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의 진, 3일

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by 로그캐빈

3일.

나는 72시간짜리 도박을 시작하고 있었다.


병역특례라는 제도에는 최후의 카드가 있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직'이라는 형태로 다른 회사로 이동할 수 있는 권한.

나에게 남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마음이 정리되자 행동은 거침없었다.

주말 내내 방 안에서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 큰 도시의 병역특례 업체 리스트를 훑었다.

내 기술 스택인 ASP, PHP, JSP, Oracle이 조금이라도 겹치는 곳이라면 망설임 없이 이력서를 던졌다.

"대구에서 서울로 전직을 희망함."

이 짧은 문구에 절박함을 담아 수십 군데에 지원서를 뿌렸다.

운 좋게도 주말 사이 두어 군데에서 면접 제안이 왔다.

추가로 회신이 더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절박함을 안고 월요일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방 안에는 복잡한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 왕복 기차표, 그리고 사흘 치 찜질방비와 김밥 몇 줄을 살 수 있는 푼돈이 들어 있었다.


나는 회사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명백한 무단결근이었다.

주머니 속 왕복 기차표가 손끝에 닿을 때마다, 종이의 모서리가 손끝에 걸렸다.

손가락을 조금만 더 세게 쥐면 베일 것 같아서, 나는 계속 주머니 안에서 손을 폈다 쥐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3일이다. 3일 안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난다.'


산업기능요원의 무단결근 3일은 병역의무 위반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이번 상경에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채 대구로 돌아간다면, 나는 지난 1년간 공들여 쌓아 온 병역특례 경력을 모두 포기하고 훈련소로 끌려가야 하는 처지였다.


도착역에 내리자마자 목도리 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낯설게 매웠다.

처음 서보는 역의 소음 속에서 나는 노선도를 펼쳐 들었다.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

강남.

여의도.

생전 처음 가보는 지명들도 내 72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처음 도착한 구로디지털단지 역은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출근시간대, 역에서 내려 벤처단지 쪽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였다.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사람들의 물결이 이미 도로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나는 그 인파의 흐름에 한순간 압도당했다.

대구에서 보던 출근길과는 밀도부터 다른, 거대도시의 속도였다.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

그 생각이 가슴 어딘가에서 부풀어 올라, 나도 모르게 어깨를 바짝 움츠렸다.


낮에는 낯선 회사의 면접관들 앞에서 내 기술과 경험을 증명했다.

면접실을 나서면 복도의 정수기에서 종이컵 하나를 뽑아 물을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물이, 그제야 내가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를 알려주었다.


밤에는 눅눅한 찜질방 구석에서 식어버린 김밥을 씹으며 다음 날의 질문을 예상했다.

뜨거운 탕 안에서도 머릿속은 온통 쿼리문과 로직으로 가득했다.

형광등이 꺼진 수면실에서 천장의 비상구 표시등만 초록빛으로 떠 있었고, 잠은 오지 않았다.



세 번의 새벽이 찜질방 천장 위로 지나갔다.

비상구 표시등의 초록빛 아래서 눈을 떴다.

구겨진 정장을 손바닥으로 쓸어 펴고, 또다시 낯선 역의 계단을 올랐다.


다행히 내 절박함이 닿았는지, 면접을 본 업체 중 두어 군데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그중에는 지금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당장 계약하자는 곳도 있었다.

그 숫자를 떠올리자 잠깐 입안이 말랐다.

찜질방 바닥에서 뒤척이던 밤들이, 그 숫자 앞에서 한꺼번에 정산되는 기분이었다.

내 발걸음은 구로의 한 작은 업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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