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 사이, 첫 출근

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by 로그캐빈

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입영 연기 서류를 제출한 나는 병역특례 연구소의 막내 개발자가 되었다.

정식으로 출근한 새 직장은, 이전 회사와는 냄새부터 달랐다.

복도에는 자판기 옆 종이컵이 수북했고, 화이트보드에는 누군가 밤새 적은 약어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 약어들 중 절반을 나는 읽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단번에 나를 주눅 들게 한 건 펌웨어(Firmware) 팀이었다.

말 그대로 '그사세'였다.

서울대, 카이스트 출신들이 수두룩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병역특례 TO를 받기 위해 연고도 없는 지방 도시까지 내려와 자취를 하며 코드를 짜고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용어보다 약어가 더 많았다.

한 문장에 낯선 알파벳이 몇 번이나 튀어나왔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한 박자씩 늦게 따라가고 있었다.


한 번은 점심시간에 펌웨어 팀 선임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웹 쪽은 요즘 비동기 처리 어떻게 잡아요?"

나는 젓가락을 멈췄다.

단어는 알겠는데, 그들이 기대하는 깊이의 대답은 내 안에 없었다.

얼버무린 한마디가 식판 위로 떨어졌고, 아무도 따져 묻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더 아팠다.

식판 위의 국물이 식어가고 있었다.

숟가락을 다시 들었지만, 밥알이 목을 넘어가지 않았다.


그날 밤 검색창에 '비동기'를 치고, 새벽까지 자료와 예제를 뒤적였다.

하나를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셋씩 튀어나왔다.

학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그들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해 나가는 사고의 궤적은 확실히 달랐다.

'아, 세상에는 저런 괴물들이 있구나.'

나는 내 방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했다.



'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에서, 병역특례 인원들은 각자의 3년을 저당 잡히듯 보내고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웹 개발팀은, 나를 포함해 총 세 명이었다.

한 명은 곧 소집해제를 앞두고 인수인계를 준비하던 최고참 선임.

다른 한 명은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준, DIP 연수에서 만났던 그 동갑내기 친구였다.

"어서 온나. 여가 니가 인자 앞으로 푹 썩어야 할… 아니, 커리어를 쌓아야 할 전장이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제 진짜로 시작이다. 같이 살아남자."

친구의 농담 섞인 환영 인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를 추천해 준 친구와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작은 안도감을 줬다.

실무진의 추천이 채용에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연구소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다들 최저임금 박봉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기술력이 곧 '군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몇 년 차고?"

그 질문은 인사처럼 툭 던져졌고, 대답은 계급장처럼 자연스럽게 통했다.

그 서열 안에서 나는 가장 아래였다.


주 6일 밤샘이 예사였던 이전과 달리, 이곳의 업무 강도는 '널널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내 주 업무는 쇼핑몰 주문 시스템과 고객 처리를 담당하는 백오피스(Back-office) 개발이었다.

인수인계를 위해 소스 코드와 DB 구조를 마주한 순간, 한숨이 나왔다.

함수는 길고, 주석은 중간에서 끊겼고, 같은 상태값은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떠돌았다.

앞으로 최소 3년은 내가 관리해야 할 시스템이 이런 모양이라는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맡은 자리만큼은, 내가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로 바꾸고 싶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DB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서 싹 갈아엎겠습니다."

기존 담당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들에게 시스템이란 '어떻게든 3년만 돌아만 가면 그만'인 것이었다.

"지금도 잘 돌아가는데 왜 굳이 일을 만드느냐."
"사서 고생하지 마라."

핀잔이 돌아왔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정규 업무 외 시간에 끝내겠다고 설득했다.

옆자리의 친구만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

"미친놈… 근데 니가 하면 될 거 같기도 하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날부터 나의 본격적인 리팩토링(Refactoring)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겉을 크게 건드리지 않고, 안의 질서부터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다.

하얀 전지 위에 데이터의 관계도를 그렸다.

흩어진 상태값과 중복된 칼럼을 하나씩 걷어냈다.


완성된 ERD를 대형 프린터로 출력해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프린터가 종이를 길게 뱉어내자, 잉크의 묵직한 기운이 방 안에 번졌다.

선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이 있었다.


밤낮없이 모니터에 매달려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내 모습은 연구소 안에서 금세 눈에 띄었다.

소집해제 날짜만 손꼽으며 적당히 시간을 때우던 웹개발팀 분위기 속에서, 열정을 쏟는 막내의 모습은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특히 영업을 담당하시던 상무님 한 분이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셨다.

상무님은 어느 날 내 책상 앞에 붙은 복잡한 설계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셨다.

한참 동안 종이 위의 선들을 들여다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돌아가셨다.

그날 이후 상무님은 가끔 내 자리 앞을 지나며 설계도 쪽으로 시선을 던지셨다.

서울 출장이 있을 때면 나를 옆자리에 태우고 가셨다.


퇴근 후, 조용한 사무실에서 책상 앞 설계도를 올려다보는 시간이 좋았다.

선들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누군가의 주문이, 결제가, 반품이 흘러갈 것이었다.

펌웨어 팀이 회로도 앞에 붙어 있을 때, 나는 주문과 결제 흐름이 얽힌 설계도를 다시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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