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엔진으로 읽는 사람들

자동차 엔진과 사람의 성격



우리는 모두 사람이라는 같은 외형을 하고 살아가지만, 실은 각자 다른 엔진을 품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직장을 다니고, 비슷한 시간에 잠들고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면서도 그 속에서 돌아가는 리듬은 놀라울 만큼 다르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얼굴들, 때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걷는 사람들조차 내부에서는 서로 완전히 다른 속도와 에너지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시동만 걸어도 금방 RPM이 치솟아 아침부터 하루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고, 누군가는 엑셀을 밟아도 응답이 더디고 기어가 맞물리는 데만도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또 다른 누군가는 묵직하게, 큰 변동 없이 꾸준히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특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차이가 바로 성격의 차이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속도의 차이이며, 마음이 견딜 수 있는 압력과 진동의 차이이다. 나는 그 사실을참 늦게 배웠다. 어릴 땐 사람은 노력하면 바뀐다고 믿었다. 의지와 근성이 있으면 성격도 마음가짐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된다.” 한때는 이 말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특히 학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또 내 지나온 삶의 골목들을 하나씩 돌아보면서 그 믿음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노력과 근성을 말하지만, 그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력 이전에 ‘성향’이라는 구조가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처음 나올 때부터 엔진의 스펙이 정해져 있듯 사람의 성격과 내면의 구조도 어느 정도는 태어날 때부터 조금씩 다른 셋업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빠르게 불이 붙고 누군가는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고 누군가는 오래 달릴 수 있도록 내구성을 가진 엔진을 타고난다. 그리고 이 엔진들이 각자의 최적의 힘을 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비슷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중이고 누군가는 국도에서 조심스럽게 차선을 유지하며 가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비포장도로를 흔들리면서도 끝내 자기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종종 사람에게 ‘가속’을 강요했던 적이 있었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든 엔진이 같은 속도, 같은 RPM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터보 엔진에겐 냉각 시간이 필요하고, 자연흡기 엔진은 예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서로 다른 엔진이 서로의 리듬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엔진에 대해서도 그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왜 어떤 날은 너무 쉽게 과열되고, 어떤 날은 아무리시동을 걸어도 힘이 나지 않는지, 왜 사람들 곁에서는 빨라졌다가 혼자만의 시간에서는 유난히 속도가 느려지는지. 그것이 나의 성격이자, 리듬이자, 내가 타고난 엔진의 구조였다는 걸 이제서야 조금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사람은 서로 비슷해 보이는 외형 속에 전혀 다른 엔진의 울림을 품은 존재다. 반짝하며 치고 나갔다가 금방 지치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달리지만 오래 버티는 사람도 있고, 어떤 길에서든 묵묵히 균형을 지켜가는 사람도 있다. 이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여유를 갖게 되고, 자기 자신에게도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뜯어보면 모두 다르다. 비슷한 얼굴아래, 비슷한 하루 아래, 서로 다른 엔진음이 고요하게, 때로는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울림이모여 각자의 인생을 굴러가게 만든다.




1장. 터보 엔진 같은 사람들은 빠르게 달리지만 열에 약하다


터보 엔진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엔진이라는 건 결국 공기와 연료를 섞어 폭발시키는 장치다. 사람들은 흔히 엔진의 힘이 연료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폭발력을 결정하는 핵심은 ‘공기’다. 공기가 적으면 연료가 아무리많아도 큰 힘을 낼 수 없다. 그래서 자연흡기 엔진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공기량’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이 방식은 온순하고 안정적이지만 출력이 한계에 닿으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마치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이 꾸준히 일은 잘하지만 갑자기 엄청난 속도를 내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터보 엔진이 등장한 이유는 이 자연스러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억지로라도 더 많은 공기를 집어넣자’는 발상이다. 이 방식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려했다. “엔진이 그렇게 무리해서 공기를 밀어 넣으면 과열되지 않을까?” “그렇게 폭발력을 높여도 차가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터보에 대한 초기 인식은 지금의 ‘터보형 인간’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다. 빠른 건 좋지만 과열될 것 같고, 강한 건 맞지만 지속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터보 엔진은 실제로 어떻게 힘을 끌어내는 걸까? 터보 엔진은 기본적으로 엔진 내부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절대로 그냥 버리지 않는다. 차가 달릴 때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뜨겁고 빠른 배기가스는 늘 ‘낭비되는 에너지’였다. 자연흡기 엔진에서는 그 열과 압력을 밖으로 흘려보내기만 한다. 그런데 터보 방식은 이 낭비되는 힘을 다시 잡아챈다. 뜨거운 배기가스가 터빈이라는 작은 회전체를 빠르게 돌리면 그 힘이 반대편 공기 압축기를 같이 회전시킨다. 압축기는 공기를 마치 손으로 움켜쥐듯 압축해 엔진 실린더 안으로 강제로밀어넣는다. 그 공기는 이미 ‘꽉 찬 공기’다.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산소가 들어가기 때문에 연료를 더 많이 태울 수 있고, 그만큼 폭발력은 자연흡기의 몇 배로 커진다. 엑셀을 살짝만 밟아도 차가 앞으로 튀어나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 용량을 넘어서도록 엔진 안을 억지로 확장시키는 방식, 그것이 터보의 본질이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바로 열이다. 터보는 차의 힘을 ‘빼앗아’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차가 이미 만들어낸 뜨거운 배기가스를 다시 안쪽 기술로 돌려 추가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에너지 효율로 보면 혁신이지만 열의 관점에서 보면 ‘무리한 기술’이다. 공기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열이 생기고, 강하게 태워내는 폭발에서 열이 생기고, 터빈이 돌면서 또 추가적인 열이 생긴다. 이 열이 엔진 내부에 빠르게 쌓이면 차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출력 조절을 시작한다. 힘을 덜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게 흔히 말하는 ‘부스트 다운’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 나는 아이들을 보면서이 구조를 너무 많이 본다. 터보형 인간은 감정의 배기가스를 다시 에너지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어떤 아이들은 재수를 결심하고 학원에 돌아오는 첫날부터 마치 전원을 켜자마자 RPM이 치솟는 차처럼 다가온다. 부쩍 단단해진 눈빛, 아침 8시 등원이면 7시 30분에 와서 자리 잡는 행동, 교재를 세 권 네 권씩 쌓아놓고 그 옆에는 형광펜과 노트, 물, 단어장까지 딱 맞춰 정렬해 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의 첫 일주는 정말 화려하다. 감히 말하지만, 나 같은 어른이 봐도 ‘존경’이 느껴지는 수준이다.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만 빠르게 다녀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않기 위해 물도 적게 마시고, 점심 먹고 오면 식곤증이 오기 전에 문제집을 펼친다. ‘에너지가 저렇게 넘치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이나 과거경험, 즉 인생의 배기가스를 다시 동력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지난해의 실패, 부모님의 기대, 스스로에 대한약속, 남모르는 열등감과 두려움 등 이 모든 감정을 다시 압축해 ‘이번에는 반드시 해낼 거야’라는 추진력으로 만들어낸다. 그 결의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정말 차가 가속 페달을 밟듯 그 자리에서 속도를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터보 엔진이 그렇듯,사람도 ‘강제로 공기를 넣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면 열이 훨씬 빨리 쌓이기 시작한다. 어느 날,그 아이의 손이 멈춘다.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머리가 따라오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 때문인데도 마음은 크게 흔들린다. 짜증이 밀려오고, 누구에게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슬럼프가 찾아온다. 어제까지는 하루 12시간도 견디던 아이가 오늘은 5시간도 버티지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본다. 그때 나는 바로 알아차린다.“아… 과열이 왔다.” 터보형 인간의 문제는 절대 ‘의지 부족’이 아니다. 절대 ‘멘탈 약함’도 아니다. 정말로 열이 쌓이는 구조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아이의 탓이 아니다. 그 아이가 약한 것도 아니다. 그 아이가 게을러 그런 것은 더더욱아니다. 단지, 힘을 내는 방식 자체가 열이 빨리 쌓이는 구조였던 것이다. 터보형 인간에게는 식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은 차처럼 대시보드에“지금 엔진 온도가 너무 높습니다.” 라는 표시등이 뜨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에서 아주 희미한 신호만 울린다. 집중력이 갑자기 끊기고 말수가 줄고 예민해지고 별것 아닌 말에도 상처받고 괜히 무기력하고몸이 무겁고 계획표가 갑자기 의미 없어진다. 이런 신호들은 고장이 아니라 “냉각이 필요하다”는 자연스러운 구조적 메시지다. 그래서 나는 터보형 아이에게 절대 “더 해봐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 그 말은 오히려 열을 더 올리는 말이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조금만 쉬자.” “속도 조금만 줄여도 괜찮아.”“너는 지금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터보 엔진이든 사람이든 잠깐 멈추는 순간이 있어야 다시 제대로 달릴 수 있다. 터보형 인간은 더 약한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과열되는 사람을 약하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터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오해인지 안다. 터보는 기술적으로 훨씬 정교하고, 순간 출력은 자연흡기로 절대 따라갈 수 없으며,부스트가 제대로 걸릴 때의 성능은 경외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하다. 터보형 인간도 똑같다. 이들은 한 번 동기부여가 터지면 며칠치 공부를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사람이고, 한 번 결심하면 일주일 동안 흐트러짐 없이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이고, 순간적으로 엄청난 몰입력을 보이는 사람이다. 다만, 그 힘을 끝까지 끌어내기 위해선 스스로를 관리하는 기술, 속도를 줄이는 용기, 쉬어가는 리듬을 익혀야 한다. 그한 가지만 알면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 오래, 멀리 갈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터보형 인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는 잘못된 게아니다. 너는 ‘무리해서’ 달린 게 아니라 너의 구조대로 달린 것이다. 너는 약한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강한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다. 단지, 너는 자연흡기처럼 사는 게 아니라 터보 방식으로 살아가기때문에 열을 식히는 법을 더 빨리 배워야 할 뿐이다.그리고 그 식히는 순간만 잘 확보하면 너는 정말 오랫동안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힘으로 너만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다.




2장. 자연흡기 엔진 같은 사람들은 느리지만 가장 오래 간다



터보 엔지형과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엑셀을 밟아도 처음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시동이 걸리는 데만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예열이 끝나야 비로소 힘을 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바로 자연흡기 엔진형 인간이다. 나는 학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 두 유형을 뚜렷하게 구별해왔다. 어떤 아이는 첫날부터 교재 세 권을 펼쳐놓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처럼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치고 나간다. 반면 어떤 아이는 첫 페이지를 넘기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연필을 잡아도 손이 움직이지 않고, 문제 하나를 푸는 데 남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아이들은 늘 뒤처지는 사람 취급을 받기 쉽다. “왜 이렇게 느려?” “좀 빨리 하면 안 되니?” “의지가 없어서 그래.” “이러다 대학 못 가겠다.” 이런 말들을 이 아이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듣는다. 심지어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부모에게서 듣기도 한다. 그러니 자연흡기형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느린 사람’이라고 규정해버린다. 마치 자기 인생의 속도가 본질적으로 뒤처져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큰오해다. 사람은 자기 구조대로 움직일 뿐이다. 기계가 엔진 구조에 따라 움직이듯이, 사람도 타고난 내면의 리듬이 있다. 자연흡기 엔진은 ‘느린’ 엔진이 아니다. ‘예열이 필요한’ 엔진이다. 자연흡기 엔진(N/A)은 구조가 단순하다. 공기와 연료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엔진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공기를 억지로 압축하는 과정도 없고, 기계적 추가 장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엔 힘이 잘 나오지 않는다. 엔진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야 비로소 제 성능을 낼 수 있다.이 과정이 바로 인간의 예열 시간과 같다. 자연흡기형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몸이 잠에서 깨고, 머리가 정리되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해야 할 일을 이해해야 움직일 수 있다. 이들의 속도가 느린 이유는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고, 집중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며, 태만하거나 게을러서도 아니다. 그들은 예열이 필요한 구조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기계의 예열은 눈에 보인다. 온도계가 올라가고, 엔진음이 부드러워지고, 기름이 회전축을 충분히 적셔주며 비로소 힘을 낼 준비가 된다. 하지만 사람의 예열은 눈에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 시간을 ‘게으름’이라고 오해한다. 당사자조차도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 취급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계가 예열 없이 무작정 힘을 쓰다 보면 출력이 불안정하고 엔진에 무리가 간다.사람도 마찬가지다. 예열 없이 성과만 쥐어짜려 하면 금방 지치고, 감정이 흔들리고, 공부든 일이든 오래 갈 수 없다. 자연흡기형인간에게는 ‘시동 시간’이 존재한다. 학원에서 자연흡기형 아이들을 보면 이런 패턴이 있다. 처음엔 연필을 잡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문제 하나를 읽는 데남들보다 두 배, 세 배 걸리며, 쉬는 시간마다 스스로를 탓한다. “나는 머리가 나쁜가 봐요.” “원장님, 저는 왜 이렇게 느릴까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 아이들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단지 예열 구간에 있을 뿐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무조건 ‘속도’를 요구한다. “빨리! 더 빨리! 시간이 없다!” 이 말들은 자연흡기형 아이에게는 엔진 온도가 올라가기 전에 풀엑셀을 밟는 것과 같다. 차라리 엔진을 망가뜨리는 일이 된다. 자연흡기형 아이에게 필요한 건 속도 강요가 아니라 시동을 걸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이다. 그리고 그 예열이 제대로 끝나면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예열이 끝나면 자연흡기 엔진은 어떤 엔진보다 안정적이다. 자연흡기 엔진은 예열이 완료되는 순간 가장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힘을 낸다. 출력이 갑자기 솟구치지도 않고, 갑자기 떨어지지도 않는다. 기복이 없다. 진동이 적고 소음이 적다. 심지어 장거리 주행에서 강한 내구성을 가진다. 사람도 정확히 같다. 자연흡기형 인간은 한 번 예열이 되면 하루 종일 건드리지 않아도 공부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처음엔 하루 3시간도 힘겨워하던 아이가 한 달 뒤에는 6시간, 두 달 뒤에는 8시간을 묵묵하게 버텨낸다. 더 놀라운 사실은 버티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방식이 안정적이 된다는 점이다. 예열된 자연흡기형 아이는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집중해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다. 속도는 터보형 아이보다 느리지만 결국 두 달, 세 달이 지나면 학습 누적량은 자연흡기형아이가 더 많아진다. 이 아이들은 요란하지 않다. 과하게 몰입하지도 않는다. 주변의 칭찬을 기대하지도않는다. 그저 자기 속도로 묵묵하게, 꾸준하게, 흔들림 없이 간다. 터보형이 ‘폭발력’이라면, 자연흡기형은 ‘지구력’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폭발력보다는 지구력을 더 필요로 한다. 자연흡기형 인간은 감정 기복이 적은 사람이다. 자연흡기형 사람들은 감정의진폭이 작다. 커다란 파도가 덮치기보다 잔잔한 물결처럼 움직인다. 그렇다고 둔한 것도 아니고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감정이 천천히 올라오고 천천히 내려갈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상황을 납득하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일단 납득하면 의견이 잘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오래 유지한다. 아이들 또한 그렇다. 초반엔 외부의 말에 민감하게 흔들리지만 예열이 끝나면 “원장님, 이제 제 방식대로 해볼게요.” 라고 말할 만큼 자기 리듬과 자신감을 찾는다. 이 느린 감정의 리듬은 살아가는 데 큰 장점이 된다. 조급함이 적어지고, 실수했을 때 스스로를 덜 몰아붙이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금방 무너지지 않는다. 자연흡기형 인간의 핵심은 바로 지속 가능성이다. 지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한 번 정한 방향으로 오래 갈 수 있는 사람. 학원에서도 이 유형의 아이들이 결국 가장 높은 성적을 받는 경우가 많다. 초반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나면 터보형 아이들은 기복 때문에 성적이 들쭉날쭉한반면 자연흡기형 아이들은 꾸준함 덕에 성적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오른다. 나는 수 십년 동안 학생을 지도하면서 이 흐름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벌써 25년이나 되었다니 놀랍기도 하다. 세월의 빠름을. 어쨌든, 초반에 화려한 아이가 후반에 기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처음에는 느리고 자신감 없던 아이가 마지막에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냥 제 속도로 했어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괜찮아졌어요.” “이제는 하루 공부가 버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워요.” 그 자연스러움이 바로 자연흡기형 인간이 가진 최고의 힘이다. 자연흡기형 인간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본모습을 이해하면 그 속도 뒤에 숨어 있는 강인함을 알게 된다. 사람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외형을 하고 살아가지만 내부에는 전혀 다른엔진을 품고 있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요란하게, 누군가는 조용하게를 부여 받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다. 진짜중요한 건 그 사람이 가진 엔진이 어느 리듬에서 가장 건강하게 힘을 내는가이다. 이 리듬을 발견한 사람은 비교에서 벗어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결국 자기 삶을 자기 속도로 살아가게 된다.자연흡기형 인간은 느린 사람이 아니라 자기 속도가분명한 사람이다. 그 느림 안에 단단함이 있고, 그 단단함 안에 지속성이 있다. 그 지속성 안에 누구보다 오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3장. 사람은 고쳐 쓰는 기계가 아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엔진을 가진 아이들을 오래 지켜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게 됐다.말 그대로 ‘고쳐 쓴다’는 표현이 얼마나 불편한 단어인지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심지어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늘 이렇게 생각했다.“저 친구는 성격만 조금 고치면 훨씬 잘할 텐데.” “조금만 더 적극적이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 텐데.” “느긋한 성향만 좀 줄이면 금방 성적 오를 텐데.” “저런 행동 하나만 바꾸면 사람이 확 달라질 텐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참으로 무지한 시선이었다. 그때 나는 사람의 성격과 구조가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쉽게 바꿔 끼우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마치 디젤 엔진을 억지로 터보 엔진처럼 만들려는 시도와 같다. 엔진의 기본 구조가 다른데 어떻게 같은 연료 주입 방식으로, 같은 소음과, 같은 속도로, 같은 가속 리듬으로 달릴 수 있을까. 사람이란 존재가 모두 비슷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두 팔과 두 다리, 하나의 머리, 비슷한 하루 구조 등등. 하지만 그 내부에는 전혀 다른 조립 방식, 전혀 다른 내압, 전혀 다른 노킹 지점, 전혀 다른 연소 온도가 존재한다. 나는 이 사실을 참 늦게 깨달았다. 삶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학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기계가 아니다. 각자의 엔진 설계도가 이미 조금씩 다르게 마련된 존재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엔진 블록이 다르게 만들어져 있다. 누군가는 빠르게 RPM이 오르는 엔진을 타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누군가는 조용한 전기모터처럼 부드럽고, 누군가는 디젤 엔진처럼 단단하고 묵직하며, 누군가는 하이브리드처럼 두 개의 방식이 상황에 따라 무게중심을 바꾼다. 이 구조는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구조를 읽어야 하고, 상대의 구조를읽어야 하고, 학생의 구조를 읽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 내가 편한 방식대로 상대의 엔진을 강제로 돌리려 하면 결과는 뻔하다. 엔진이 망가진다. 사람도 망가진다. 마음은 금속보다 훨씬 약해서 고열과 무리를 견디지 못한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보며 나는 한동안 ‘고쳐 쓰기’ 방식으로 학생을지도하려 했다. 물론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진심은 틀린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아이들이 있다. 시동이 늦게 걸리는 아이,예열이 끝나야 집중력이 올라오는 아이, 처음엔 서툴고 느리지만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오래 가는 아이,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부 압력이 금방 쌓이는아이. 이 아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더 적극적으로 해봐.““너무 느긋하게 하면 안 된다.” “정신 차려, 지금 중요한 때야.” “왜 그렇게 여유롭니? 조급해져야지.” “너무 완벽주의로 가지 마. 그냥 빨리 해.” 이 말들은 언뜻 보면 ‘격려’처럼 보일지 모른다.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엔진 구조와 전혀 상관없는 연료를 강제로 집어넣는 것이었다. 마치 이것은 디젤 엔진에 휘발유를 넣는 것과 같은 혼란이다.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결과는 치명적이다. 디젤 엔진에 휘발유가 들어가면 흔히 말하는 ‘노킹’이 생긴다. 부품끼리 부딪치며 금속음이 나고, 점화시기가 뒤틀리면서 성능이 무너지고, 결국 엔진 전체가 망가진다. 아이의 마음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노킹’이 생긴다. 그 아이가 가진 구조와 전혀 다른 조언을 들으면 내부에서 자기 자신을 향한 부딪힘이 시작된다. “나는 왜 이런 성격일까?” “나는 왜 이 속도를 못 따라갈까?” “나는 왜 원장님 말대로 하지 못할까?” 이건 성격을 고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과 잠재력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사람의 성격은 바뀔 수 있다. 단정적으로 “성격은 평생 안 변해”라고 말하는 건 사실 아니다. 하지만 성격이바뀌는 방식은 ‘엔진 전체 교체’가 아니라 엔진의 사용 매뉴얼을 조금씩 수정해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느린 사람도 훈련을 통해 빠른 리듬에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느린 엔진이 터보처럼 과도한 가속력을 갖는 일은 없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반대로 터보형 사람도 냉각의 리듬을 배우면 기복을 줄이고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폭발력’이라는 엔진 특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변화는 완전한 구조 변경이 아니라 구조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최적화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대상이 아니라 “조율하는” 대상이다.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많이 ‘고치려’ 한다. 타인의 기대, 가족의 기준,사회가 요구하는 성향, 학원이 원하는 패턴,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 등등.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엔진을 바꾸려 한다. 느긋한 사람은 억지로 속도를 빠르게 하려 하고 감정이 느린 사람은 억지로 리액션을 크게 만들고 예열이 필요한 사람은 “난 왜 이렇게 늦지?” 하며 자책하고 급발진 성향을 가진 사람은 억지로 자기 속도를 낮추려 하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다치는 건 자기 자신이다.자기 구조를 억지로 부정하게 되면마음은 금방 피로해지고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나는 왜 이럴까…” 이 문장은 자기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가장 자주 쓰는 문장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복잡한 신경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기본 구조가 다르다는 점에서 엔진의 비유는 정말 정확하다. 엔진은 수천 번의 폭발이 일어나는 구조물이다. 사람의 마음도 수천 번의 감정 폭발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엔진은 열을 견디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사람도 스트레스를 견디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엔진은 각자의 최적 회전수(RPM)가 있다. 사람도 각자의 최적 리듬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엔진을 닮았다”는 비유가 그저 철학적 수사가 아니라 오히려 정교한 심리학적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동안 아이들의 엔진 구조만 보려고 했다. 터보형 아이, 자연흡기형 아이, 예열형아이, 하이브리드형 아이.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엔진 구조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힘이 나고, 어떤 상황에서 힘이 빠지고, 어떤말에 과열이 생기고, 어떤 환경에서 냉각이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니 내가 나를 고쳐 쓰려고 했고, 나를 타인의 방식에 억지로 맞추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사람은 고쳐 쓰는 기계가 아니다.나도, 학생도, 누구도.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다른 설계도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다. 이 설계도를 이해하는 순간 사람은 훨씬 자유로워진다. 자기 자신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아도 되고, 세상의 속도와 비교하며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엔진을 닮았다는 비유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있다. 각자의 고유한 구조를 존중하라.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조용히, 누군가는 요란하게 움직인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가진 엔진 구조를 억지로 바꾸거나 외부에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엔진에 어떤 연료를 주입하고, 어떤 회전수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움직이며, 언제 열이 쌓이고, 어떻게 냉각되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고쳐 쓰는 대상이 아니다. 보살피고, 조율하고,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덜 소모시키고, 자기 자신을 덜 괴롭히며, 이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러운 속도로살아가게 된다.




4장. 속도가 달라도 괜찮다. 결국 우리는 도착하기 때문이다.


내가 재수하는 학생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말이 있다. “넌 괜찮아. 너의 속도로 가면 돼.” 많은 아이들이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 말이 너무 단순해서, 너무 평범해서, 혹은 이미 장식적인 위로문구처럼 귀에 익어서 그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이 말은 그저 편해지라고, 그저 울지 말라고, 그저 불안해하지 말라고 던지는 가벼운 위로가 아니다. 이건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다. 학습의 본질, 인간의 구조, 삶의 길에서 발견한 사실 그대로의 진실이다.어떤 아이는 빠르고, 어떤 아이는 느리고, 어떤 아이는 중간에서 묵묵히 간다. 이 차이는 단순한 ‘노력의 차이’가 아니다. 각자가 타고난 엔진의 리듬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완전히 자연스러운 생리적 차이다. 그래서 비교는 무의미하다. 비교는 마치 디젤 엔진과 터보 엔진을 한 트랙에 세워놓고 “왜 둘이 똑같은 속도로 달리지 않지?” 하고 묻는 것만큼이나 엉뚱한 질문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예열이 되고, 누군가는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고, 누군가는 낮은 RPM에서도 큰 힘을 내고, 누군가는 높은 RPM에서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보인다. 이 차이는 “좋고 나쁨”으로 나뉘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일 뿐이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마라톤에 가까운 싸움이다. 아이들에게 항상 해주는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인생은 100m가 아니라 마라톤이야.”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누가 가장 먼저 치고 나가느냐, 누가 초반에 폭발적인 가속력을 내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마라톤에서는 다르다. 초반에 너무 빠르면 중반에 무너지고, 중반에 무너지면 결승선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결승선이 “수능 성적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후의 인생 전체다.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을 선택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관계를 만들고, 가정을 이루고, 세상에 한 사람으로 서는 그 긴 인생 전체가 마라톤의 결승선이다. 그러니 속도가 다르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 그건 그냥 사람마다 호흡이 다른 것뿐이다. 어떤 사람은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뛰고, 어떤 사람은 긴 호흡으로 천천히 뛴다. 어떤 사람은 초반 5km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후반 20km에서 힘을 낸다. 어떤 사람은 중간지점에서 꾸준하게 밀어붙인다. 그렇다면 이중 누구를 “옳다”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모두 각자의 리듬으로 달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수많은 학생을 지도하면서 이 사실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초반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달리던 아이가 중반에 무너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반대로 초반에는 고개 숙이고 뒤처지듯 걸어가던 아이가 중반부터 갑자기 속도를 내며 결국 상위권에 안착하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은 항상 “지금”을 본다. 지금 내가빠른지, 지금 내가 느린지, 지금 친구가 나보다 앞섰는지. 하지만 나는 지금이 아니라 전체 곡선을 본다.하루, 일주일, 한 달, 세 달, 일 년, 이 시간 동안 아이가 보여주는 곡선에는 절대 감출 수 없는 ‘특성’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초반에 진하고 굵은 선을 그어놓고 그 뒤로 힘이 빠져 파형이 깨진다. 누군가는 초반에는 얇고 희미한 선을 그리다가 중반부터 서서히굵어져 나중에는 거의 직선에 가까운 속도를 보인다. 이 아이들은 오래 간다. 지속된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이 결국 원하는 대학에도 도달하고, 인생의 여러 지점에서도 꾸준히 자기 속도로 도달한다. 속도 비교는 불필요하다. 오히려 위험하다. 속도를 비교하는 건 완전히 잘못된 관점이다. 심지어 해로운 관점이다. 사람들은 “빠름 = 우수함”이라는 공식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빠름은 단지 특성일 뿐이다. 우수함과 연결되지 않는다. 자연흡기 엔진이 악한 엔진인가? 아니다. 디젤 엔진이 느리다고 가치가 떨어지는가? 아니다. 전기차가 조용하다고 약한가? 아니다. 각 엔진은 용도가 다르고, 장점이 다르고, 최적의 환경이 다르다. 사람도 완벽히 그렇다. 빠른 사람은 빠른 사람대로의 장점이 있다. 느린 사람은 느린 사람대로의 장점이 있다. 꾸준한 사람은 꾸준함 자체가 가장 큰 자산이다. 그런데 이 속도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묶어 비교하려고 하면그 순간부터 문제가 생긴다. 하루하루가 자책으로 바뀌고,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깎아내리게 된다. “왜나는 쟤만큼 못하지?” “왜 나는 항상 늦을까?” “나는 타고난 게 아닌가 봐…” 이런 말들은 마음의 엔진 내부에서 발생하는 노킹이다. 자기가 가진 구조와 맞지 않는 연료를 집어넣을 때 내부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바로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에서도 똑같이 난다. 터보에게는 냉각이 필요하고, 자연흡기에게는 예열이 필요하다. 터보형 인간은 쉬지 않고 달리면 반드시 과열이 찾아온다. 오히려 쉬는 시간, 열을 빼는 시간, 속도를 늦추는 시간이 있어야 장기적으로 더 빠르게 갈 수 있다. 자연흡기형 인간은 예열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불태우려고 하면 출력이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감을 잃게 되고 내부 구조가 삐걱거리게 된다. 어떤 아이는 ‘부스트’를써야 하고, 어떤 아이는 ‘워밍업’을 해야 한다. 나는 이제야 이해했다. 이 둘은 경쟁하는 방식이 아니다. 둘은 그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엔진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정한 리듬’이다. 인생을 한 번에 밀어붙이는 사람은 결국 정체 구간에서 지친다. 반대로 너무 느슨하게 가는 사람은 진입할 기회를 놓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맞는 일정한 리듬을 찾는 것이다. 리듬이 맞으면 속도는 자연스럽게 붙는다. 리듬이 맞지 않으면 속도를 억지로 올려도 오래 가지 않는다. 리듬은 정말로 중요하다. 호흡과 닮아 있다. 연비와도 닮아 있다. 사람의 마음의 온도와도 닮아 있다. 내가 수많은 학생을 보며 내린 결론은 하나다. 사람은 결국 자기 속도로 도착한다. 물론 도착 시간이 다르고 도착 방식도 다르고 도착한 뒤의 길도 서로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는 빠르게 도착하고, 누구는 천천히 도착하고, 누구는 멈칫멈칫하다가 도착하고, 누구는 돌아갔다 다시 와서도착한다. 그러나 그 도착의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 폭발력이 아니라 리듬,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구조의 이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 “너는 괜찮아. 너의 속도로 가면 돼.” 이 문장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인생을 오래 지켜본 사람의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기술적이며 심리학적이고 경험적인 결론이다. 너의 엔진은너의 방식으로 달릴 때 가장 멀리 간다. 너의 속도로가면 된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옆을 보지 않아도 된다. 너의 호흡이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면 결국 도착한다. 그리고 그 도착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5장.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진 엔진으로 살아간다


나는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정말 자주 한다. 사람은결국 자신이 가진 엔진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시동을 걸 때부터 요란하다. 엔진이 깨어나는 순간부터 마치 도로 전체를 흔드는 것처럼 에너지가 밖으로 새어 나오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엇을 시작하든 눌러 담아두지 못한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행동하고,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옆 사람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만큼 거침없이 달린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반면어떤 사람들은 묵직하게 출발한다. 기계가 동작을 시작하긴 했는데 마치 오래된 기름을 새로 적시는 듯한 소리로 서서히, 정말 서서히 리듬을 찾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느리고 둔해 보이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쉽게 멈추지 않는다. 속도를 줄이긴 해도 후퇴하진 않는다. 그들은 깊이 있고, 오래가는 힘을 품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직 출발도 하지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몸 안 어딘가에서 정교하게 힘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치 하이브리드 엔진처럼 전기 모터의 조용한 움직임 아래 언제든 필요할 때 폭발력을 실어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아주 정확한 계산과 조율을 반복하며 자신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순간의 파워를 위해 내달린다. 멀리 보는 법보다는 지금 당장의 속도, 지금 당장의 필요, 지금 당장의 감정에 충실하며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남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의 힘을 내며 자기 인생을 한 번에 바꾸기도 한다. 나는 이제 안다. 이 모든 엔진은 온전하다. 누가 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우열이 없다. 그저 다르다. 우열을 만드는 건 언제나 ‘비교’라는 외부의 시선이다. 세상은늘 특정한 엔진을 이상화한다. 빠른 엔진을 선호하거나, 꾸준한 엔진을 더 성실하다고 판단하거나, 조용한 엔진을 심심하다고 말하거나, 감정이 느린 사람을 무뚝뚝하다고 단정한다. 세상이 원하는 엔진이따로 있다고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자신을 억지로 변형시키기 시작한다. 터보 엔진을 자연흡기처럼 만들려고 하고, 전기차 같은 사람에게 “좀 더 소리를 내보라”고 하고, 디젤 같은 사람에게 빠르게 움직이라고 다그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자기 구조를 잃는다. 내부 압력은 올라가고, 감정의 기름은 마르고,마음의 피스톤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 과정을 학생들에게서, 어른들에게서,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서 너무 많이 보았다. 다른 사람의 기준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다가 자신의 최적 회전수를 잃고 엉뚱한 기어로 달리며 엔진을 갈아 넣는 삶을 말이다. 내가 한때 그렇게 살았다.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거야”, “저렇게 하면 인정받을 거야”, “조금만 더 무리하면 나도 따라갈 수 있어.” 이 말들을 믿으며 내 엔진에 맞지 않는 방식을 억지로 집어넣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가진 엔진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내 인생의 핸들을 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사람은 결국 자기 엔진의 리듬을 받아들일 때 가장 강해진다. 내가 가진 엔진의 리듬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이 가장 강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리듬이 있다. 누구에게는 예열이 필요하고, 누구에게는 냉각이 필요하고, 누구에게는 정지와 가속이 빠르게 반복되는 짧은 사이클이 필요하다. 자기 리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늘 조급하다. 늘 불안하다. 늘 비교한다. 그리고 늘 자신을 의심한다. “왜 나는 저렇게 못할까.” “왜 나는 느릴까.” “내가 이상한 걸까.” 이 질문들은 사실 전부 잘못된 질문이다. 올바른 질문은 단 하나다. “내 엔진은 어떤 리듬에서 가장 부드럽게돌아가는가?”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보며 이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경험했다. 어떤 아이는 아침형 엔진이었다. 아침 8시엔 이미 집중의 RPM이 최대로 올라가 있다. 이런 아이에게 야간 공부를 강요하면 그 강요는 곧 내부 노킹으로 이어진다. 밤에는 머리가 멈추고 마음은 예민해지고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반면 어떤 아이는 오후형 엔진이다. 오전에는 몸이말을 듣지 않고 공부는커녕 글자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오후가 되면 눈빛이 바뀌고 페이지 넘기는 속도도 달라지고 문제를 붙잡는 끈기도 달라진다. 이 아이에게 “아침형이 되어야 성공한다”고 말하면 그 말이 곧 자기 부정이 된다. 또 어떤 아이는 워밍업이 필요한 엔진이다. 문제를 풀기 전에 정리를 한번 하고, 가볍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 앞에서 몸을 편하게 만든 뒤에야집중이 올라온다. 각자의 엔진은 그저 다를 뿐이다. 어떤 속도, 어떤 순간, 어떤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을내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자기 엔진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부정하며 살게 된다. 남들이 원하는 RPM에 자신을 맞추려 하고, 남들이 칭찬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뜯어고치려 한다. 그렇게억지로 가속하고, 억지로 감속하고, 억지로 방향을 틀다 보면 엔진은 금방 망가진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들도 그렇다. 나는 한때 다른 사람의 속도를 따라가려고 내 엔진을 망가뜨렸던 적이 있다. 남들은 하루 종일 달려도 끄떡없는 것 같은데 나는 중간중간 조용히 숨이 차오르고 먼지가 폐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마음이 뻑뻑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탓했다. “왜 나는 저렇게 못할까.” “왜 나는 금방 지칠까.”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하지만 사실은 내 엔진이 가진 구조를 모르고 엉뚱한 방식으로 돌려대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엔진을 부정하면 사람은 항상 지쳐 있고, 항상 불만족스럽고, 항상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자기 엔진을 이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은 가장 편안한 속도로 움직이면서 가장 강한 힘을 내기 시작한다. 이건 기계공학이 아니라 인생의 물리학이다. 나는 요즘 가을 길을 많이 걷는다. 해가 기울어지는 시간,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관통하는 하천 물빛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시간, 나뭇잎이 천천히 떨어지는 시간. 그 길을 걸으며 나는 사람의 속도와 계절의 속도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생각한다. 나무는 자기가 가진 뿌리와 줄기의 속도로 자란다. 옆 나무가 빨리 자란다고 자기 줄기를 억지로 늘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 때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만큼만 흔들리고 나뭇잎은 떨어질 때 되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자연에는 억지가 없다. 계절에는 비교가 없다. 자라는 속도가 아니라 자라는 방향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내가 가진 엔진도 내가 가진 계절도 억지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나는 내 속도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들의 속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을바람을 맞으며 다시 배웠다. 어떤 엔진이든, 그 엔진이 낼 수 있는 힘의 방식이 있다. 터보 엔진은 순간의 파워가 있다.자연흡기 엔진은 꾸준함이 있다. 디젤 엔진은 내구성이 있다.전기 엔진은 조용한 집중력이 있다. 하이브리드는 상황에 따라 균형을 바꾸는 유연함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시끄럽고, 어떤 사람은 조용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가고, 어떤 사람은 빨리 간다. 어떤 사람은 예열이 길고, 어떤 사람은 냉각이 길다. 어떤 사람은 폭발적이고, 어떤 사람은 내성적이다. 이 모든 엔진은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자꾸 남들과 비교하고 자신을 부정하고 누군가가 말한 ‘이상적인 엔진’을 따라가려 한다.하지만 그건 자기 능력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엔진으로 살아갈 때 가장 강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자신다운 소리를 내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국 도착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이제 믿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엔진으로 살아가고 있고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있고 각자의 리듬으로 호흡하고 있다. 누군가는 빠르게 도착하고 누군가는 늦게 도착하고 누군가는 돌아갔다가 도착한다. 도착 시간이 다르다고 도착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도착했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를 잃지 않았느냐 하는것이다. 내가 가진 엔진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구조를 억지로 꺾지 않은 채 내 방식대로 살아낸 사람은 늦게 도착해도 가장 아름다운 결승선을 밟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누군가의 속도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성향을 탐내지도 않는다. 내가 가진 엔진으로 내가 내 마음에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가장 편안한 회전수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라고 믿는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