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지 않기로 선택한 것들의 시간에 대하여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단순했다.
하늘은 높았고, 나무는 한 그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나무는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풍경 전체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 속 나무는 균형이 좋지 않다.
곧게 자라지 않았고,
가지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어떤 가지는 한참을 가다 멈췄고,
어떤 가지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갔다.
그럼에도 이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흔히
잘 자라는 삶을 꿈꾼다.
곧고, 빠르고, 남들보다 위로 향하는 삶.
하지만 현실의 삶은
대개 이 나무에 가깝다.
휘어지고,
멈추고,
다시 방향을 바꾸며
자라난다.
이 나무가 인상적인 이유는
얼마나 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느냐에 있다.
성장의 속도보다
존재의 지속이 먼저였다는 점 때문이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나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땅속에서 견뎠는지를.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눈에 띄지 않는 시간 동안
이 나무는 계속 버텼을 것이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요즘의 세상은
결과만을 요구한다.
얼마나 빨리 자랐는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이 나무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너는 지금,
잘 버티고 있느냐”라고.
나는 셔터를 누르며
이 나무가
성공의 상징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이 나무는
설명하지 않는다.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서 있음’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답처럼 느껴졌다.
삶은 언제나
성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멈춘 자리에서도,
휘어진 방향에서도
시간은 쌓인다.
그리고 어떤 존재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리를 지킨다.
이 사진은
자람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보다
어디를 지키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지를.
그리고 이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이렇게 서 있었다.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모든 성장은 위로 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