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교를 건넌 날

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by 로그캐빈
"오늘 회의는 네가 핵심이다. 쫄지 말고 아는 대로 다 말해."


한남대교를 건널 때, 상무님은 운전석에서 연신 담배를 태우며 말했다.

나는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빌딩 숲은 지방에서 올라온 내게 막막한 풍경이었다.


이번 출장의 목적은 서울에 본사를 둔 중견기업과의 신규 거래를 위한 기술 협의였다.

우리 회사는 규모는 작았지만 특정 솔루션 분야에서는 나름의 입지를 다지고 있었고, 나는 그 시스템의 밑바닥부터 DB 설계까지를 실무에서 가장 깊게 만져본 사람이었다.


회의 장소는 도심 한복판의 세련된 오피스 빌딩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분주하게 지나갔고, 로비 바닥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반들거렸다.

회의실로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는 깔끔한 명함이 가지런했고, 상대측 개발팀원들은 노트북을 펼친 채 이미 준비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 종이컵에는 식은 커피 자국이 남아 있었고, 누군가 넘기는 자료 끝이 바스락거렸다.


기술 이야기가 오가자 긴장의 결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시스템 간 연동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나는 잠시 시선을 테이블 위에 고정한 뒤, 우리 쪽 시스템을 연동했던 이전 사례와 연동 구간의 오류 처리 방식을 설명했다.

독학으로 익힌 말이라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상대 개발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회의가 끝나고 빌딩을 나섰을 때, 상무님은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으셨다.

"인마, 너 오늘 잘하더라. 생각보다 괜찮았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도심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나는 서울에서 일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떠올렸다.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낮의 자신감이 식어갔다.

소집해제까지 남은 시간, 서울에서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그리고 최저임금 통장에 찍힌 잔고.


돌아온 뒤에도 며칠 동안 회의실의 커피 냄새와 창밖의 빌딩 숲이 불쑥 떠올랐다.

하루짜리 출장에 불과했는데, 그 뒤로는 이전처럼 일할 수가 없었다.


연동 모듈을 두 건 더 만드는 사이, 상무님의 출장 동행도 잦아졌다.



어느새 2005년의 겨울이 깊어지고 있었다.

내가 살던 도시의 칼바람은 습기를 머금어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연구소의 열기마저 식힐 기세로 몰아쳤다.


나는 조직 안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였다.

병역특례 신분의 부채감으로, 본업 밖의 잡무들도 크게 개의치 않고 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균열이 생겼다.

자세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거래처와 관련된 접대성 심부름이었다.


코드 한 줄, 쿼리 하나 들어가지 않는, 내 본업과는 상관없는, 그저 누군가의 체면을 위한 뒤처리였다.

그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났고,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사장님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사무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키보드 소리가 멎고, 누군가 들고 있던 종이만 바스락거렸다.

사장님은 호탕한 모습은 간데없이 나에게 질책을 쏟아냈다.

"너는 이것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느냐!"

그 말이 떨어지자, 내 앞의 모니터 화면이 한순간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옆자리 누군가는 급히 시선을 모니터로 내렸고, 누군가는 들고 있던 서류 끝만 만지작거렸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척했지만, 그 침묵이 더 크게 들렸다.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 날 선 말들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질책 그 자체가 아니었다.

밤을 새워 DB 설계도를 그리고,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코드를 짜왔던 시간.

그게 심부름 하나로 지워졌다.

개발 업무에서는 단 한 번도 구멍을 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업무와는 상관도 없는 일 하나로 사람들 앞에서 작아져야 한다는 사실이, 마지막 선을 건드렸다.


'나는 여기서 개발자인가. 아니면 언제든 쉽게 부려도 되는 사람인가.'

질책이 끝난 뒤에도 얼굴의 화끈거림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화가 난다기보다, 내 처지가 뼈에 박혔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퇴근하는 길, 캠퍼스 담벼락 근처 가로등 불빛 아래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흩어졌고, 귀 끝이 얼얼했다.

주머니 속 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소집해제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 봤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런 일은 반복될 게 분명했다.

병역특례 신분이 나를 이 회사에 붙들어 놓을 수는 있어도, 이렇게 쓰이는 건 달랐다.


그날 이후 며칠간, 아침마다 연구소 문을 밀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출입카드를 찍을 때마다 들어가야 할 이유와 떠나야 할 이유가 부딪혔다.

주말 밤, 나는 침대 위에서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다가 결론을 내렸다.


병역특례 인원에게는 '전직'이라는 최후의 권리가 있었다.

물론 내가 있던 지역 안에서 현역 TO를 받아줄 IT 회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마음은 이미 그 도시를 넘어 있었다.


상무님 차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던 날의 빌딩 숲과 그 회의실의 공기가 자꾸 떠올랐다.

그날 밤, 서울 쪽 회사를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직을 해야겠다. 여기가 아니면 서울로 가자.'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