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우리는 어디까지 거래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불편해지는 순간들

2026년이 왔다. 새해의 첫 글을 어떻게 시작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사실 이 책은 작년의 마지막 날에 이미 완독했지만 글은 이제야 쓰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은 ‘연말의 책’이라기보다, 새해의 질문에 더 가까운 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해에 새롭게 시작한 일 중 하나는 경제 스터디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경영학을 전공한 나 역시 경제를 늘 흥미롭게 바라봐 왔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곧 ‘잘 사는 법’이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새해 첫 글로 선택한 책은『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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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은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꾸준히 질문한다.


“시장은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가?”


시장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정말 존재하는지, 혹시 우리가 그저 돈이 부족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아닌지 말이다.




1. 새치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권리가 되었을까


이 책의 첫 번째 예시는 ‘우선 검색대 이용’이다.
이 장면은 나에게 꽤 익숙하다. 실제로 공항에서 근무하며 자주 보아온 풍경이기 때문이다.

공항에는 VIP 전용 라운지가 있고, MAAS라 불리는 의전 서비스가 존재한다.
사전에 연락을 넣어 검색대를 우선 통과하고, 탑승 전부터 도착까지 전 과정을 동행한다.

항공사에서는 우선 수속과 우선 수하물 수취까지 제공하는 서비스다.
매뉴얼로 명문화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업무 영역이다.


그들은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셈이다.

이 장면이 특별히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우리는 비슷한 경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에서도 ‘매직패스’라는 이름으로 긴 대기줄을 건너뛰는 유료 서비스가 판매되고 있다.
약 3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식이다.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과연 시장은 어디까지 판매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이런 선택지를 제공하는 기업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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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센티브는 정말 더 나은 선택을 만들까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
한겨울에도 경량 패딩으로 충분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럴수록 지구온난화라는 단어가 더 실감 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라는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하고,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샌델은 묻는다.

이런 인센티브가 과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아니면 책임을 ‘가격’으로 환산해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돈을 내고 배출하면 괜찮은 일.

환경 보호는 선택이 아니라 거래가 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태도와 규범이 조용히 성격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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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하버드 어린이집 실험은 이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부모들의 지각 문제가 심각해지자, 어린이집은 지각 시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지각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이전까지 부모들은 ‘규칙이기 때문에’, 혹은 ‘아이와 교사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지켰다.
하지만 벌금이 생긴 이후, 지각은 더 이상 도덕의 문제가 아니었다.
돈을 내면 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을 뿐이다. 도덕적 판단이 거래 관계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DECI & RYAN의 자기결정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돈과 같은 외적 보상이 아니라 자율감,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될 때 비로소 진짜 동기부여가 된다. 외적 보상이 강해질수록 사람은 ‘왜 이 행동을 해야 하는지’보다 '얼마를 지불하면 되는지’를 먼저 계산하게 된다.


허즈버그의 동기–위생 이론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급여나 근무 조건, 회사 정책과 같은 위생요인은
없으면 불만을 만들지만 있다고 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지는 않는다. 반면 인정받는 경험, 성장의 기회, 성취감과 같은 동기요인은 없다고 불만이 생기지는 않지만 있을 때 비로소 몰입과 만족, 성과를 끌어올린다.

문제는 시장이 이런 구분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본래 의미와 태도로 유지되던 행동을 가격표가 붙은 선택지로 바꿔버릴 때, 사람을 움직이던 동기요인은 조용히 사라지고 위생요인만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경제적 효율이라는 렌즈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잠시 고개를 들어 ‘얼마면 되는가’가 아니라 ‘왜 지켜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조금 더 따뜻한 공공선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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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삶과 죽음의 시장


“나의 죽음을 이름 모를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1980~90년대, 에이즈가 불치병으로 여겨지던 시절 미국에서는 ‘말기환금 산업’이 성행했다.

말기 환자의 생명보험 증권을 투자가가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고, 사망 시 보험금을 받는 구조다.

겉으로 보면 윈-윈처럼 보인다. 환자는 당장의 자금을 확보하고, 투자가는 수익을 얻는다.

그러나 치료제가 개발되며 상황은 바뀐다.
환자의 수명이 늘어나자 투자가의 수익률은 떨어지고, 그 순간부터 누군가는 타인의 죽음을 바라게 된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세상에 팔 수 없는 것은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도 과거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이 있었고,

현재는 제도가 많이 보완되었지만 이런 사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완전한 자유가 아닌, 도덕적 선을 지키기 위한 규제는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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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같은 공간, 다른 경험


얼마 전 연말 콘서트를 다녀왔다. 지인을 통해 받은 티켓은 프리미엄 좌석이었다.
별도의 입장 줄, 붐비지 않는 동선, 그리고 무대 바로 앞 1열.

편안했고,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한 가지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내 뒤쪽 좌석의 관객들은 공연 시작 6시간 전부터 줄을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공연을 보고 있었지만 우리의 경험은 분명히 나뉘어 있었다.


책에서는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경기장 사례가 등장한다.
누구나 공정하게 관전할 수 있다는 미시간 대학 경기장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스카이박스 증축이 결정된다. 시즌당 8만 5천 달러에 달하는 좌석이다.

시장 논리는 언제나 설득력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공유하던 의미는 조용히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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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이미 시장 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고, 상업화로 인해 재화의 성질이 바뀌는 순간들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특권을 누린 적도 있는 내가 과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완벽한 평등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자본주의의 이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로 인해 바뀌어버린 ‘의미’들은 없는지,

가끔은 멈춰서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 모든 가치가 시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아직 우리가 잃지 않은 마지막 기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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