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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연 May 28. 2021

[05.25] 일개미

헬스를 시작하고 나서 거울 속의 나를 보니 허리가 잘록해지고 있다. 3개월차로 접어드니 뭐든 입으면 태가 난다. 이제 양치를 하다가도 치약 거품이 배에 안 떨어진다. 발가락이 잘 보인다. 물컹하게 잡히는 뱃살을 움켜잡고 나는 왜 이리 나태한가, 뭘 주워먹고 이리 됐나 한탄하던 내가 아니란 말이다. 배달 음식을 먹고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는 나를 10년 전에 상상이나 했을까. 그 당시 난 배부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죄스럽고, 조금 오버해서 치욕스러웠다. 어찌 인간이 돼지도 아닌데 탐식하고 또 탐식하며 일평생을 낭비하는지 한심했다. 무엇을 먹고 싶다, 뭘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고 하루에 김밥 한줄로도 잘 버틸 수 있었다. 나는 평생 살이 안찔지 알았다. 결혼해서 못 알아보게 변신한 나의 씨스터들이 너에게도 비만 유전자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이게 곧 너의 미래 모습이라고 했지만 그때는 믿지 않았다. 피는 물보다 무섭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속담이겠지.      


이성의 끈을 놓고 감정이 가는대로 살다보니 나는 한 마리 돼지가 돼 있었다. 삶은 지루하고 느리게 흐른다. 하루는 지루한데 1년은 금방가고, 핸드폰 인증을 할라치면 태어난 연도를 찾아 한참을 앞으로 손가락을 굴려야 할 정도로 나이를 먹어버렸다. 재미없는 일상 속에서 입안에 단 것을 넣는 단 몇분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고, 참자 참자 했지만 목구멍은 진공 상태가 되어 주위의 음식들을 빨아 당겼다. 허약뚱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이제야 허리가 보인다. 머리-가슴-배의 구분이 분명해졌네. 저 멀리 큰 과자 부스러기가 보이면 입으로 넣지 말고, 들어올려 집으로 옮겨야지. 으랏차차! 50배까지 들어올릴 수 있으니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나. 저 옆의 콩고물도 얼른 옮겨야지. 밤새도록 일해야지.      


돼지에서 개미가 되는 순간. 일개미의 재탄생.      




*키워드 글쓰기는 매일 아침 친구가 던져주는 키워드에 맞춰 한시간 이내로 짧은 글을 쓰는 겁니다.      

떠오르는 단상을 빠르게 캐치해서 쓰는 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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