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마주한 경계의 사람들

생존과 규정 사이


#1. 우리가 잘 모르는 이야기


제주 공항에서 근무하며 나는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풍경을 매일 본다.


한쪽에는 여행의 설렘으로 걸음이 가벼워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입국 거절 통보 앞에서 삶의 시간이 갑자기 멈춘다.


공항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환하고 떠들썩하지만, 그 밝음 뒤편에는 또 다른 공기가 흐른다.
규정의 문턱 앞에서 발을 멈춘 사람들.
서류 한 장의 문구, 인터뷰 몇 줄의 판단,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자리.




#2. 무사증의 문 앞에서 멈춰 선 사람들


제주는 무사증 지역이다.
비자 없이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품고 오는 사람들.
하지만 비자가 필요 없다는 말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무사증이 허락한 것은 '입국의 가능성'이지 '입국의 보장'은 아니다.

입국 목적이 불분명하다고 판단되면 인터뷰 후 곧바로 입국은 거절되고,

'이너드(INAD)승객'이 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결정을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국적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나라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일하며 가족을 돕고 싶다”는 이유로 한국행을 택한다.
자국에서는 하루 벌기도 버거운 현실 속에서

조금은 더 나은 생활을 기대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탄다.


그들이 범죄자가 아니다.
단지 개인의 현실과 국가 제도의 선이 서로를 비껴간 사람들일 뿐이다.




#3. 송환대기실, 시간이 무너지는 곳


입국이 거절되면 그들은 송환대기실로 들어간다.
대기실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 안의 시간은 길고 무겁다.


항공사는 승객이 그들이 자발적으로 귀국 티켓을 구매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돈이 없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없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살겠다”라고 버티고,
어떤 사람은 울음을 터뜨리며 도움을 요청한다.
어떤 사람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직원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절박함만은 모두가 같았다.


항공사는 규정상 송환 의무가 있다.
출발지에서 수속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귀국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럼 처음부터 수속을 안 하면 되지 않나요?”
언뜻 들으면 간단한 해결책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단순히 불법 체류 가능성만으로 탑승을 거절하는 건 인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항공사는 귀국 가능한 돈이 있는지, 신용카드나 현금을 확인하고 서약서를 받지만
그 서류는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
막상 한국에 도착하면 “돈이 없다”라고 말을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악의 경우 항공사는 자비로 항공권을 구매해 송환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현실을 매번 고스란히 마주한다.




#4. 국경 앞에서 마주한 얼굴들


나는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눈빛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발견한다.

두려움, 기대, 체념, 억울함…
싸구려 슬리퍼를 신은 발끝이 떨린다. 손에 꼭 쥔 비닐봉지 하나가 전 재산인 사람도 있다.


“대사관에 연락해 달라”는 말에 직접 대사관으로 연락해 본 적도 있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대체로 비슷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브로커와 통화해 달라는 요청도 종종 있다.
그들은 정해진 패턴처럼 말한다.

"기존에 구매했던 항공권을 이용하고 싶다. 우리는 돈이 없다."
하지만 송환 협조 가능한 항공사가 제한적이다 보니 기존에 구매했던 항공권으로 돌아갈 수 없고

새롭게 발권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표는 말도 안 되게 비싸다.

그들의 한 달, 아니 두 달 월급을 합쳐야 나오는 금액.

브로커조차 표를 끊는 걸 포기하는 순간, 그렇게 그들은 발 디딜 곳 없는 공간에 갇힌다.


그 순간 느낀 건 분노도 연민도 아닌 그저 이 구조가 만들어낸 깊은 씁쓸함이었다.

구조가 만들어낸 벽 앞에서 서로가 무력해지는 순간의 씁쓸함.




#5. 난민 신청, 또 다른 기다림의 시작


가끔 그들이 난민 신청을 하기도 한다.
“돌아가면 맞아 죽을 수 있어요”라는 절박함으로 신청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송환은 중지되고, 그들은 좁은 공간에서 몇 주, 혹은 몇 달을 보낸다.


한국의 난민 정책과 현실은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치안, 경제, 복지... 그 모든 단어들이 정책 논의의 중심에 놓이지만,

정책의 문장 뒤에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한 개인의 흔들리는 삶이 있다.




#6. 같은 공간, 다른 세상


공항은 늘 밝고 분주하다.
무전기가 울리고, 아이들이 웃고,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문 하나를 지나면 시계가 멈춘 듯한 송환대기실이 있다.

그곳에서는 생계와 규정이 충돌하고, 희망과 체념이 동시에 머문다.

같은 공간 안에서 이 두 세상은 서로를 모른 채 나란히 흘러간다.




#7. 만약 내가 그들의 자리였다면


나는 가끔 이렇게 묻는다.


"내가 만약 그들의 자리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들과 나 사이의 간극은 무엇이 만들었을까?"


"우리가 믿는 평등은 정말 존재하는가?"


국경을 넘어 생존을 걸고 이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규정 속에서 책임져야 하는 항공사 직원.


이 두 세계는 평행선을 달리지만
그 사이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수많은 이유와 사연, 구조적 문제,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인간의 삶이 있다.


공항은 단순한 여행의 시작점이 아니었다.
규정, 인권, 국가 간의 권력, 경제 현실이 매 순간 충돌하고 타협하는 경계선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경계 한가운데에서

누군가의 생존과 회사의 규정 사이에서

오늘도 조용히 줄타기를 한다.


때로는 연민이 앞서고 때로는 규정이 손목을 붙잡는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내가 만약 그들의 자리였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질문은 아직도 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쩌면 답을 찾지 못한 채 계속 묻고 고민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경계에서 계속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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