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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Oct 18. 2023

포기하고 싶은 마음, 그 속의 마음

고비 사막을 오르며

몽골 여행의 셋째 날, 홍골린엘스로 이동했다.

홍골린엘스. 고비사막이 있는 곳이다. 어쩌면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곳. 때문에 매일 5-6시간의 이동을 하는 일정 중, 유일하게 이동 없이 이틀을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덜컹거리는 차 안. 네비도 없는 길을 그저 바큇자국만을 길잡이 삼아 오프로드 운전을 한다. 사막에 다가갈수록 길은 더 험해졌다. 그만큼 다가가기 힘들다는 듯. 삼일째임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승차감에 멍해지다가 어느 순간 창 밖을 보니 저 멀리 모래사막이 보였다. 

아직은 신기루인 듯 멀리 보이던 모래언덕. 가까이 갈수록 땅이 메말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자갈과 모래가 가득한 땅에 다가갈수록 내 마음은 더 뛰었다. 점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사막에 오다니. 어느 정도 모래언덕이 가까워져 오니 덜컹거리는 승차감은 줄어들고 차 뒤에는 모래 바람이 함께했다. 드디어 사막에 다다른 것이다. 바람이 부딪히는 모래 소리가 끊임없이 노래한다는 그곳에.


도착한 사막은 척박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황홀하고 푸르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드러운 비단처럼 유려한 곡선을 뽐내는 황금빛 모래 언덕과 그 앞에 펼쳐진 푸르른 초지, 비현실적 이게도 그곳을 흐르고 있는 강물과 유유히 풀을 뜯던 낙타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보고 있음에도 꿈을 꾸는 듯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풍경에 두근거리며 이제 사막으로 발을 내디뎠다. 모래 언덕을 느끼기 위해서.


따뜻함과 서늘함이 공존하며 발가락 사이를 스며들 듯 부드러우면서도 건조하던 모래알. 맨발로 느껴지던 모래의 감촉은 황홀했다. 

그렇지만 그 황홀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발을 위로 내딛으면 주위 모래가 쓸려 반 발은 파묻혔고, 올라도 올라도 끝은 다가갈 수 없는 듯 느껴졌다. 매서운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싸매어 입은 옷들이 거추장스러워졌으며, 타는 목을 축여줄 생수는 모래에 뒤엉켜 까끌거렸다. 나름 등산과 걷기로 다져져 사막 오르기는 걱정하지 않았는데, 꼭 뻘에 발을 잡아먹히듯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은 딱딱한 땅을 걸어 오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고 점점 힘이 빠졌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굳이 정상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을까. 지금 이곳도 충분히 멋진데. 

일행들 중 일부는 벌써 정상에 올라 얼른 오라며 용기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힘들어 이렇게 정상에 오른다 한들 좋을까 싶었으니까. 


푹푹 발이 빠져 앞으로 오도 가도 않는 무력감에, 며칠간 쌓인 피로감, 오랜만에 여행이었음에도 늘 여행을 가면 생기는 시큰둥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질병이다. 여행에서 기대감과 아쉬움이 사라지는 시큰둥함. 

너무 많은 곳을 가서였을까,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서였을까, 어쩌면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기 위함일까. 어떠한 이유로 스스로 떠난 여행에서 늘 마음을 닫고 시큰둥함을 갖는지, 그러면서도 왜 늘 떠나는지 답을 내리지 못하는 내가, 또 무작정 떠나온 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 시큰둥함을 느끼게 되었는지 답답한 마음에 울컥 화가 났다. 애꿎은 마음에 썰매를 모래에 푹푹 박아대다가 아, 몰라하는 마음으로 대자로 누워버렸다. 하늘이 보였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하늘이 꼭 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 같았다. 한숨을 푹 쉬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큰둥함은 어쩌면 나의 두려움 같았다. 힘듦 같았다. 그리고 기대감 같았다. 어쩌면 실망할까 두려워 힘듦을 핑계 삼아 기대하지 않으려는 작은 기대감처럼. 그건 기대한다는 뜻이니까.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다시 한발 한발 내디뎠다. 점점 더 경사가 급해지고, 너무 힘이 들어 마음속으로 열을 세며 쉬고, 열을 세고 쉬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올랐다. 그리고 다다랐다.

끝도 없이 펼쳐지던 모래 언덕들, 그곳에서 들리던 바람에 부딪히던 모래의 노랫소리.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음에도 마음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올랐다는 성취감 덕분인지 울컥함이 올라왔다.

아직도 생생한 그 마음과 발끝을 간질이던 모래의 감촉, 그리고 함께한 이들이 응원하듯 건넨 맥주 한 캔.

 

그래, 어쩌면 나는 그 시큰둥함을 이겨낼 연습을 하기 위해 떠나는 것일지도 몰라. 나약한 내게, 포기를 합리화시키고 싶어 하는 내게. 조금 더 힘을 내면 해낼 수 있다고, 해내고 나며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현실에서도 여행에서 그렇듯 사막을 오르고, 700km 길을 걷고, 영하 30도를 견대내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거라고. 그런 시간들이 쌓아가다 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황금빛 모래 언덕처럼 행복이 쌓일 거라고.

함께하던 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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