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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Square Jun 22. 2024

'고구마크림카스테라소금빵'과
'근본론'

#2

#1. 고구마크림카스테라소금빵

나는 음식에 있어서는 꽤나 ‘꼰대’인 편이다. 아니 뭐 그렇다고 “부먹은 사문난적이다”, “민초 먹는 애들은 삼족을 멸해야 한다” 등등을 남발하는 강경론자는 아니고, 음식의 근본을 중시하는 근본론자에 더 가깝다. 각 음식들은 그 메뉴 자체의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 음식의 근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주말, 우연히 망원동에 놀러갔다. 아기자기한 소품샵이 많았던 ‘망리단길’, 꽤나 규모가 있었던 망원시장 등 매력적인 곳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빵지순례의 행렬이었다. Ugl* Bakery, 후와후*, Two Thumbs * 등의 빵집들이 어느새 망원동 빵지순례 맛집이 되어 꽤나 긴 사람들의 대기줄을 형성시키고 있던 것이다. 꽤나 추운 날씨였음에도 그 많은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었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추측과 함께 호기심이 들었다. 이내 나도 후와후*를 입장하기 위한 대기열에 합류했다. 


소금빵과 베이글 맛집이라는 이곳에서 내가 고른 빵은 ‘고구마크림카스테라소금빵’. 이름도 길다. 고구마, 크림, 카스텔라, 소금, 빵. 각각 말이 되는 다섯 단어들이 하나의 고유명사로서 기능한다니! 아니 뭐 나중에는 페퍼로니피자치킨햄버거도 나오겠네…

그게 실제로 팔고 있었습니다


고심해서 고른 빵이었지만 사실 맛은 실망스러웠다. 모름지기 소금빵의 덕목은 파삭한 겉 부분과 촉촉한 빵결 속 가염버터가 주는 짭짤함과 감칠맛에 있을 터. 카스텔라 고명을 묻히기 위해 빵 표면에 바른 생크림은 원래 빵이 가진 크리스피함을 눅눅함으로 바꾸고 있었고, 빵 안에 주입된 고구마 크림은 가염버터의 맛을 덮어버리고 있었다. 하고많은 빵들 중에 이 친구를 고른 것이 패착이었나, 궁금증 해결을 위해 포기한 기회비용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뭐 그래도 이해는 갔다. 저런 폭력적인 비주얼을 가진 빵을 싫어할 사람들은 몇 없을 테니까. 새롭고 화려한 맛과 비주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나처럼 편협한 꼰대들의 인정보다 도움이 될 테다. 새로운 시도와 조합으로 내가 몰랐던 맛도리 메뉴들이 개발될 수 있고, 내 알량한 감상과 지식으로 이 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피와 땀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건 선 넘었다.


#2. 빵먹다가 든 생각


빵 하나에 무슨 개똥철학인가 싶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근본과 새로움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내가 근본인 ‘소금빵’을 택한다면 최고급 소금과 최고급 버터, 최고급 밀가루 등 각각의 구성 요소를 세분화하고 극한까지 강화할 수는 있지만 그래봐야 소금빵일 것이다. 반면 내가 ‘고구마크림카스테라소금빵’, 혹은 다른 새로운 바리에이션을 선택한다면 지금은 이상할 지 몰라도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의 장르를 개척할지도 모른다.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법이 단순히 더하기와 빼기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는 그저 오리지널 소금빵에서 멈춰있다면 넘지 못할 벽을 깰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는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치킨에 가루를 뿌리는 아이디어로 교촌의 아성을 넘을 치킨 프랜차이즈가 생긴다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누가 UCC로 불리던 개인 콘텐츠 시장이 유튜브를 등에 업고 이렇게 커질 줄 알았던가. 그 누가 디지털 쪼가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비트코인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통화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물론 그걸 알았다면 벌써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겠지만, 어쩌면 내가 이런 ‘근본론자’인 것이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와 보수적인 사고방식의 부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난다. 세상을 바꾼다는 그럴듯한 꿈은 없지만 최소한 한 발 앞서기 위한 인사이트는 갖고 싶을 따름이다. 아 그런 꿈이 없어서 이런건가?

나는 그저 범부인 것인가...


또 새로움을 찾는 과정 중에서 의미 있는 발견을 하는 것은 우연이나 요행에 기반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그 새로움은 나는 그 발견이 유의미한 것인 줄 깨닫고 붙잡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고민이 뒤따른다. 어느 새 이 빵 쪼가리는 내게 새로움을 받아들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로 읽혀졌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근본을 찾고 있다. 단순히 음식과 식문화를 넘어 조지 밀러 作 분노의 질주에 박수를 치고, 정통파 우완투수가 150을 던지는데 전율을 느낀다. 내가 사는 방식이, 먹는 음식이, 듣는 음악이, 내가 향유하는 문화들이 그 뿌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믿는다. 직장을 묵묵히 나가고 내가 속한 조직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변치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 맥락에서 오늘도 오리지널 소금빵을 하나 사서 입에 물어본다.


아, 번외로 내가 이렇게 줄기차게 주창한 ‘근본론’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결단코 원조집들을 찾아나서는 이유와는 차이가 있다고 짚고 글을 마치고 싶다. 흔히들 말하듯 ‘돈맛보고 변한 원조집’도 수두룩 빽빽할 터, 나 역시 스스로가 원조라 주장하는 식당에서 실망적인 경험을 했던 적도 많다. 어떤 식당 어떤 메뉴든 그 원래 의도에 충실하다면 기꺼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는 경계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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