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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Apr 19. 2016

북촌일기- 봄날의 창덕궁 오후 2시

소풍- 마음에 부는 작은 바람

북촌일기  #1

서울에서 가장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북촌을 살아가는 이야기.






오늘, 봄날의 창덕궁은 축복이다.

서울은 오랜만에 황사와 미세먼지가 개어 두 콧구멍으로 숨 쉰다는 것이 얼마나 사소하면서도 위대한 일인지 가르치고 있다.


점심을 먹으러 회사에서 혜화동 서울대병원까지 갔다가, 올 때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창덕궁 옆 작은 뒤뜰에 자리를 잡았다. 자줏빛 철쭉이 만개한 그 사이로 참새들이 오가고 찌르레기과의 새들이 울고 있다.


"하루 30분 이상 광합성을 하세요.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머리털로 태양에너지를 받습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던 내게 늙은 한의사 선생님은 태양에너지 충전을 권하셨다. 나는 시방 보약 한잔을 드링킹 중이다.



띄엄띄엄 떨어진 벤치들 중, 이곳에는 내가 앉아 있고, 저곳에는 아재 한분이 앉아 있다. 등산복 차림의 이마에 고랑이 깊게 팬 아재는, 검은색 가방에서 장수 막걸리와 족발을 꺼내 혼자 소풍을 즐기고 있다.  30분 동안 한 번도 웃지 않고 막걸리 잔을 들었다,족발 뼈의 살을 뜯었다,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를반복한다.


나는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아재를 훔쳐보며, 제 아무리 장수막걸리라도 혼자 쓸쓸히 먹으면 장수를 못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막걸리는 누군가 따라줘야 제격이고, 족발은 '이 부분이 쫄깃하니 함 잡솨보라'고 건네주는 사람이 있어야 맛난 음식이다.



사람의 인생도 계절과 같겠지. 새가 찾아오고 꽃이 피는 빛나는 계절을 지나 잎이 떨어지고 가지를 앙상히 드러낸 채, 홀로 있는, 겨울이 온다. 나도 인생의 겨울이 되면 막걸리를 사서 봄 친구를 찾아 나서야 할지도.


창덕궁에는 단체 소풍을 왔는지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들 목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리고, 정장 차림의 커플이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웃으면서 지나간다. 혼자 있든 같이 있든 소풍 가기 좋은 날, 오후 2시



마음에 부는 작은 바람, 소풍

혼자 앉아서 보약같은 광합성을 즐기기 좋은 나무 벤치. 나무 아래 가만히 앉아 있으면 숨가뿐 도시의 삶이 잠시 멈춘다.


창덕궁 앞에는 민들레가 한창이다. 어디로 날아갈까, 민들레 홀씨도 불안할까? 양지 바른 곳에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는 홀씨도, 알고보면 구직중이다.
일렬종대로 무섭게 진격하는 자줏빛 철쭉들. 회색 도시에서 가장 너답다.


글 | 김도연

사진 | 김도연


지구 옆에 환한 달이 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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