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음으로써 가능해지는 질서에 대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은 종종 생각보다 정돈되어 보인다.
물 위에 떠 있는 배들,
그 배들을 붙잡고 있는 선착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잔잔한 수면.
각각은 움직일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해진 자리에 머물러 있다.
배는 본래 떠나기 위해 존재한다.
항로를 그리고,
파도를 가르며,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사진 속 배들은
모두 정박 중이다.
떠날 준비를 마친 채,
아니면 이미 돌아와서,
잠시 물 위에 몸을 맡긴 상태다.
선착장은 묘하다.
아무 데도 가지 않으면서
모든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정지된 구조물 위에 서서
수많은 출발과 귀환을 감당한다.
누군가는 배를 타고 떠나고,
누군가는 배에서 내려오지만
이 자리는 늘 같은 모습으로 남아
질서를 유지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삶의 리듬을 본다.
항상 나아가고,
계속 변화하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이런 ‘정박의 시간’으로 유지된다.
쉬지 않으면 떠날 수 없고,
머무르지 않으면 돌아올 곳도 없다.
수면은 고요해 보이지만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흐른다.
보이지 않는 조류가
배의 방향을 조금씩 조정하고,
부두의 위치를 확인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정지,
안으로는 움직임.
아마 삶도 그렇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보다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떠날 용기만큼이나
머무를 결심이 필요한 시점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이 배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다음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일,
지금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은
서두르지 않을 때에만 완성된다.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떠나는 법만 배운 사람에게
머무름은 또 하나의 항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