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gether we unlimited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있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세상에 불길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엘파바.
그리고 학교 시즈의 인기 스타이자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진 글린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던 두 사람은 뜻밖에도 친구가 된다.
함께 오즈의 성으로 향한 그들은 마법사가 사실 평범한 인간이며, 오즈의 체제가 말하는 동물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며 유지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정의를 위해 나선 엘파바는 오히려 ‘악의 마녀’라는 낙인을 받게 되고,
결국 오즈를 떠나 혼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반면 글린다는 오즈에 남아 자신의 방식으로 이상을 지키기로 한다.
과연 그 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두 친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위키드 2>가 돌아왔다.
마법 세계인 오즈에서 마법은 곧 힘이다.
위키드 세계관에서 엘파바는 누구보다 강한 힘을 가진 마녀지만,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하는 그녀의 모든 행동은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다.
사랑하는 동생의 연인을 의도치 않게 양철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모두의 미움과 오해를 감당하던 엘파바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I’m limited.”
압도적인 마법 능력을 지녔음에도 개인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인정한 순간이다.
그래서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의지를 맡긴다.
마법 능력 하나 없는 글린다가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인물이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힘의 본질’은 다시 정의된다.
이 장면은 필리핀 11대 대통령 코리 아키노(Cory Aquino)의 남편, 니노이 아키노(Ninoy Aquino)를 떠올리게 한다.
Cory는 원래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마르코스 독재 아래 언론과 시민권이 억압되던 시대에 남편의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아 시대의 상징이 된다.
그녀의 남편 Ninoy는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7년간의 고문과 감옥 생활을 견뎠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반독재 운동을 이어갔지만,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귀국을 결심한다.
Ninoy는 귀국하면 바로 사망할 것을 알았지만 귀국을 선택했고,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르코스 지지자들에게 암살당한다.
사건 직후 사진과 뉴스는 필리핀 전역에 퍼졌고,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그 후 Cory는 남편이 목숨 바쳐 싸운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아 대통령이 된다.
Ninoy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위키드와 평행한다.
-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연결’과 ‘공동체’를 통해 변화를 만든다.
- 한계를 느낀 엘파바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글린다에게 길을 열어주고, 오즈의 변화를 이끈다.
- 니노이는 자신의 죽음으로 Cory에게 민주화 정신과 국민의 힘을 넘기고, 결국 시대를 바꾼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힘은 개인이 아니라 연결과 신뢰로 이루어진 함께의 힘이다.
<위키드 1편> defying gravity의 가사처럼.
"Together we’re unlimited."
너무 다른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변화한다.
글린다는 처음엔 엘파바를 괴물 같은 존재로 여겼지만, 친구가 되며 세상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운다.
특권적 시각과 편견을 품었던 그녀는 엘파바를 통해 더 넓은 시야와 책임감을 갖게 된다.
엘파바는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글린다를 통해 '의지와 책임을 맡기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절대적인 힘(=마법)을 쓰는 것보다, 영향력과 신뢰가 더 큰 힘을 낳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이'는 언제나 불편함을 만든다.
우리는 보통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두려움을 느낀다.
영화 속 위저드가 동물들을 배척한 이유도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야. 저 사람은 좀 별나다”
그렇게 '우리'와 '그들'이 나뉘고, 소수는 배제된다.
하지만 두 주인공처럼 ‘다름’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나와 다른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확장시킨다.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변화했는지가 더 나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선택은 세상에 파동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엘파바는 왜 자신의 생존을 가장 친한 친구인 글린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을까?
엘파바가 직접 글린다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글린다가 스스로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의지를 넘기고, 상황이 스스로 흘러가도록 한 것이다.
마법이 중심인 오즈에서 엘파바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녀가 사실 선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오즈는 다시 엘파바를 중심으로 흔들릴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 발 물러났던 것이 아닐까.
글린다와 오즈 사람들 모두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엘파바가 곁에 있었다면 글린다는 오즈를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부재로 완성되는 글린다의 성장을 응원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인연을 만난다.
그 인연이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인연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별한다.
엘파바와 글린다처럼.
영화의 끝까지 엘파바가 선한 마녀였다는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가?
당사자인 엘파바와 글린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위저드의 진실은 엘파바의 신념과 행동의 근거이고,
글린다는 그 진실을 알아야 올바른 판단을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진실은 얼마나 중요할까?
대중은 진실보다 ‘어떤 행동이 옳은가’, ‘누가 믿을 만한 존재인가’를 먼저 본다.
진실 자체보다 결과와 영향력이 더 큰 무게를 가진다.
이 지점에서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묻는다.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은 편안한 매트릭스 속 가상현실이지만, 빨간 약은 매트릭스의 진실. 즉 현실이다.
엘파바는 스스로 빨간 약을 선택했다.
글린다는 빨간 약과 파란 약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엘파바를 따라 빨간 약을 이어받는다.
진실은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진실이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결국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나는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그 진실을 따라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영화 속 엘파바는 철저하게 고립된다.
그녀의 집은 어둡고 스산하며 고독이 깃든 공간이다.
심지어 모든 것을 버리면서 지키고자 했던 동물들마저 그녀를 외면한다.
모두가 등을 돌린 세상에서 단 한 사람.
피에르만이 엘파바 편에 선다.
잘생긴 외모, 오즈의 호위대장,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글린다와의 연인 관계.
누가 봐도 완벽한 인생을 살던 피에르가 선택한 사람은 엘파바였다.
오해와 혐오의 대상이 된 그녀를 지키며 결국 허수아비 같은 모습으로 남는다.
이 선택은 현실적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 아니야?”
피에르의 선택은 조건이나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진실, 책임, 연대,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향한 선택이다.
흙탕물 속으로 떨어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 안으로 함께 뛰어드는 사람.
피에르는 그런 사랑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낭만'을 구현한 인물이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현실에서도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두 사람의 도피 생활은 행복할까?
피에르는 후회하지 않을까?
정답은 알 수 없다.
사랑과 선택, 책임은 누구도 대신 답을 내려줄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위키드 2>는 <위키드 1>보다 더 깊고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정답은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혼자보다는 함께의 힘을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편안한 거짓보다 가시 같은 진실을 선택하고, 그 진실에 책임지고 싶다.
변화가 두렵더라도 기꺼이 겪고 받아들이고 싶다.
현실의 벽은 높다.
그러나 피에르와 엘파바가 서로에게서 발견한 가치, 옳다고 믿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흙탕물 속에서 굴러도 함께 웃어줄 사람이 있다면
흙탕물 목욕 또한 괜찮은 인생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그냥, 다만.
나는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