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한 그루가 남아 있다

자라지 않기로 선택한 것들의 시간에 대하여

Contax G2, Kodak 200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단순했다.

하늘은 높았고, 나무는 한 그루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나무는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풍경 전체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 속 나무는 균형이 좋지 않다.

곧게 자라지 않았고,

가지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어떤 가지는 한참을 가다 멈췄고,

어떤 가지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멀리 나아갔다.


그럼에도 이 나무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하게 서 있었다.


우리는 흔히

잘 자라는 삶을 꿈꾼다.

곧고, 빠르고, 남들보다 위로 향하는 삶.

하지만 현실의 삶은

대개 이 나무에 가깝다.


휘어지고,

멈추고,

다시 방향을 바꾸며

자라난다.


이 나무가 인상적인 이유는

얼마나 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느냐에 있다.

성장의 속도보다

존재의 지속이 먼저였다는 점 때문이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 나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땅속에서 견뎠는지를.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눈에 띄지 않는 시간 동안

이 나무는 계속 버텼을 것이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요즘의 세상은

결과만을 요구한다.

얼마나 빨리 자랐는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이 나무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너는 지금,

잘 버티고 있느냐”라고.


나는 셔터를 누르며

이 나무가

성공의 상징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이 나무는

설명하지 않는다.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서 있음’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답처럼 느껴졌다.


삶은 언제나

성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멈춘 자리에서도,

휘어진 방향에서도

시간은 쌓인다.


그리고 어떤 존재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자기 자리를 지킨다.


이 사진은

자람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보다

어디를 지키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지를.


그리고 이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이렇게 서 있었다.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모든 성장은 위로 향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시간은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