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너머의 진심, 나를 위해 끓여낸 소박한 술국

흑백요리사 2를 보고

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딛고 올라서야 하는 끝없는 경쟁이 소모적이라 느꼈고,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적 굴레가 남기는 잔상이 못내 불편했기 때문이다.

'흑백요리사'라는 자극적인 타이틀 역시 내게는 피하고 싶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열광하던 시즌 1을 뒤로하고 우연히 마주하게 된 시즌 2는 내가 가진 서바이벌에 대한 편견을 기분 좋게 무너뜨렸다.

그곳에는 계급의 전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장인들의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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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이라는 가장 위대한 내공, 후덕죽 셰프님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던 이는 최후의 3인에 올랐던 후덕죽 셰프님이었다. '무한 지옥'이라 불리는 가혹한 요리 대결 속에서 젊은 셰프들조차 체력의 한계를 호소할 때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놀라운 것은 그의 요리에는 기복이 없었다는 점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는 높은 퀄리티. 그것은 단순히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이 빚어낸 '태도'의 결과였다.

우리는 흔히 눈부시고 폭발적인 성장에 환호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정상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자기 절제를 필요로 하는지. 그 꾸준함이야말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자신을 증명해 내는 가장 단단한 내공임을 셰프님의 뒷모습을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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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척'을 내려놓는 용기, 최강록 셰프의 술국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한 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다. 모두가 대한민국 대표 조림 명장인 최강록 셰프가 화려한 조림 요리를 선보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예상을 깨고 투박한 '술국'과 빨간 소주 한 병을 내놓았다.

그는 고백했다. 그동안 '조림을 잘하는 척'하며 살아왔노라고. 그 화려한 타이틀 뒤에서 "과연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맞을까?"라는 불안과 싸우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노라고 말이다. 그 불안이 그를 완벽주의자로 만들었겠지만 정작 '나'를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는 더 이상 근사해 보이고 싶은 가면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허름해 보이지만 단단한 내면, 소박하지만 진실한 인간 최강록이 담긴 그 술국을 보며 나는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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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잘하는 척'이 버거웠던 날들이 있었다


최강록 셰프의 고백은 곧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늘 똑 부러지고, 무엇이든 쉽게 이뤄내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너는 이미 충분하잖아", "너는 어차피 쉽게 하잖아?"라는 말들 뒤에서 나는 사실 끊임없이 흔들렸다. 내 밑천이 드러날까 봐. 사람들이 기대하는 나의 이력과 자격증 뒤에 숨은 조그만 내 모습이 들통날까 봐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화려한 스타 셰프라는 이름 뒤에 빨간 소주와 술국을 둔 최강록처럼 나 또한 이제는 조금 초라하더라도 마음 편한 '진짜 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쌓아 올린 성(城)보다 내가 나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패자가 없는 문장들


흑백요리사는 내게 경쟁의 새로운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앞선 라운드에 탈락했던 셰프들은 경쟁자였던 동료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서로를 격려하는 이들, 그 안에서 피어나는 팀워크, 그리고 요리라는 본질을 향한 경외심. 그곳에 패자는 없었다. 오직 음식에 진심을 다한 장인들만 남았을 뿐이다.

순수한 경쟁은 피폐가 아니라 발전을 만든다. 타인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증명하기 위해 칼을 잡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나 역시 나의 삶이라는 주방에서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요리가 아닌 나를 위로하고 타인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나만의 '술국' 같은 글을 계속 써 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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