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자리

남아 있는 마음과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서

Canon EOS 1Ds Mark II, EF 50mm, ISO 200, f1.4, 1/3200s

공기는 고요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공간에서

표면 위에

작은 물방울 하나가 맺혀 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끝에 매달린 채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순간.

그 시간은 길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눈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그리고 이내

아무 신호도 없이

물방울은

아래로 흘러내린다.


이 물방울은

우연이 아니다.

습기의 잔여도 아니고,

버려진 공간의 흔적도 아니다.


저 물방울은

나의 눈물이자 나다.


나는 지금

붙잡지 않은 채

흘러내리고 있다.

설명하지 못한 마음,

말로 남기지 못한 감정들을

안은 채

아래를 향해

조용히 내려가고 있다.


이 눈물은

분노의 결과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쏟아낸 항의도 아니다.

이 눈물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행복했던 시절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미 떠나보냈지만

아직 마음속에서는

완전히 보내지 못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의 잔여다.


그래서 이 눈물은

급하지 않다.

소리를 내며 떨어지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눈물은 원래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 무게만큼

흘러내릴 뿐이다.


나는 깨닫는다.

우리가 견뎌온 시간들 중에는

애써 강해질 필요가 없었던 순간들이

분명 존재했다는 것을.

울지 않아서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울 수 있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벽은 여전히 단단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모든 흔적을 받아낸다.

나는 그 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사라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리되기 위해서.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을 다른 자리에 두기 위해서.


눈물은

끝이 아니라

이동이다.

마음이

다음 자리로 가기 위한

가장 조용한 방식이다.


이 사진 속에서

벽은 남아 있고

나는

그 벽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린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렇게 말해준다.


남아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구조이고,

흘러내리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고.


사진이 나에게 건넨 한 문장


“나는 사라진 게 아니라,

조용히 내려놓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