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부르는 사람들

어디에 있나요.

비가 온다.

종일 내렸다가

잠깐 멎는가 싶으면

다시,

더욱 고요하고 무거운 빗방울로 내린다.


나는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버텼고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늦은 밤 혼자

창가에 앉아 있다.


누군가에게 이 하루를

말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되뇌어본다.


하지만 그런 이는 없다.

세상엔 더 이상

내 일상에 귀 기울여줄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다.


어느 날

불쑥 사라졌고,

그 이후

나는 매일

누군가를 부르지 않는 연습을 했다.


이름을 부르면 울 것 같아서,

기억을 꺼내면 주저앉을 것 같아서.


그 의지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비가 오면

허무하게 무너진다.

이상하다.

단지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속이

허방처럼 꺼지는지.


그들은

내가 말을 떼기도 전에

표정을 읽어주던 사람들이었다.

내 표현이 서툴러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말해주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없다.

남은 건

그들이 다녀간 자리,

허전하게 꺼진 자리뿐이다.


나는

그 자리를 매일 밟고 지나간다.

무심한 듯 걸으면서도

늘 그곳을 지나간다.


말없이 저녁상을 차려주던

그 손이 떠오른다.

작고 바삐 움직이던 손,

한참 동안 나를 닦아주고 다독여주던 손.

그 손이 없다는 걸

내 손이 가장 잘 안다.

이제는 아무도

내 이마에 손을 얹어줄 수 없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말이 없던 그 사람.

멀리서 보면

늘 그림자처럼 조용했던 그 사람.

나는 그의 등을 오래 기억한다.

크고, 듬직하고,

말없이 많은 것을 견뎌내던 등.


그 등이 없다는 걸

내 어깨가 제일 잘 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야 할 시간이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렇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걸 감당하기가 어렵다.

괜찮은 척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이토록이나

속이 찢기듯 그리울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오늘 또 배운다.


그러니

오늘 밤만은

잠시 다녀와 주었으면 좋겠다.

꿈속이어도,

기억 속이어도.

잠시만, 잠시만.


말하지 않아도 되니

그저 나를

한 번쯤

안아주면 좋겠다.


그들이 떠난 후

나는 온전히 웃어본 적이 없다.

그들이 나를 안아준 날처럼.


그래서,

비가 오면 나는 기도한다.

울지 않고 울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해달라고.

그리움이 무너지지 않도록

살아가게 해달라고.


이 비가 끝나면

그들도 내 안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내 슬픔도

조금 더 다정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또 하루를

그들의 빈자리에 기대어

조용히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