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도시의 바닥

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by 로그캐빈
또각. 이력서를 넘기는 종이 소리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줄은 몰랐다.


당시는 낡은 공단이 '디지털단지'로 막 탈바꿈하던 시기였다.

공장 굴뚝의 기억 위에 새 간판들이 덧칠된 거리.

점심시간이면 같은 양복, 같은 명찰을 단 사람들이 비슷한 속도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구로디지털단지의 SI 업체는 ASP와 MSSQL을 주력으로 쓰는 곳이었다.

기술 스택은 내 경력과 잘 맞았지만, 연봉 조건은 다른 곳보다 훨씬 낮았다.

그럼에도 내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사람.

면접관으로 나왔던 백발의 부장님 때문이었다.



부장님은 내 이력서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으셨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가 한 번씩 또각거렸다.

보통의 면접관들이

"이 기술 써봤냐."
"이거 구현할 줄 아냐."

이런 식의 취조를 이어갈 때, 그분은 이력서 행간에 숨은 삶의 흔적들을 먼저 짚어내셨다.

"자격증에 공모전까지… 참 열심히 살았네."
"이 나이에 이 정도 실무까지 버틴 거 보면 보통 근성은 아니야."

말을 마친 부장님은 잠깐 안경 너머로 나를 보더니, 내가 대답할 틈을 주듯 물컵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여유가 이상하게도 나를 편하게 했다.


면접은 어느덧 상담으로 변해 있었다.

부장님은 내가 개발자로서 가졌던 고민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조언해 주셨다.

기술적인 질문보다, 개발자로서 어떻게 일할지를 먼저 묻는 사람이었다.

사수도 없이 버텨 온 내게,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부장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여기로 오겠습니다."

내 결정을 전하자 부장님은 오히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사 형편상 연봉을 높게 책정할 수 없어서 내가 다른 곳으로 갈 거라 확신하고 마음을 비우고 계셨다고 했다.

"아니, 진짜 우리 회사로 온다고?"
"연봉 더 많이 준다는 곳도 있었다며?"
"내가 너무 상담을 잘해줬나 보네."

부장님의 허탈한 듯하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서울로 올라와 사흘 동안 면접을 돌고 나서, 내게 남은 건 돈보다 먼저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제 짐을 싸서 다시 올라와야 했다.

내 주머니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다시 올라올 짐부터 머릿속으로 챙기고 있었다.


짐을 꾸려 다시 올라온 날, 기차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하지만 서울은 나에게 친절한 안식처를 내어주지 않았다.

짐이라고 해봤자 낡은 컴퓨터 한 대와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노량진 판자촌의 방 한 칸에 한 달가량 신세를 졌다.

좁은 방에서 눈치로 잠을 재우고, 돈을 아끼려고 숨을 줄였다.

그렇게 버티는 동안 서울의 물가와 지리가 몸에 먼저 박혔다.


한 달 뒤, 나는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역 근처, 낡은 동네에 작은 거처를 마련했다.

역 근처 골목으로 접어들 때마다, 도시의 소리가 한 층씩 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곳은 햇볕 대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어오는 반지하 방이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그림자를 보며, 서울의 하루가 늘 내 머리 위에서 지나간다는 걸 배웠다.

창문을 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 밑창이 먼저 보였고, 비가 오는 날이면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벽지 사이로 배어 나왔다.

그 좁고 습한 곳은, 낯선 도시에서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생활은 단조롭다 못해 엄격했다.

평일에는 아침 일찍 출근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며 밤늦게까지 코드를 짰다.

회사 밥은 나에게 영양가 있는 식단 이상의 의미였다.

가난한 자취생의 식비를 아껴주는 가장 고마운 복지였다.


진짜 시련은 주말에 찾아왔다.

회사 식당이 닫히는 주말이면, 반지하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점화가 두세 번 만에 겨우 붙었다.

어느 주말, 본가에서 보내준 마지막 밑반찬 통을 열었다.

비어 있었다.

통장을 확인했다.

대구에 보낼 돈을 빼면 남는 건 이번 주 교통비뿐이었다.

문득 면접실에서 들었던 또각 소리가 다시 귀를 울렸다.

그 소리를 따라온 거라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



부장님은 가끔 퇴근 무렵 내 자리로 오셨다.

"이것 좀 같이 보자."

말끝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의자는 늘 내 옆이 아니라, 내 뒤에 먼저 멈췄다.

내가 올린 코드를 열면 모니터 위에 빨간 줄이 줄줄이 그어져 있었다.

부장님의 손가락이 화면을 짚을 때마다, '완성'이라 믿었던 코드의 허점이 드러났다.

"여기, 왜 이렇게 짰어?"
"로직을 최대한 추상화하려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독학하며 읽은 책들에는 늘 '완벽한 추상화'가 이상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모든 로직을 깔끔하게 분리하고, 재사용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게 좋은 코드라고 믿었다.


부장님은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큰 틀에서 추상화하는 건 맞아. 근데 세부 페이지까지 전부 이렇게 쪼개놓으면, 나중에 유지보수할 때 오히려 더 헤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이론은 이론이고."

부장님은 화면을 가리켰다.

"실무에서는 큰 구조만 잘 잡아놓고, 세부 로직은 컨벤션을 잘 지키는 선에서 구분하는 게 유지관리에 유리할 수 있어."

반론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부장님이 짚는 코드를 따라가다 보니 말이 줄었다.

몇 군데를 고치자 코드가 오히려 읽기 쉬워졌다.


가끔은 기술적인 지점에서 서로 생각이 다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부장님은 찍어누르지 않았다.

"정말 자신 있어? 그러면 내기하자. 틀린 사람이 커피 타오는 거다."

웃으면서 던지는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내가 틀렸을 때도 무안하지 않게, 커피 한 잔 타오는 것으로 끝났다.

내가 맞았을 때는 부장님이 정말로 커피를 타 오셨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몇 달, 부장님은 내 옆에 앉아 한 줄씩 고쳐 나갔다.

줄 끝마다 빨간 표시가 걷히면서, 내 코드는 다른 코드가 되어갔다.


야근 사무실에는 키보드 소리와 자판기 모터 소리뿐이었다.

빨간 줄이 마지막 하나까지 사라졌을 때, 부장님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 날은 코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그분의 자리가 보였다.

프로젝트 일정이 한 번 뒤틀린 날이었다.

사장님은 계약 얘기를 했고, 이사님은 숫자와 날짜를 칼같이 잘라 말했다.

영업 쪽은 고객이 원한다는 말을 밀었고, 개발 쪽은 그 일정으로는 결국 사고 난다고 맞받았다.

그 사이에 부장님이 앉아 있었다.

직급으로만 치면 사장님과 이사님 바로 아래였지만, 회의실에서 그분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제일 늦게 닿았다.

직접 코드를 짜는 사람도 아니고, 영업처럼 밖에서 결론을 들고 오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무 쪽도 아닌 채 물러설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말이 한쪽으로 기울 때마다 부장님은 펜을 내려놓고 낮게 말했다.

"그건 현장에서 안 돌아가."
"개발 쪽 사정도 같이 봐야지."

한마디가 판을 뒤집지는 못했다.

대신 더 험해질 말을 한 번씩 받아냈다.

그때서야 그분이 어떤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지 조금 보였다.

내 모니터에는 빨간 줄이 사라진 자리가 남아 있었다.


반지하로 돌아오면, 고향에서 가져온 낡은 컴퓨터가 습한 공기 속에서 웅웅거리며 나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누군가의 신발이 지나가고, 나는 그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화면을 들여다보며 반지하의 첫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면 부장님이 모니터 너머로 고개를 들어 나를 볼 것이다.

"왔어?" 한마디와 함께.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