해변을 보니 속이 탁 트였다.

에메랄드 빛을 내는 바다를 보면서 커피랑 빵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평범한 빵조차도 제주 바다 앞에서는 여느 호텔 코스 못지않게 풍미 가득했다.

그저 강렬하게 파도치는 것을 보니 힐링이었다.

바다가 마음을 치유해주는 것만 같았다.

숙소에 가서 체크인을 하고 바로 저녁을 먹으러 추천받은 흑돼지 집에 도착.

사장님이 직접 두툼한 검은 털 박힌 흑돼지를 구워주셨고,

돼지 잡는 날이라며 서비스로 껍데기까지 주셨다.

뭐, 고기도 고기지만 흑돼지와 제주에 있다는 점 그리고

한라산이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술이 달콤했다.

사장님께서 친히 숙소까지 데려다주시는 서비스까지 완벽했다. 방안에서는 맥주 한 캔과 음악만으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day 2

둘째 날. 오늘은 혼행을 하는 날.

제주도에서 혼행을 하면 장단점이 있는데,

단점은 음식의 제약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집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간 첫 목적지는 바로 해물라면 집.

이 곳 또한 추천을 받은 맛집이다.

 

하지만! 여기는 라면 주문이 2인부터 가능하다.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어쩌지 어쩌지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까 주인아주머니가 특별히 해주신다고 하신다. 역시 사람 간의 하는 일은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얻고 잃고 가 좌우되는듯하다. 이윽고 문어와 전복이 들어간 초 럭셔리 라면이 등장했고 200% 만족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노래를 들으며 하는 해안도로 드라이브!

제주시를 제외하고는 차가 서울에 비해서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뻥 뚫린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버린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바다 보이는 카페에서 물 멍.

이 두 가지 자체로 힐링이다.


그래서 추천받은 카페로 향하다가 가는 길에 해안도로에 예쁜 카페가 있어서 이끌리듯 들어갔다.

바닷가로 넓은 창이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

들어가서 창가 자리 소파에 앉아서 한참 동안 멍하니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바다와 나 그뿐이면 충분했다. 같이 갈 사람도,

시끄러운 음악소리도 필요치 않았다.


카페에서 충분한 바다 감상 후 뭔가 제주도 왔으니까 하나는 보고 가자라는 마음에 서귀포에 동백꽃을 보러 운전대를 돌렸다.

도착하니 사람도 많지 않아서 정원을 산책하기에 딱 좋았다.

특히나 길이 정해져 있지 않은 미로 같은 정원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고,

다른 길들이 많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꽃들과 보낼 수 있었다. 흐린 날이었지만, 새빨간 동백꽃의 매력은 그 안에서도 빛이 났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꽃들까지 아름다웠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한참 동안 정원을 거닐다가 나왔다.


그렇게 서귀포까지 모두 돌아보고 나서야 다시 동쪽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쌩쌩 달렸다.

달리다 보니 허기가 져서 내 허기진 배처럼 ‘출출’한 이름의 식당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칠흑같이 깜깜해진 바다 바로 앞의 분식집. 테이블은 단 4개였고, 한 테이블만 남아있었다. 고민 끝에 제주도에만 있을법한 ‘오징어 한 마리 튀김’을 골랐다. 내 촉은 틀리지 않았고 굉장히 바삭하고, 맛있었다. 다만 차를 가져왔기 때문에 맥주를 못 시킨 게 2%로 아깝지만! 반 정도 먹고 테이크아웃을 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랜 운전시간 때문인지 몸이 녹초 같아서 이른 시간 잠들었다.


day 3.

오늘은 성산일출봉에 일출을 보러 가야 해서 6시 20분에 

고양이 세수만 하고 나왔다. 숙소 바로 앞이 성산일출봉이라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비몽사몽 걸어 나갔다. 이윽고 등산길이 보였고 정말 공복에 올라가려니 많이 힘들었지만 침착하게 올라갔다.

일곱 시가 되기 얼마 전에 산 정상에 도착을 했고 서서히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흐려서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성산일출봉에서 내려다보는 제주의 모습은 눈에

한껏 담을 수 있었다. 공기가 아주 상쾌했다. 내려오면서 보는 제주의 풍경도 아름다웠고 말들이 드 넓은 초원에서

거니는 것을 보니 힐링되었다.

지친 몸으로 숙소로 들어와서 다시 잠을 청한 뒤 준비를 하고 나가서 먹은 오늘의 첫끼는 ‘전복죽’이다.

역시 산행 때문인지 밥이 아주 잘 들어가서 폭풍 흡입으로 클리어했다.


그리고 근처 스벅에서 커피를 마시고 잠을 깨고 제주시로 향했다. 약 한 시간 걸려서 제주시에 도착을 해서 잠깐 로비에 있는 아티제에 앉아있다가 방에 체크인을 했다.

쾌적한 방 컨디션이 마음에 들었고, 우선 찝찝한 몸을 씻고 나서 밥을 먹으러 나섰다. 제주도 1년 동안 살았던 친구가 강추한 고사리 해장국 집에 도착을 했다. 대기가 있었지만 4시라는 시간 때문인지 많이 기다리지 않았다.

드디어 영접한 고사리 해장국의 첫맛은 이것 때문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였다. 사실 뭐,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 그저, 고소하고 담백하면서 푸근한 맛? 하지만 먹을수록 맛이 느껴지는 맛. 그리고 같이 나온 깍두기가 상당히 맛있었다.


나와서 해안가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이 곳도 지인 추천 카페!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가성비 갑이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여기서는 휴식하면서 재충전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서 1층에 있는 펍에 가서 치맥으로 마지막 날을 마무리했다.


day 4.

원래대로라면 오늘 오후 1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영 발이 안 떨어졌다. 사실, 이 시국에 언제 또 제주도를 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가도 내년이나 되어야 또 휴가를 내서 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시끄럽게 했지만 이내 내 마음을 따르자고 결단을 내렸다. 비행기표를 다시 끊고 렌터카를 연장시켰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체크 아웃을 하고 추천받은 제주 향토 맛집 도착.

고등어구이를 시켰는데 사이즈가 혜자스럽다. 든든한 아점을 하고 나서 가고 싶었던 카페 도착. 카페와 샵이 같이

있는 곳이어서 먼저 샵을 구경했다. 역시, 디자인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져서 눈이 반짝거렸지만 소비는 하지 않았다. 1층 카페로 내려와 보니 요즘에 먹고 싶던, 퐁당 쇼콜라 메뉴가 있어서 바로 선택을 하고 창가석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가 조용하고 공부하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많아서 글을 쓰기 최적화된 곳이었다. 사실, 해안가 카페들은 글을 쓸 분위기는 영 아니다. 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있으면 되니까.


이곳이 제주의 최대 카페로 등극했다. 그냥 분위기, 인테리어, 샵, 창가 자리에 앉으면 보이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날아다니는 새가 스웨덴을 생각나게 했다. 심지어, 음악소리가 없었음에도 굉장히 편안했다. 또 창밖에서는 비행기들이 각자 행선지로 향하는 것을 계속 볼 수 있었는데 그것 또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


이제는 제주에서 할 일을 다 한 것만 같았다.

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저 온전히 제주를 온몸으로 느끼고 가자는 마음뿐.

초콜릿과 오메기떡만 사면 된다.


나에게 여행이란 나를 위한 선물이다.

내가 얼마나 힘들건, 어떤 상황에 있던지, 여행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무언가를 불어넣어준다.

겨울이 오기 바로 전 제주는 더할 나위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제주는 언제 와도 좋은 곳이었다.

여기 와서 다양한 감정을 느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행복했다. 바다와, 여유, 힐링, 타지가 주는 그 이국적인 맛까지.

역시 나는 여행을 오면 피부가 더 좋아지고 사람이 생기가 돈다. 돌아다닐수록 기운을 뻗는 건 아빠를 꼭 닮았나 보다. 특히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SNS의 알림을 모두 꺼놓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힐링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원할 때만 들어가서 보니까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았고 지금에 충실할 수 있었다.


여기로 온 건 일, 번뇌, 책임감, 등 나를 얽매이는 모든 것에서부터 잠시 떨어져 있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아주 잘 이루어냈다.

이제는 다시 또 힘을 내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또 겨울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내가 하는 고민들이 나중에 보면 결국 아주 작은 것들일 것이라는 것도 다시 깨달았고, 사람은 가끔씩 휴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휴식은 아무 이유 없이도 필요한 것임을. 


엉덩이가 근질근질 해질 때쯤, 일어나서 바다를 향했다. 거친 바닷바람과 갈매기들이 바다의 강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다음 행선지는 이호 태우 해수욕장.

가족들과 같이 온 곳인 것을 와보고서야 알았다.

이 곳의 매력인 검은 모래 해변은 여전히 곱고 아름다웠다.

만져보니 비단결 같았다. 귀에 에어 팟을 꽂고 해변가를 걸으니 잡생각이 사라진다. 차로 돌아오려는데 지난번에 갔던 카페 옆에 인생 네 컷 부스가 있어서 괜스레 들어가 본다. 제주도 촛 혼행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마음엔 안 드는데 재밌다. 이것도 나중에 추억이 되겠지.


차에 올라 신나게 애월 해안도로를 달린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카페들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추천받은 타르트 집에 도착하니 이미 대부분 솔드아웃이었다. 감바스 하나랑 오리지널 3개를 구매 후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정말 나 하나였다.

정말 좋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현상에 대해 걱정도 되었다. 한라봉차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니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사 가지고 온 타르트와 한라봉차를 먹은 꿀맛이었다. 여유로운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지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사진도 옮기고 이번 여행의 버짓을 정리해본다. 오늘 비행기 티켓을 연장하길 300%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제주도 곧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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