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돈의 성질로 읽는 사람들

현금, 금, 비트코인 그리고 사람의 결


돈이라는 것은 참 묘한 사물이다. 돈이 눈앞에 보이면 누구나가(아마 거의 대부분) 만면에 미소를 짓는 물건이지만, 정작 사람들은 돈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조용해지고, 왠지 서로 얼굴을 살짝 피하는 순간까지 생긴다. 마치 갑자기 방 안의 공기가 바뀐 것처럼, 아주 미세한 침묵이 흘러가고, 서로의 호흡이 한 박자 늦춰진다. 사랑 얘기나 가족 얘기, 심지어 상처 얘기는 비교적 쉽게 꺼내지만, “요즘 돈 여유 좀 있어? “ ”별일 없이 잘 살고 있지? 괜찮지?”라는 질문만큼은 사람을 순식간에 인간적인 긴장감 속으로 밀어 넣는다. 돈이란 사물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면서도,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어쩌면 이것이 돈이 가진 가장 묘한 힘일지도 모른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가장 어렵고 조심스러운 소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돈은 단순한 회계적 기능이나 경제적 단위를 넘어선다. 사람의 희망을 자극하기도 하고,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오랜 결핍의 기억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래서 돈을 보면 사람이 보이고, 사람을 보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 돈의 성질은 마치 인간의 성격처럼 각양각색이다. 어떤 돈은 가볍고 움직임이 빠르며, 어떤 돈은 묵직하고 단단하고, 어떤 돈은 예측 없이 출렁거리며 사람의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돈의 본성은 인간의 성격과 너무나 닮았다. 사람의 내면을 하나씩 분해해 보면, 어떤 이는 현금처럼 즉각적이고 솔직하며, 어떤 이는 금처럼 묵직하고 조심스럽고, 어떤 이는 비트코인처럼 순간의 욕망, 신념, 불안이 뒤엉킨 채 튀듯이 움직인다.


돈은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의지해온 사물이며, 그 흐름을 가장 집요하게 분석해 온 대상이다. 역사 속에서 돈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구조물이었다. 이 사물은 인간이 만든 만큼 인간을 닮았고,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만큼 인간의 결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돈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솔직한 화폐인 현금. 둘째,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상징해 온 금(金). 셋째, 21세기 인간의 욕망과 불안, 기술적 신념까지 뒤섞인 신종 화폐인 비트코인이다. 이 세 가지는 단순히 경제적 형태만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격을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관점이 되어준다.


현금은 즉각적이고 직선적이다. 무엇이든 바로 주고받을 수 있고, 감정처럼 휘발되기도 쉽다. 현금 같은 사람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오늘 기분이 좋으면 바로 맛이 좋은 커피를 사주고, 화가 나면 그 자리에서 표정이 변하며, 슬프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만들 때도 솔직함으로 다가가지만, 상처도 빨리 받고 감정의 기복이 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따뜻하다. 현금형 인간은 계산기보다 사람의 체온을 더 신뢰하고 살아가는 부류다.


반대로 금은 단단하고 묵직하다. 쉽게 변하지 않고,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금 같은 사람들은 마음을 내어주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마음을 주면 오래 지속된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있고, 허세를 부리지 않으며,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내구력을 지녔다. 그러나 그런 단단함의 이면에는 조심스러움, 그리고 때때로 외로움이 숨어 있다. 금처럼 무게감 있는 사람은 주변에서 신뢰를 받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무게 때문에 타인의 가벼움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트코인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변동성이 크고 예측 불가능하며, 어느 날엔 영웅의 자리에 올라가고, 어느 날엔 바닥까지 추락한다. 비트코인 같은 사람들은 신념과 불안이 공존한다. 누구보다 미래를 빠르게 읽지만, 동시에 가장 큰 위험을 향해 몸을 던지기도 한다. 이들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시에, 인생의 큰 도약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신중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안정적인 사람들에게는 위험해 보이지만, 삶을 바꿔놓는 어떤 특별한 한순간을 만드는 것도 결국 이런 사람들이다.


돈의 흐름을 경제학적으로 보면, 거래, 저장, 소비, 투자라는 네 가지의 순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흐름은 인간관계와 마음의 구조와 거의 닮았다. 사람도 마음을 주고받고, 어떤 감정은 저장해 두고, 어떤 감정은 투자하고, 어떤 감정은 소모한다. 그리고 다시 축적한다. 돈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식과 사람이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그래서 돈을 보면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을 보면 돈의 움직임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돈을 ‘가치의 저장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성격 역시 시간 속에서 저장되고, 변화하며, 소모되고, 다시 만들어진다. 현금형 인간은 감정을 즉시 소모하고 다시 채운다. 금(골드)형 인간은 마음속 깊은 서랍에 감정을 오래 보관한다. 비트코인형 인간은 감정의 등락이 크지만, 그만큼 자신을 증식시키는 에너지가 강하다. 돈의 종류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인간의 성격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사람의 속도, 사람의 욕망, 사람의 상처, 사람의 관계를 통해 그 사람들의 결을 드러내는 데에 돈만큼 정직한 사물은 없다. 어떤 돈을 가까이하느냐보다, 어떤 돈의 성질을 닮아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곤 한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고, 의외로 돈과 닮아 있다. 그 단순함이 때로는 가슴을 아프게 하고, 때로는 웃음이 나게 하고, 때로는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기도 한다.




1장. 현금 같은 사람들 = 즉흥성, 온도, 그리고 마음의 속도


현금이라는 사물은 참 솔직하다. 카드처럼 결제 승인 과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비트코인처럼 가격 그래프를 확인해야 할 필요도 없다. 내 손에 쥐어 있으면 있는 것이고, 내 손을 떠나면 없는 것이다. 그 단순함이 때로는 허술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미련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인간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는 마음이 현금처럼 직선적이고, 누구는 마음이 금처럼 무겁고, 누구는 마음이 코인처럼 요동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온도를 가진 부류는 언제나 “현금 같은 사람”이다. 현금은 감추지 못한다. 지갑을 열면 그 사람의 생활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구겨져 들어 있는 만 원짜리 몇 장, 급하게 접어 넣어진 봉투 속의 현금, 어떤 것은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한 5천 원짜리일 수도 있다. 이런 흔적들은 사람의 하루와 닮아 있다. 감정도 늘 이런 식으로 펼쳐져 있다. 당황한 듯 접혀 있고, 복잡한 일들에 눌려 구겨지고, 어떤 감정은 오래전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때에 다시 발견되기도 한다. 현금 같은 사람들은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좋으면 바로 드러나고, 싫으면 표정이 먼저 움직이며, 어떤 날은 겉옷을 챙기기도 전에 속마음을 먼저 꺼내놓는다. 그 솔직함이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왜 저렇게 감정적이지?”


라는 투덜거림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들의 세계에는 계산된 움직임이 적고, 머릿속으로 셈을 하느라 마음이 지쳐버리는 일이 없다. 마치 손에 현금이 들어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감정이라는 사물에도 “지금 여기”를 우선순위로 둔다. 물론 현금형 인간들은 감정의 순환 속도가 빠르다. 단단하게 보관하는 타입이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바로 표현하고, 토라지면 그 자리에서 알아챌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오래 품지 못하고 바로 터뜨리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감정은 현금처럼 잘 흐르고 잘 닳고, 또 금방 새로운 마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 둔다. 누가 보면 감정 낭비가 심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본 현금형 사람들의 진짜 힘은 감정이 묵혀서 썩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언가 오래 품기에는 너무 온도가 뜨거워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지 못하면 스스로가 더 뜨거워져 버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도 유독 따뜻하다. 현금은 차갑지 않다. 손에 쥐면 체온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게 건넬 때는 그 온도를 함께 전한다.


“내가 너 좋아한다”


는 말을 마음속 서랍에 넣지 않고, 지갑 맨 앞칸에 동그랗게 접어서 넣는 것, 그것이 현금형 인간의 방식이다. 이 방식이 때로는 너무 가벼워 보인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체온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따뜻함은 계산이 아니라 즉흥에서 온다. 현금형 인간은 그 즉흥의 무게를 알고, 그 즉흥이 만드는 기적도 안다. 현금 같은 사람들은 또 하나의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이해받지 못할 때 더 빨리 지친다”는 점이다. 현금은 오래 들고 있으라고 만들어진 사물이 아니다. 지갑 속에서 오래 갇혀 있으면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의 리듬과 동떨어져 버린다. 현금형 인간도 그렇다. 자신의 마음이 한 번 막히면 그 사람은 갑자기 말이 어두워지고, 평소 밝던 성격이 사라지고, 감정은 금방 소진되지만 채워지지 않는 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니, 평소엔 그렇게 활발하더니 왜 이렇게 조용해졌지?”


하지만 정작 속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금만… 그냥 조금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현금형 인간의 슬픔은 대부분 그 솔직함이 오해받을 때 생긴다. 이들은 상대를 속이지 못하고, 거짓 웃음을 깊게 오래 가져갈 능력도 없다. 그래서 주변에서 “상처받기 쉬운 사람”으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정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까? 단지 감정의 보관 방식이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은 감정을 금처럼 오래, 단단하게 보관하고, 어떤 사람은 감정을 즉시 흘려보내며 새로운 감정을 맞는다. 현금형 인간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순환이 빠른 사람이다. 그 빠른 순환이 때로는 자신을 지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누구보다 명확하고 투명한 결을 가진다. 현금처럼, 이 사람들은 믿음을 줄 때도 즉각적이다. “저 사람 괜찮다” 하면 바로 마음이 열리고, “저 사람 믿어도 되겠다” 하면 경계가 거의 사라진다. 현금 거래처럼 계약서가 필요 없는 신뢰 방식이다. 그래서 믿음이 한 번 깨지면 금처럼 조심스러워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의 회복력도 가지고 있다. 이 회복력은 단순한 낙천주의가 아니라, 살아내는 과정에서 얻어진 일종의 생활 지혜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계산적이든, 결국 인간관계는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도라는 것. 현금형 인간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아름다움은 “사는 순간을 사랑하는 능력”에 있다. 현금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 오늘 필요한 만큼의 가치일 뿐이다. 현금형 사람들은 미래를 모르는 만큼 오늘의 리듬에 충실하고, 지금 이 자리의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 그 즉시성은 때로는 불안을 만들기도 하지만, 짧은 순간을 빛나게 만드는 능력은 누구도 쉽게 따라 하지 못한다. 이들은 하루를 가득 채우는 감정을 미루지 않고, 숨기지 않고, 포장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살아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현금의 질감을 떠올린다. 구김이 있더라도, 일련번호가 낡아 있더라도 그 돈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사물이다. 사람도 그렇다. 구겨지고 상처받고 부족해 보여도 그 사람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진짜 가치가 있다. 현금형 인간의 매력은 그 구김을 숨기지 않는 데 있다. 겉으로 번듯한 사람들은 많지만, 구김과 체온을 함께 들고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람을 가볍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볍다는 건 무게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바람이 불면 흔들릴 수 있을 만큼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현금은 가장 빨리 움직이지만 그만큼 가장 넓은 곳을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현금형 인간도 그렇다. 빠르게 상처받지만 빠르게 사람을 품고, 빠르게 흔들리지만 빠르게 마음을 건넨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빨리 웃고, 세상에서 가장 빨리 울고, 세상에서 가장 빨리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가장 사람답다고 생각한다.




2장. 금(金) 같은 사람들 = 변하지 않는 가치와 조용한 무게


금이라는 사물은 참 묘한 존재다. 손바닥 위에 올려보면 작고 조용한데, 그 안에는 어떤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완강한 가치가 담겨 있다. 세계가 흔들려도 금은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혼란스러워도 금은 늘 일정한 위치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만의 무게로 버틴다. 세상에는 분명 금 같은 사람들이 있다. 목소리 크지 않고, 욕심도 요란하지 않고, 군중 속에서 눈에 띄지 않아 오해받기도 하지만, 한 번 곁에 두면 그 사람의 존재가 주는 안정감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사람들. 이런 부류는 유난히 조용하고 시끄러운 자기 PR이 없다. 그러다 보니 초면에는 존재감이 약하게 느껴지고, 가끔은


“너무 무난한 사람 아니야?”


라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러 일들을 겪고, 인생의 온도차를 경험하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금 같은 사람의 가치를 이해한다. 금은 산화되지 않는다. 쉽게 변색되지 않고, 쉽게 상처 나지 않는다. 금 같은 사람들도 그렇다. 자잘한 이야기나 단기적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유행에 편승해 감정의 결을 바꾸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려 성격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 고유의 성질, 고유의 균형, 고유의 침묵이 그 사람의 전체를 이루는 골조다. 금 같은 사람은 말을 할 때도 단단하게 한다. 해야 할 말은 반드시 하지만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말수가 적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는다.


“왜 저 사람은 감정 표현이 없지?”

“차갑고 무뚝뚝한가?”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금은 뜨겁지 않아서 귀한 것이 아니다. 변하지 않아서 귀한 것이다. 금 같은 사람도 그렇다. 그들의 감정이 조용한 것은 차갑기 때문이 아니라, 함부로 움직여 상처 주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등을 피하려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강해진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잘 모르다가도 세월이 흐르고, 자산의 형태가 바뀌고,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사람들은 금을 찾는다. 금 같은 사람들도 비슷하다. 젊을 때는 가만히 있어도 “무심하다,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단함이 주변 사람들의 버팀목이 된다.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들이 지쳐 쓰러질 때 그들 옆에 아무 말 없이, 변하지 않는 태도로 서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덕분에 누군가는 하루를 더 버티고, 어떤 관계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또 금은 가치가 변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단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단기적 요동은 있어도, 결국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자신의 가격대를 유지한다. 금 같은 사람들의 감정도 그렇다. 큰 기쁨에도 과하게 들뜨지 않고, 큰 슬픔에도 깊이 가라앉지 않는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노출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 같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신뢰의 무게’를 견디는 능력이다. 현금형 사람은 신뢰를 빠르게 주고 빠르게 거두기도 하고, 비트코인형 사람은 어느 날은 신뢰를 넘치게 주고, 어느 날은 “아무도 못 믿어!” 하고 갑자기 닫아버리지만, 금 같은 사람은 신뢰를 쉽게 주지 않는 대신 한 번 믿기 시작하면 웬만한 충격으로는 그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사람은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다.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서 있으려고 애쓴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지는 과정이 이들에게는 일종의 생활 습관이다. 감정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저 사람은 힘든 게 없나 봐”


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과 오래 싸우는 사람이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내부의 구조는 더 치열할 때가 많다. 금 같은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도 독특한 결을 가진다. 이들은 사람을 오래 두고 보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를 금새 좋아하지도 않고, 금방 실망하지도 않는다. 관계를 평가할 때 속도가 아니라 시간을 본다. 한 번 마음을 열면 멋대로 닫아버리는 법이 없고, 한 번 사랑하면 쉽게 식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사랑은 뜨겁지 않고 깊다. 화려하지 않고 꾸준하다. 즉흥적인 호의 대신, 조용한 지속성으로 상대를 품는다. 그래서 금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답답함을 겪지만 나중엔 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바람처럼 움직이는 현금형의 매력도 있고, 뜨겁게 폭등하는 코인형의 매력도 있지만, 오래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건 대부분 금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상대가 요동치면 자신이 더 가라앉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이런 조용한 수평선 같은 태도는 관계에서 큰 안정감을 준다. 금 같은 사람들은 또 하나 중요한 특성을 지닌다. 바로 “정해진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은 어떤 환경에서도 기본 가치를 잃지 않는다. 금 같은 사람도 그렇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친구들 사이에서든 역할을 쉽게 흔들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위치를 성실히 지켜낸다. 그 성실함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의지가 된다. 이들은 오래 볼수록 빛이 난다. 처음부터 빛나지 않아서 그렇지, 세월이 쌓일수록 그 빛은 더 깊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 같은 사람들의 진짜 매력은 “겉과 속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겉으로 보이는 단단함, 조용함, 일정함은 그들의 내면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보통 사람들은 겉모습과 속마음의 간극 때문에 스스로 지치곤 한다. 하지만 금 같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크기를 과장하지 않는다.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고, 지키고 싶은 만큼만 지킨다. 이 절제는 가식이 아니라 품격이다. 마지막으로, 금 같은 사람들의 관계 유지 방식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깊다. 화려한 이벤트를 하지 않아도, 번쩍이는 언변이 없어도, 꾸준히 옆에 있다. 잘 나갈 때도 있지 않고 쓸쓸할 때도 떠나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도 온도가 일정한 햇빛처럼, 늘 묵묵하게 비춘다. 그래서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사람은 결국 금 같은 사람 옆에서 오래 머문다”


라고 말하곤 한다. 뜨겁고 요란한 감정은 기억에 남고, 즉흥적인 호의는 기분을 좋게 만들지만, 삶을 지탱해 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요동치지 않는 그 단단한 존재감이다. 금의 본질이 변하지 않듯, 금 같은 사람의 본질도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그 가치를 위해 조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칭찬하지 않지만 정작 사람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 부류를 가장 필요로 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깨닫는다. 금은 화려하지 않아서 귀한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아서 귀하다는 것을. 사람도, 진짜 사람도 똑같다.




3장. 비트코인 같은 사람들 = 욕망, 불안, 신념의 롤러코스터


비트코인이라는 사물은 처음부터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트코인을 사물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실체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물로 인정하기로 한다. 비트코인은 금처럼 오래된 신뢰를 가진 것도 아니고, 현금처럼 손에 잡히는 즉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서, 세상의 규칙을 비웃으며,


“이제부터 나를 믿어볼래?”


하고 묘하게 설득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누군가는 부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다. 비트코인은 언제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은 가치인가, 아니면 욕망인가?”


이 사물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가격이 오르내리는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인간의 욕망 전체를 한 화면에 그래프로 보여주는 사물이다. 시장이 출렁일 때 인간의 마음은 더 크게 출렁이고, 그래프가 빨갛게 불타오를 때 사람들의 가슴도 달아오르며, 가격이 갑자기 곤두박질칠 때 사람들의 심장도 함께 내려앉는다. 뉴스는 그걸 ‘변동성’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걸 사람들의 ‘내면의 파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이 비트코인이라는 사물을 떠올릴 때 항상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흔들림이 곧 삶인 인간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감정의 온도가 몇 시간 만에 30도씩 급변하고, 확신과 불안이 하루에도 수십 번 교차하는 사람들. 불안정성 자체가 그들의 리듬인 사람들. 겉으로는 당당하고 강해 보이지만, 실은 내면이 누구보다 예민하고 불안정한 이들. 허세처럼 보이는 말 뒤에 ‘사실은 나도 모르겠어’가 숨겨져 있고, 과감한 선택 뒤에는 ‘이거 맞는 걸까…’라는 조용한 떨림이 있는 사람들. 비트코인 같은 사람들은 늘 극단 사이에서 살아간다. 어제는 “나 이런 사람이다!” 하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오늘은 조용히 방 안에 틀어박혀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어떤 날은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따뜻한데 다른 날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갑자기 차갑게 식어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

“도대체 왜 저러지?”

“어제랑 오늘이 왜 이렇게 다르지?”


하지만 그들 안에는 언제나 조용히 끓고 있는 욕망과 불안의 공존이 있다. 둘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어서 늘 그 사이에서 진동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늘 무언가를 갈망한다. 더 나은 삶, 더 뚜렷한 인정, 더 의미 있는 존재감, 혹은 누군가에게 확실히 사랑받고 싶은 욕망. 그 욕망이 사람을 전진시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 욕망 때문에 자신을 소모하기도 한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를 때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진짜 시작이야!” 이 부류의 사람들도 비슷하다. 자신의 감정이 한 번 치솟으면


“이 사람과의 관계는 이제 잘될 것 같아.”

“이번 일은 분명 성공할 거야.”


하고 확신신한다. 하지만 그 확신은 금처럼 단단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유리 위의 불꽃에 가깝다. 그래서 그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자주 지친다.


“아니, 오늘은 나한테 왜 이렇게 차갑지?”

“어제는 그렇게 신나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가라앉았어?”

“도대체 무슨 감정이 진짜야?”


하지만 그들의 감정이 진짜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그들은 매 순간 진짜로 느끼는 것을 말할 뿐이다. 문제는 그 ‘진짜’가 너무 자주 바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거짓이 아니다. 비트코인의 그래프처럼 그저 그들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랑에도 이런 성향을 보인다. 금처럼 조용하고 꾸준한 방식이 아니라 현금처럼 즉시 투입하고 실패하면 후퇴하고 다시 어떤 날엔 과감히 밀어 넣는다. 감정이 한 번 움직일 때 너무 큰 덩어리로 움직인다. 그래서 상처도 크게 받는다. 사랑이라는 시장에서 가장 큰 수익을 기대하는 동시에 가장 큰 손실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확신이 필요하지만 확신을 쉽게 만들지 못한다. 의심이 습관이 되어 있고, 세상을 믿고 싶지만 세상은 늘 예측을 배신한다. 그래서 마음속에 두 개의 문장을 동시에 품고 산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아니야,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는데.”


이 두 문장이 알파와 오메가처럼 그들 마음 안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교차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같은 사람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강점이 있다. 그들은 어느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것처럼 보이다가도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일어서고, 멈춘 듯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길을 찾는다. 초장기 투자자처럼 끝까지 버티는 끈질김이 있다. 그 끈질김은 삶의 가장 깊은 어둠을 통과한 사람들에게서만 나오는 종류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 때문에 더 깊이 사랑하고, 자신의 욕망 때문에 더 치열하게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들을 흔들림 많은 사람이라 말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흔들릴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로 움직인다.”


금형 인간은 안정적이고 현금형 인간은 따뜻하지만, 비트코인형 인간은 삶의 진폭을 가장 넓게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파도가 너무 커서 스스로도 버겁지만 그 파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빛, 특별한 감정, 특별한 삶의 온도가 있다. 요동치는 그래프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 그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세상은 결국 이런 사람들도 필요로 한다. 변화를 불러오는 사람,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 가끔은 너무 불안정해서 조마조마하지만 누군가의 삶에서 강렬한 ‘전환점’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의 흔들림이 때로는 우리의 닫힌 마음을 흔들고 굳어버린 생각을 깨고 멈춰 있던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비트코인 같은 사람들.혼란스럽고 요란하고 예측불가하지만 그만큼 살아 있는 사람들.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세상은 아마 절반 정도 재미를 잃을 것이다. 불안정함도 결국 하나의 생명력이다. 나는 그 생명력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4장. 돈의 흐름과 마음의 흐름, 경제학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인간


경제학 교과서는 늘 경제를 설명할 때 “흐름”이라는단어를 쓴다. 돈이 움직여야 시장이 살고, 시장이 살아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순환하지 않는 돈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흐르지 않는 자본은 마치 오래된 창고에서 썩어가는 재고처럼 가치가 퇴색한다. “경제는 순환이고, 순환은 생명”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명제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해 본다. 사람의 마음도 흐르지 않으면 금방 무겁고 탁해진다. 정체된 감정은 언젠가 곪아버리고, 제때 흘러가지 못한 말과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인간을 무너뜨린다. 이 지점에서 나는 돈과 마음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새삼 실감한다. 돈이 어디로, 어떤 속도로, 누구에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가 달라지듯, 사람의 감정도 누구에게 흘러가고,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며, 어떤 속도로 순환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 분위기가 결정된다. 돈은 경제의 혈액이고, 감정은 인간의 혈액이다. 둘 다 흐르면 살아 있고, 막히면 아프고, 폭발적으로 늘어나거나 급격히 줄면 몸과 마음 모두 비명을 지른다. 그래서 나는종종 현금형, 금형, 비트코인형 인간을


“이들이 가진내면의 흐름은 각각 어떤 구조일까?”


하고 떠올린다. 현금형 사람의 흐름은 빠르다. 돈이 손에서 손으로 즉시 넘어가듯, 감정도 머릿속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입으로 곧바로 흘러간다. 이들은 감정을 오래 저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쉽게 상처받고 쉽게 웃고 쉽게 울고 쉽게 용서한다. 이 빠른 순환은 사회적으로는 유연한 특성이고,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함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피로감을 동반한다. 경제에서 급속한 현금 유동성은 때로 시장을 과열시키듯 현금형 인간의 빠른 감정 대사는 스스로를종종 번아웃으로 몰아넣는다. 반면 금형 사람의 흐름은 매우 느리다. 금은 변화가 늦고, 이동 속도가 느리고, 쉽게 소모되지 않는다. 이들의 감정 또한 쉽게 움직이지 않아 내부의 흐름은 조용하고 단단하다. 이런 내부 구조는 사람을 안정시키지만 때로는 고립감을 부르기도 한다. 느린 감정 대사는 깊은 성찰을 만드는 대신 타인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게 만든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금은 디플레이션 시대에도 살아남지만 자칫하면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듯, 금형 인간도 관계 속에서 너무 느리고 신중한 태도로 인해 상대의 감정 리듬과 어긋나기도 한다. 그리고 비트코인형 사람의 흐름은 어떤 매뉴얼로도 설명할 수 없다. 폭등과 폭락, 낙관과절망, 확신과 의심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한다. 이들이 경험하는 내부의 흐름은 경제학의 ‘변동성(volatility)’ 개념과 비슷하다. 짧은 시간에 욕망과 불안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감정이라는 그래프가 크게 진동한다. 이 변동성은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상대에게 설렘과 피로를 동시에 안긴다. 경제학에서 과도한 변동성은 투자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힘이 되기도 하듯, 비트코인형 인간도 누군가에겐 혼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창조적 에너지다. 이렇게 보면 돈의 흐름과 마음의 흐름은 놀라울 만큼 유사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경제학은 자본의 흐름을 분석하고, 심리학은 감정의 흐름을 분석한다. 하지만 두 학문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선명한 인간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돈의 흐름을 잘 다루는 사람은 대체로 감정의 흐름도 능숙하게 다스린다. 반대로 돈의 흐름을 막거나 과하게 소모하는 사람은 감정의 순환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감정을 ‘지출’로만 쓰는 사람은 쉽게 지치고, 감정을 ‘비축’만 하려는 사람은 쉽게 고립되며, 감정을 ‘투자’로만 바라보는 사람은 관계에서 수익률만 계산하다 정작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린다.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 감정을 막 소모하는 사람이 돈을 서슴지 않고 막 쓰고, 감정을 지나치게 참는 사람이 돈도 이상할 만큼 아끼고, 감정을 미래의 수익으로 환산하는 사람이 돈도 투자로만 계산하며 불안을 키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고유한 ‘경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행동경제학’과 ‘감정 자본(emotional capital)’로 설명하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결론에 이른다. 돈의 흐름은 결국 그 사람 마음의 패턴을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현금처럼 오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고, 누군가는 금처럼 오랫동안 마음을 저장해 두며, 누군가는 코인처럼 불협화음 속에서도 언제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튀어 오를 준비를 한다. 어떤 게 옳고 그른가? 경제학은 효율성을 따지고 심리학은 안정성을 중요하게 보지만 나는 사람을 대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흐름은 성격이지 흠이 아니다. 빠른 흐름은 온도를 만들고, 느린 흐름은 깊이를 만들고, 요동치는 흐름은 변화를 만든다. 경제에는 모두 필요한 요소다. 사람에게도 그렇다. 문제는 흐름의 ‘방향’이다. 돈이 잘 벌리는 사람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모두 따뜻한 것은 않으며, 안정적인 성격이 모두 건강한 것도 아니다.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현금형 인간이 감정을 소모의 흐름으로 쓰면 지치지만 나눔의 흐름으로 쓰면 아름다워진다. 금형 인간이 감정을 축적의 흐름으로만 쓰면 고립되지만 지지의 흐름으로 쓰면 누군가의 버팀목이 된다. 비트코인형 인간이 감정을 불안의 흐름으로 쓰면 위험하지만 창조의 흐름으로 쓰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에너지가 된다. 사람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망가지는 것은 감정의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이 깨지면 돈의 흐름도 따라 깨진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학생 상담을 할 때 성적보다 먼저 그 학생의 마음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부터 본다. 돈의 흐름을 이해하면 시장이 보이고,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면 사람이 보인다. 금융 시장이 불안할 때 전문가들은 언제나 “흐름을 다시 읽어라”라고 말한다. 인간도 똑같다. 삶이 불안해질 때는 흐름이 어디서 막혔는지를 다시 읽어야 한다. 감정이 막혔는지, 사랑이 막혔는지, 욕망이 과열되었는지, 두려움이 침전되었는지. 나는 그런 순간마다 사람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진실을 본다. 돈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면 경제가 달라지듯, 감정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 각자가 가진 속도와 결이 다르지만 어떤 흐름도 절대적인 우열이 없다. 경제는 다양성이 있을 때 건강하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흐르지 않는 마음은 아프지만 흐르는 마음은 결국 자기 자리를 찾는다. 돈이 제 가치를 찾아 움직이듯 사람의 감정도 결국 자기에게 맞는 자리로 흘러간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사람은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경제학이 설명하는 돈의 원리보다 사람의 감정을 설명하는 마음의 흐름이 더 어려울지 몰라도 그 흐름을 읽는 순간 사람은 훨씬 자유로워진다고 말하고 싶다. 돈의 흐름은 사회를 만들지만, 마음의 흐름은 사람을 만든다.




5장. 우리는 결국 ‘어떠한 돈과 닮은 사람’이 되어가는가


살다 보면 이런 질문을 한 번쯤 자신에게 던지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성격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어떤 속도로 나이를 먹어가며, 어떤 결로 사랑하고, 어떤 방식으로 버티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현금처럼 즉각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금처럼 무게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비트코인처럼 요동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한 장르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한 번도 같은 한 사람으로만 살아본 적이 없다. 때로는 현금처럼 뜨겁고, 때로는 금처럼 조용하며, 어떤 날은 비트코인처럼 흔들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는가?”이다. 사람의 성격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흐름을 따라 변하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돈의 가치가 단일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듯, 사람의 성격도 단일한 기준으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의 흐름이 복잡하게 얽혀 있듯 사람의 마음도 여러 층위에서 움직인다. 어떤 날은 빠르게 흘러야 하고, 어떤 날은 느리게 스며야 하며, 어떤 순간은 요동쳐야만 제대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세상이 요구하는 성격이 따로 있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를 괴롭혔다.


“조금 느긋하면 안 돼?”

“그렇게 감정적이면 손해보지 않아?”

“왜 그렇게 요동치니? 안정 좀 찾아.”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타인의 감정을 재단하고 단정한다. 마치 금이 현금처럼 쓰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고, 비트코인에게 금처럼 안정적이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사물에게는그 사물의 성질이 있듯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리듬과 온도가 있다. 나는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님을 만나며 이 사실을 조금씩 더 깊게 배웠다. 사람은 자기성질대로 움직일 때 가장 강해지고, 자기 성질을 부정할 때 가장 쉽게 무너진다는 것을. 현금형 사람에게 “왜 오래 참지 못하냐”라고 말하면 그는 오히려 감정이 막혀 더 불안해진다. 금형 인간에게 “조금 가볍게 살아봐”라고 말하면 그 고유의 균형이 깨지고 혼란스러워진다. 비트코인형 인간에게 “왜 이렇게 요동치니, 좀 안정적이면 안 돼?”라고 말하면 그 사람의 본질은 억제되고 그 안에서 피어난 창조적 에너지는 사라지고 만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진짜 질문에 닿았다.


“세상은 왜 우리에게 단일한 방식만을 요구할까?”


학교는 정답을 요구하고, 직장은 효율을 요구하고, 사람들은 일관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디까지나 ‘흐름’이고 흐름 속에서 세 가지 성질을 모두 사용하며 살아간다. 사랑할 때는 현금처럼 뜨거워야 하고, 추억을 지킬 때는 금처럼 단단해야 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만날 때는 비트코인처럼 용감하고 불규칙해야 한다. 우리는 단일한 화폐가 아니다. 우리는 복합 화폐다. 하나의 사람 안에는 현금의 즉각성과 금의 무게와 비트코인의 변동성이 어느 정도씩 모두 들어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사람은 자신에게 훨씬 관대해진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훨씬 너그러워진다. 현금형 사람이 갑자기 버티기 시작할 때, 금형 사람이 어느 날 뜨겁게 마음을 열 때, 비트코인형 사람이 조용히 안정감을 찾아갈 때 우리는 그 변화의 순간을


“아, 저 사람도 성장하고 있구나”


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세상은 늘 “안정적 인간”을 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발전시키는 사람은 대개 불안정함을 품은 사람이다. 비트코인형 인간의 불안은 때로 위험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 현금형 인간의 즉흥성은 가볍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만든다. 금형 인간의 느린 속도는 답답하지만 관계와 공동체를 오래 지탱한다. 경제는언제나 이 세 요소의 균형에서 움직인다. 사람도 똑같다.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마음이 점점 금처럼 단단해지고 다시금 현금처럼 누구에게든 따뜻해졌다가 비트코인처럼 도전 앞에서 다시 흔들리는 순간이온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경제 시장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결을 갱신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 생각에 도달한다.


“어떤 돈과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이 질문은 우리를 단일한 성격으로 고정시키려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되묻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느 흐름 위에 서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성질을 더 많이 쓰고, 무엇을 억누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내 본성을 어느 만큼 받아들이고, 어느 만큼 숨기고 있는가?”


돈에는 정답이 없다. 사람에도 정답이 없다. 다만 각각의 성질이 있고 그 성질이 가장 자연스럽게 빛나는 자리가 있을 뿐이다. 현금처럼 살면 즉흥이 만들어주는 기쁨이 있고, 금처럼 살면 지속이 만들어주는 깊이가 있으며, 비트코인처럼 살면 변화가 만들어주는 생명력이 존재한다. 결국 삶은 이 모든 결을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쓰는 연습이다. 어떤 날은 빠르게, 어떤 날은 느리게, 어떤 순간은 요동치며. 나는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성인들에게도, 그리고 언젠가 내 앞에 있을 또 다른 나에게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너는 단일한 사람이 아니다. 너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변형 가능한 존재다. 그러니까 너 자신을 어느 한 종류의 사람으로 가두지 말아.”


우리가 어떤 ‘돈 같은 사람’이 되는지는 태어난 성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흐름을 바꾸면 사람이 바뀌고, 흐름을 받아들이면 사람이 자유로워진다. 현금은 오늘을 살고, 금은 세월을 살고, 비트코인은 가능성을 산다. 그리고 사람은 이 세 가지를 모두 품으며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가치로 남을지를 선택하는 존재다. 나는 이 사실이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