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담겨 있으되 넘치지 않는 자리

피지 말아야 할 곳에서 피어나는 것들

Canon EOS 1Ds Mark II, EF 50mm, ISO 100, f1.4, 1/250s

돌은 말이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모서리와

오랜 시간에 깎인 표면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견뎌왔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이 돌은

흐르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않고,

자리를 바꾸지도 않는다.


그저

한 곳에 놓여

물을 담고 있다.


물이 가득 차 있지는 않다.

넘치지도 않고,

흘러내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이 안에는

물이 있다.


그리고

그 물 위로

꽃이 하나

피어 있다.


이건

원래 꽃이 피어야 할 자리가 아니다.

흙도 없고,

뿌리를 깊게 내릴 수도 없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마련해 준

안전한 터전도 아니다.


척박하다.

차갑고,

단단하고,

쉽게 기대어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꽃은

여기서 피어났다.


나는 이 꽃을 보며

마음이 한 번 더

멈춘다.


세상에는

피지 말았어야 할 자리들이 있다.

견뎌내기만 해도 벅찼을 공간,

버티는 것조차

사치였던 시간들.


그럼에도

어떤 것들은

그 자리에서

피어난다.


이 꽃은

환경이 허락해서 피어난 것이 아니다.

조건이 맞아서 올라온 것도 아니다.

그저

살아야 했기 때문에

피어났을 뿐이다.


나는 이 꽃을

강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의연하다고도,

아름답다고도

쉽게 부르지 않겠다.


다만

이 꽃은

포기하지 않은 흔적이다.


흙이 없으면

물을 붙잡고,

뿌리를 내릴 수 없으면

몸을 낮춰 적응하며,

기댈 곳이 없으면

스스로 중심을 만든다.


이 돌 위의 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피어난 게 아니다.

칭찬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의미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살아 있으려 했을 뿐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며

내가 지나온 자리들을

떠올린다.

꽃이 피기엔

너무 단단했고,

너무 메말라 있었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


그럼에도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 역시

저 꽃처럼

피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스스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 사진 속에서

돌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물은 말없이 담겨 있으며,

꽃은

피어 있다.


그리고 그 조합은

이렇게 말해준다.


환경이

삶을 결정하지는 않으며,

어떤 생명은

피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가장 조용히 피어난다고.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나는 좋은 자리에서 피지 않았지만,

그래도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