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복수하지 않는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아바타3가 묻는 인간, 자연, 그리고 관계

#1. INTRO


아바타 시리즈는 줄곧 같은 질문을 반복해왔다.
인간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끝내 정복하려 드는 존재인가.


1편에서 인간은 자원이 고갈된 지구를 떠나 판도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나비족은 자연과 신경망으로 연결된 삶을 살아가며, 자연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일부로 대한다. 인간은 판도라의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그들의 터전을 파괴하고, 제이크 설리는 인간과 나비족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결국 그는 인간의 편을 떠나 자연과 함께하는 길을 택한다.


2편에서 인간은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정복이 아니라 이주라는 이름으로 판도라를 차지하려 한다. 제이크는 가족을 이끌고 숲을 떠나 바다 부족과 함께 살아가지만, 인간의 침략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멈추지 않는다. 자연은 지켜냈지만, 그 대가로 가족과 공동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아바타는 이 지점에서 승리가 아닌 상실을 남긴다.


이렇게 아바타 1과 2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넘어, 선택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갈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바타 3은 이 질문을 한 단계 더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이제 싸움의 대상은 인간과 자연이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 내부에서의 선택이 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과연 어디서부터 어긋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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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의 민족은 악당일까


영화 속 불의 민족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이미 한 번 걸어왔던 길을 다시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불의 민족은 자연의 일부로 태어났고, 자연의 언어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선택한 길은 공존이 아니라 지배다. 자연을 이해했던 존재가 그 이해를 관계가 아닌 통제로 바꾸는 순간이다.


인간 역시 그랬다. 한때 인간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이동하며 필요한 만큼만 취했다. 그러나 농경이 시작되면서 숲은 개간의 대상이 되었고, 강은 흐름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자원이 되었다.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은 곧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변했다. 불의 민족이 선택한 길은 낯설지 않다. 그것은 문명이 탄생하던 순간 인간이 선택했던 방식과 닮아 있다.


불의 민족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 에이와는 반응하지 않았다. 버려졌다고 느낀 그들은 인간적인 방식을 택한다. 힘으로 질서를 만들고 두려움으로 복종을 얻으며, 자연마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환한다.


불의 민족은 말한다. 자연은 이용할 수 있다고. 그래서 그들은 잔인한 학살자처럼 보이고,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폭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문명이 시작될 때마다 반복되어 온 선택의 얼굴이다. 자연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왜곡된 방식으로 유지될 때 폭력은 오히려 더 집요해진다.


불의 민족이 걷고 있는 길은 어쩌면 인간이 이미 지나온 과거이자 아직 끝내지 못한 현재다. 그렇다면 질문은 그들을 향하기보다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아니면 이미 같은 선택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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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은 자연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아바타 속 인간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미국이 신대륙으로 확장하던 시기 역시 비슷한 논리를 따랐다. 금과 토지, 농경지라는 자원을 앞에 두고 원주민의 삶의 방식은 ‘미개함’으로 규정되었다. 자연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던 그들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구역으로 밀려났고, 땅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아니라 소유하고 개발해야 할 자원이 되었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신념은 약탈을 진보로 포장했고, 자연과 연결된 존재를 제거하는 폭력은 필연처럼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판도라에서 벌어지는 일은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지나온 역사에 가깝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시 자연을 필요로 한다. 아바타 2에서처럼 우리는 자연을 잃고 나서야 또 다른 대체 지구를 찾으려 한다.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이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계속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관계의 일부로 다시 받아들일 것인가.




#4. 가족이라는 관계


설리의 가족은 단순한 혈연 집단이 아니라 선택과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자연에 속한 네이티리, 한때 자연에서 벗어났지만 다시 자연으로 돌아온 설리,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그리고 생물학적 혈연은 없지만 사랑 속에서 함께 자라온 키리와 스파이더까지. 이 가족은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세계를 배우고 자라왔다.


이번 아바타 3에서는 스파이더를 중심으로 가족 내부의 균열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설리와 네이티리는 아이들과 달리 마음 한편에서 스파이더를 완전히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인간이며, 언제든 적의 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불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불안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전쟁의 논리 안에서 보면 설리가 스파이더를 죽이려는 선택은 전략적으로 옳다. 스파이더는 인간이며, 위험 요소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설리는 이미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냉정한 결단을 내려왔고, 이번에도 그러해야만 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스파이더를 죽이지 못한다.


이 장면은 성경 속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신의 명령 앞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을 든다. 그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을 유보한 채 질서와 명령에 자신을 맡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칼은 내려오지 않는다. 그 멈춤은 믿음의 실패라기보다 인간성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점에 가깝다.


설리 역시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그는 전사의 논리와 공동체의 생존, 미래의 안전이라는 모든 이유를 손에 쥐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칼을 끝까지 완성하지 않는다. 스파이더는 혈연의 아들이 아니지만 이미 관계 속에서 ‘아들’이 된 존재다. 그를 죽이지 못한 이유는 약함이 아니라 전쟁의 질서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관계가 그의 선택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칼이 멈췄던 순간처럼 설리의 선택 역시 질문을 남긴다.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장면에서 설리를 멈춘 것은 명령이 아니라 관계였다. 어쩌면 아바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승리나 구원이 아니라 파괴의 논리 앞에서 인간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마지막 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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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연은 기다리고 있다


에이와는 아바타 세계에서 위대한 신으로 불린다. 그러나 에이와는 인간이 이해하는 신과는 다르다. 그는 초월적 판단자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 가까운 존재다. 에이와는 상징이자 질서이며, 모든 생명이 연결된 상태를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에이와는 선택적으로 응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위기가 극에 달한 순간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을 ‘응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에이와는 인간처럼 판단하고 감정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균형이 무너졌을 때만 반응하는 자연의 방식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에이와가 복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을 완전히 몰아낼 힘이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 만약 에이와가 인간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닌 존재였다면, 그 선택은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그러나 에이와는 파괴자를 제거하지 않는다. 균형이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만을 남겨둔다.


어쩌면 에이와는 인간과 나비족을 구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편이 아니라 연결이다. 에이와는 심판자가 아니라 기다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시 관계 속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끝까지 남겨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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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1이 개봉한 것은 2009년, 어느덧 16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자연을 덜 소비하게 되었을까. 오히려 더 많이, 더 빠르게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겨울에도 춥지 않은 계절이 찾아오고, 지구의 불균형은 점점 일상이 되고 있다.


이번 <아바타3 : 불과 재>을 통해 아바타는 묻는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부정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하고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자연이 균형을 되찾기 위해 움직이기 전에 이 질문은 우리에게 먼저 도착해 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자연을 소유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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