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병역특례 요원에게도 피할 수 없는 국방의 의무가 있었다.
바로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이었다.
구로의 빌딩 숲과 반지하 방을 잠시 뒤로하고, 나는 낯선 연병장의 흙먼지 속으로 던져졌다.
구보를 할 때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고, 군화 바닥이 모래를 긁는 소리가 귓가에 남았다.
손마디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두드렸던 키보드 대신 차가운 소총을 손에 쥐었다.
내가 배정받은 내무반은 산업기능요원들로만 구성된 분대였다.
전국 각지의 공장과 연구소에서 온 이들이 모였는데, IT 업계 종사자는 나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어색한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얼굴이 하얀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 보고도 같은 부류임을 알아챘다.
"사회에서 뭐 하셨어요?"
"구로에서 SI 개발합니다. 그쪽은요?"
"전 강남 쪽 게임회사 다녀요."
마침 동갑이었던 그 친구와 나는 금세 가까워졌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내무반의 불이 꺼진 뒤, 낮은 속삭임으로 나누는 대화는 4주간의 유일한 낙이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내가 모르던 세계가 선명해졌다.
그 친구가 들려주는 게임회사는 내가 알던 IT 업계와 결이 달랐다.
"우리는 병역특례라고 해서 월급이 적거나 하지 않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정직원들이랑 똑같이 받고, 성과급도 똑같이 나와."
어둠 속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불 안으로 몸을 웅크렸다.
반지하에서 즉석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부모님께 돈을 보내고 나면 주머니가 텅 비던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남의 일처럼 멀게 들렸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복지 마일리지 제도도 있었고, 사내 대출 같은 제도를 잘 활용하면 사회 초년생도 숨통이 트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경력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속이 쓰려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밤마다 딱딱한 관물대 옆에 등을 기대고 뒤통수가 아프도록 생각했다.
'우리는 같은 나이에 똑같은 코드를 짜고 있는데, 왜 삶의 질은 이렇게 다른 걸까?'
훈련소의 캄캄한 밤.
불침번을 서는데, 자꾸 그 친구 말이 맴돌았다.
"나도 소집해제 하면 너희 회사 같은 게임회사나 포털 업계로 가고 싶어."
"거기서 내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어."
나의 말에 친구는 웃으며 답했다.
"너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올 수 있어. 나중에 밖에서 보자."
그렇게 4주가 흘렀다.
소집해제 날, 구로행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
그 친구가 말했던 강남의 불빛이 자꾸 눈꺼풀 안쪽에서 깜빡였다.
2007년 겨울.
내 가슴속은 '소집해제'라는 네 글자가 주는 해방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이력서를 다시 꺼냈다.
목표는 명확했다.
훈련소에서 만난 친구가 들려주었던 그곳.
개발자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더 큰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게임업계와 포털.
그러나 이력서를 채워 넣을수록 현실의 벽은 다시 또렷해졌다.
당시 대한민국 IT 대기업들의 채용 공고는 여전히 '대졸(4년제) 이상'이라는 높은 문턱을 고수하고 있었다.
전문대학 학력의 내 이력서가 그들의 필터링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학력 무관' 조건이 붙은 포털 한 곳과 게임회사 한 곳,
그리고 복지가 좋기로 이름난 다른 인터넷 여행사 한 곳에 내 인생을 건 지원서를 던졌다.
가장 먼저 연락이 온 건 포털이었다.
면접까지 올라갔지만, 돌이켜보면 애초에 핏이 완벽하진 않았다.
그곳이 찾던 건 프런트 개발 포지션에 가까웠고, 당시의 나는 백엔드와 데이터베이스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아쉬웠지만, 멈춰 서 있을 시간도 없었다.
얼마 뒤, 여행사에서 최종 합격 소식이 왔다.
그쪽에서는 특별히 본사 승인을 받아 내가 적어낸 희망 연봉을 맞춰주겠다고 했다.
출근일자까지 확정해 준다는 말에, 현실이 한 발 앞서 나를 잡아당겼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구로에서 받던 급여의 두 배.
부모님께 돈을 보내고도 처음으로 내 통장에 뭔가 남을 수 있는 숫자였다.
지금 당장 반지하의 겨울은 끝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훈련소의 어둠과 그 친구가 들려주던 강남의 불빛이 겹쳤다.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며칠을 뒤척였다.
답변 기한이 하루씩 줄어들 때마다 초조해졌다.
게임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선택지가 생기자,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나는 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성장하고 싶은가.'
게임회사의 전형은 SI 업체들과는 결이 달랐다.
서류 통과 뒤 내게 주어진 건 '키보드 자동완성 기능 구현'이라는 기술 과제였다.
지금이야 흔한 기능이지만, 그때의 나에겐 제법 새로운 과제였다.
단순한 CRUD를 넘어, 유저가 입력하는 찰나의 순간에 최적화된 데이터를 '미리' 뿌려줘야 하는 로직.
응답이 늦으면 바로 체감이 나는 기능이라, 나는 쿼리 호출 횟수를 줄이는 데 먼저 매달렸다.
한 글자를 입력할 때마다 DB를 때리는 건 말이 안 됐다.
입력값의 앞 두 글자로 후보군을 메모리에 올려놓고, 세 번째 글자부터는 클라이언트 단에서 필터링하는 구조를 짰다.
쿼리가 줄자 응답이 빨라졌고, 글자가 따라붙듯 자연스러워졌다.
모니터 앞에서 나는 주먹을 쥐었다.
독학했던 자바스크립트 경험과 구로에서 다진 DB 최적화 경험을 총동원한 결과였다.
"이게 바로 살아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재미구나."
과제를 제출하고 얼마 뒤, 나는 강남의 회사 건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주머니 속에는 여전히 구겨진 지하철 노선도가 들어 있었고, 나는 그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숨을 고쳤다.
면접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팀 면접이었다.
이 사람이 우리 팀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는지, '사람'을 보는 자리.
내가 제출한 과제에 대한 질문이 먼저 이어졌고, 이내 질문의 방향이 기술 바깥으로 넓어졌다.
"팀 안에서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하세요?"
"본인의 강점과 약점을 말해보세요."
나는 가식 대신, 내가 살아온 궤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구로 반지하에서 닦은 근성.
대구에서 배운 생존력.
이어진 두 번째 면접은 말 그대로 직군 면접이었다.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코딩 테스트를 치르고, 내가 제출한 과제의 로직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다.
처음 몇 개의 질문은 의례적이었다.
면접관은 서류를 내려다보며 물었고,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체크리스트를 읽듯 건조한 리듬이었다.
"ASP 컴포넌트 중에 주로 쓰던 거 있으면 말해보세요."
나는 막힘 없이 대답했다.
"파라미터 변조 공격은?"
"SQL 인젝션 방어는?"
질문이 점점 깊은 곳을 찔렀다.
나는 구로에서 실제로 겪었던 사례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답했다.
어느순간 면접관의 시선이 달라졌다.
서류에서 떨어져 처음으로 내 얼굴을 똑바로 봤다.
다음 질문의 톤이 바뀌었다.
확인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질문의 수위가 올라갔다.
쿼리 설계, 인덱스, 정규화, 보안, 하나하나가 실전의 깊은 곳을 찔렀다.
구로 시절, 새벽마다 수천 줄 프로시저를 뜯어고치던 기억이 올라왔다.
느린 쿼리를 뜯어고치고, 구멍을 메우던 밤들. 그게 그대로 입에서 나왔다.
"실제로 보안 이슈를 핸들링해 본 경험이 있어요?"
있었다.
있었고, 그 이야기를 했다.
대답이 끝나자, 면접관이 펜을 내려놓았다.
팔짱을 풀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것도 해봤어요?"
그 목소리의 톤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해봤고, 또 대답했다.
면접관의 눈이 커졌다.
옆에 앉은 다른 면접관과 눈을 마주쳤다.
둘이 짧게 눈을 마주친 뒤, 면접장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면접장을 나오며 나는 강남의 빌딩 숲을 올려다보았다.
주머니 속 구겨진 지하철 노선도를 꺼내 펼쳤다.
노선도 위의 역 이름들이 아까보다 가까워 보였다.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합격 통보를 받던 날, 반지하 방의 낡은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한마디.
"최종 합격입니다."
벽지 사이로 스며든 눅눅한 냄새와 창틀 밑 곰팡이 자국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낡은 책상 위에 올려둔 컵, 벽에 기대 둔 정장 가방, 낮게 가라앉은 천장까지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입사한 뒤, 나는 전형 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1차 팀 면접에서는 면접관들 사이에 약간의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게임 회사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초대졸 출신의 SI 경력자가 잘 녹아들 수 있을지.
소위 말하는 '컬처 핏'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그 의구심을 잠재운 건 이어진 직군 면접 결과였다.
"직군 면접 만점입니다. 혹시 이 친구 안 뽑으면 우리 팀에서 데려갈게요."
나를 면접했던 다른 면접관이 한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12월의 공기가 한 번에 밀려 들어왔다.
골목을 지나가는 발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여전히 사람들의 발바닥이 먼저 보이는 낮은 시야였지만, 그날은 골목의 경사까지 다르게 느껴졌다.
-2부. <거인의 어깨 아래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