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지키는 자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남는 역할에 대하여

iPhone 7 Plus, 28mm, ISO20, f1.8, 1/3546s




이곳에 서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높은 담장과 단단한 문,

그리고 그 앞을 지키고 선 돌짐승 하나.

사람들은 대부분 문을 바라보지만

나는 자꾸 이 석상을 먼저 보게 된다.


해태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달리지도 않고,

길을 열지도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 서서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볼 뿐이다.


돌로 만들어진 몸에는

시간이 쌓여 있다.

비를 맞았고,

햇빛에 닳았고,

수많은 계절을 지나왔다.

그럼에도 해태는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다.

움직이지 않음이

이 존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계속 이동해야 안심한다.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다는 표시가

없으면 불안해진다.

그래서 멈춤은

종종 실패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이 해태를 보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움직이지 않아서 지켜지는 것들이 있다고.

항상 같은 자리에 있어야만

의미를 갖는 역할이 있다고.


누군가는 문을 열고

누군가는 길을 나서지만

또 누군가는

그 모든 움직임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리를 지킨다.

눈에 띄지 않고,

칭찬받지 않아도

없어지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존재로.


나는 이 석상 앞에서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보다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앞으로 나아가는 삶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리는

끝까지 지켜내야

비로소 삶이 된다.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모든 존재가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은 끝까지 서 있는 것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