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높을수록 얇은 공기
새 사옥 로비는 이상할 만큼 하얗고 조용했다.
카드키를 찍는 소리만 '딸깍' 하고 울렸다.
판교로 사옥을 이사하는 날, 아침 풍경이 강남에서 신도시로 바뀌는 걸 보며 나는 괜히 시계를 한 번 더 만졌다.
로비는 전보다 차갑고 깨끗했고, 새 건물의 페인트 냄새 사이로 커피 향이 희미하게 났다.
유리벽이 번쩍이는 사옥 사이로 운동화 차림의 개발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맡은 게임은 대규모 신규 업데이트와 주말 이벤트를 동시에 앞두고 있었다.
동시접속자 피크가 예정된 날,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지표 창 앞에 앉았다.
신입 시절 트래픽 폭주는 재앙이었지만, 그날의 폭주는 잘 준비된 축제였다.
누군가가 "어? 캐시 서버 응답 튄다"고 중얼거리자, 내 미간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몇 초 뒤 그래프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고, 어깨를 죄던 힘도 그제야 풀렸다.
그동안 쌓아 올린 운영 체계는 수십만 명의 유저가 한꺼번에 밀어 넣는 파도를 흔들림 없이 받아냈다.
동접 그래프는 한 번도 꺾이지 않은 채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정점을 향해 올라갔다.
역대 최대 동시접속자 기록을 갈아치우는 순간에도 플레이는 안정적이었다.
서버 지표는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메신저 창에는 축하 메시지가 줄을 이었고, 누군가 올린 '역대 최고' 스크린샷 위로 환호가 이어졌다.
전날 밤 대시보드에 찍혀 있던 숫자는 보도자료의 문장을 타고 세상 밖으로 흘러나갔다.
커리어가 안정권에 들어서고, 오래 미뤄두었던 내집마련을 다시 꺼냈다.
반지하와 전셋집을 옮겨 다닌 뒤라,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있다는 건 그냥 집 한 채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동산 사무실 창으로 판교의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계약서 위에서 숨이 잠깐 멎었다.
판교신도시의 아파트와 역 근처의 작은 오피스텔 사이에서 나는 오래 망설였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아파트에 손이 닿을 수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가능성보다 리스크부터 보였다.
아파트를 잡으려면 대출을 더 끌어와야 했고, 그 순간부터 매달의 원리금은 꿈이 아니라 숨통이 될 것 같았다.
변동성이 큰 업계에서 내일 팀이 사라질 수도 있는 사람에게 레버리지는 무기가 아니라 올가미였다.
사람이 일하러 몰리는 동네의 방은 쉽게 비지 않는다는 걸, 구로 반지하 시절부터 몸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 대신 작은 오피스텔을 골랐다.
중개사가 계약서를 내 앞으로 밀어놓자 사무실 안이 갑자기 더 조용해진 것 같았다.
창밖으로는 판교의 늦은 빛이 유리창에 걸려 있었다.
막 켜지기 시작한 불빛들이 내가 놓아버린 선택지처럼 멀어 보였다.
붉은 인주 냄새가 이상하리만치 또렷했다.
도장을 찍는 순간 숨이 한번 풀렸다.
아쉬움은 남았다.
몇 년 뒤, 늦은 밤 부동산 앱을 습관처럼 켜고 아파트 실거래가 그래프를 확대해 보던 날이 있었다.
그래프는 위로만 올라가 있었다.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한참을 보고만 있다가 앱을 껐다.
그래도 그 오피스텔은 지금까지 꼬박꼬박 월세를 보내오며, 내 삶의 다른 지점을 조용히 지탱해주고 있다.
그해 연말에는 그녀와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항공권 날짜를 고르는 순간 시선이 달력 위를 자꾸 맴돌았다.
평소엔 패치 노트와 배포 일정을 맞추던 손이었는데, 휴가를 확정하는 일 앞에서는 자꾸만 망설여졌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돌아갈까.'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우리는 함께 생애 첫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프랑스, 파리.
크리스마스 연휴를 끼고 연말연시까지 넉넉히 비워 둔 일정이었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조심해야 했던 우리가, 그 비행기 안에서는 조금 느슨해졌다.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들뜬 만큼 말이 적었다.
낯선 도시의 불빛 아래서도, 가끔은 어린 시절의 가난이 불쑥 떠올랐다.
나는 걷다가도 자꾸만 발끝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녀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사람처럼, 말없이 내 곁의 속도를 맞춰 걸었다.
샹젤리제의 크리스마스 조명이 거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에펠탑은 밤하늘 안에서 혼자 금빛으로 타고 있었다.
고개를 한껏 들어야 겨우 꼭대기가 보였다.
그녀의 손이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 3부. <높을수록 얇은 공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