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 회의실 밖의 전쟁
소주잔이 세 번째 돌았다.
불판 위 기름이 번들거렸고, 잔 밑바닥 물기가 테이블 위에 둥근 자국을 남겼다.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현장 근처 고깃집.
나는 끝자리에 앉아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트리뷰를 하루 만에 끝낸 뒤,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PM 부장님의 칭찬 이후로 사무실의 공기는 미묘하게 비틀려 있었다.
"수고했다", "역시 머리 좋다"는 말들이 오갔다.
그런데 회의 시간에는 내 의견에 은근한 태클이 걸렸고, 점심 대화에서는 소외되곤 했다.
그 일주일의 응어리가 터진 건 바로 이 자리였다.
평소 과묵하던 한 대리님이 술잔을 거듭 비우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쪽을 돌아봤다.
불판의 기름이 튀었다.
누군가의 소매에 기름방울이 떨어졌지만, 아무도 닦지 않았다.
"야, 너 그렇게 잘났냐? 너 혼자 그렇게 잘나면 우리는 뭐가 되는데?"
불판의 지글거림이 갑자기 귀를 가득 채웠다.
젓가락을 들고 있던 내 손이 멈췄다.
주변의 대리님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해졌다.
불판 위에서 고기만 지글거렸다.
그는 소주잔을 탁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너 오기 전부터 우리가 그거 안 된다고,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고 부장님한테 다 밑밥 깔아놨던 거야."
"근데 네가 오자마자 하루 만에 뚝딱 해치워버리면, 그동안 못 한다고 했던 우리는 뭐가 되냐고."
"너만 에이스 되고 우리는 무능한 선배들 된 거 아니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냥 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내 열정이 누군가에게는 공들여 쌓아 온 방어막을 허무는 공격이었다.
불판 위의 고기가 타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아무도 뒤집지 않았다.
내가 집게를 들어 타버린 고기를 접시로 옮겼다.
자리가 파하고 가게 문을 나섰을 때, 밤바람이 달아오른 얼굴을 때렸다.
선배들은 삼삼오오 택시를 잡으러 갔고,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불판의 지글거림이 따라왔다.
귀에 기름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구두 바닥이 인도의 작은 돌멩이를 긁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중에 다른 대리님이 조용히 귀띔해 주었다.
그 일은 새로 들어온 나에게 '군기'를 잡기 위한 일종의 텃세였다고 했다.
'이건 어려운 거니까 천천히 해.' 하고 시간을 벌어두려던 흐름을, 내가 눈치 없이 깨버린 셈이었다.
오해가 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반지하 방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었다.
보일러가 낮게 웅웅거렸고, 벽 너머로 윗집의 발소리가 둔탁하게 내려왔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몇 년을 버티면서 나름의 요령과 긍지를 쌓아 올린 사람이었다면.
어느 날 모르는 막내가 하룻밤 만에 내가 미뤄둔 숙제를 해치워버렸다면.
나도 웃을 수 있었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생각은 주말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PM 부장님이 일정이 밀린 다른 모듈을 거론하며 날을 세웠고, 그 화살이 자연스럽게 우리 파트 쪽으로 향했다.
"트리뷰처럼 빨리 처리할 수 있으면서, 나머지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이에요?"
순간 다들 말을 멈췄다.
선배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쪽으로 쏠렸다.
내가 잘한 것이 선배들을 때리는 채찍이 되어 돌아온 순간이었다.
내 등 뒤로 시선의 무게가 내려앉았다.
어깨가 귀 쪽으로 올라가며 몸이 저절로 웅크러들었다.
그때, 모니터를 보고 있던 차장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부장님, 그건 단순 화면이랑 성격이 다릅니다. 기존 운영 데이터 정합성 검증까지 들어가는 모듈이라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짧았지만 정확했다.
부장님의 펜 끝이 멈췄다.
며칠 뒤, 디자인 팀의 누나 한 명이 모니터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슬쩍 들여다보니, 마크업 버그 하나가 레이아웃 전체를 깨트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어긋난 테이블이 대각선으로 찢어져 있었고, 누나의 손가락은 마우스 위에서 멈춰 있었다.
태그 하나를 찾아 고쳐주자, 화면이 제자리를 찾았다.
모니터 위로 정렬된 레이아웃이 반듯하게 돌아오는 걸 보며,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이런 것도 돼? 어디서 이런 걸 다 배운 거야?"
그 말을 들은 뒤부터였다.
까다로운 스타일 가이드를 스크립트로 구현해 주고, 크로스브라우징 이슈를 잡아주자, "똑똑한 막내가 들어와서 일하기 편해졌다"는 말이 디자인 팀 사이에 돌기 시작했다.
내 기술이 동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팀 전체의 시간을 아껴준다는 게 드러나자, 차가웠던 시선도 서서히 풀렸다.
점심시간이었다.
회식 때 나를 쏘아붙였던 그 대리님이 내 자리 앞을 지나갔다.
발걸음이 잠깐 느려지더니, 책상 위에 종이컵 하나를 슬쩍 올려놓고 갔다.
말은 없었다.
종이컵 뚜껑 틈으로 김이 아주 얇게 새어 나왔다.
커피 향이 키보드 위로 번졌다.
나는 종이컵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